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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계로 파고드는 ‘한국 SF’의 힘…로커스상 후보 4개 작품 일낼까

전통적으로 서구권 중심이었던 SF 장르에서 한국 문학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국내 작품이 해외에 번역돼 출간되는 일부터 주요 문학상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이 후보로 오르는 경우도 잦아졌다.

왼쪽부터 정보라, 김성일, 천선란 작가. 경향신문 자료사진·그린북 에이전시 제공

정보라·김성일·천선란 소설들

세계적 SF 문학상 번역 부문에

10편 중 4편이 한국 작품 ‘두각’

“수준 높은 한국 SF 영어권 호응

효과적 번역출판 라인 구축 증거”

30일 발표…수상 땐 새로운 전기

전통적으로 서구권 중심이었던 SF 장르에서 한국 문학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국내 작품이 해외에 번역돼 출간되는 일부터 주요 문학상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이 후보로 오르는 경우도 잦아졌다. 최근엔 세계적 권위의 SF 문학상인 ‘로커스상’에 번역소설 부문이 신설되며 한국 작품이 대거 후보로 올라 화제가 됐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세계 무대에서 ‘한국 소설’ 자체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인기 작가 유입과 독자층 확대로 한국 SF 소설의 저변이 두꺼워진 것이 이유로 꼽힌다.

로커스상은 SF 장르 최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휴고상, 네뷸러상과 비교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지난달 13일 최종 후보가 발표됐는데, 신설된 ‘번역 부문’에 오른 10편 중 한국 작품이 4편을 차지했다. 정보라의 <붉은 칼>(Red Sword)과 <한밤의 시간표>(The Midnight Timetable), 천선란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The Midnight Shift), 김성일의 <메르시아의 별>(Blood for the Undying Throne)이다. 이외에 덴마크와 아르헨티나 작가의 작품이 각각 2편, 폴란드 작가 1편, 일본 작가 1편이었다.

2026 로커스상 번역 소설 부문에 오른 정보라 <한밤의 시간표>, <붉은 칼>, 천선란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김성일 <메르시아의 별>의 영문판 표지.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 중 40%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한국 SF 소설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국내 작가가 한국어로 쓴 소설이 영어로 번역돼 로커스상 후보에 오른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로커스상을 주관하는 미국 SF 전문 잡지 ‘로커스’의 발행인 겸 편집장 리자 그로엔 트롬비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수준 높은 한국 SF가 영어권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며 “한국 SF와 판타지 문학계가 매우 활발하며 효과적인 번역 출판 라인이 구축돼 있다는 지표”라고 말했다.

번역 부문을 신설한 것에 대해서는 “출판사들이 더 다양한 목소리를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도록 장려하기 위해서”라며 “최근 SF 업계에서는 비서구권의 목소리와 경험이 더 많이 가시화되고 있는 고무적인 흐름이 있다”고 했다.

이어 “번역 부문이 그동안 주목받기 어려웠던 비영어권 목소리를 전면에 드러낼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란다”며 “동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혁신적인 작품들을 반영하려는 로커스의 사명과도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번역 부문 시상은 3년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그는 “3년간 해당 부문이 창작자와 작품을 제대로 조명할 수 있을지 확인할 것”이라며 “매년 지속적·안정적으로 다양한 후보작이 나올 수 있는지,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번역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SF계 노벨상’이라 불리며 세계 SF 대회 ‘월드콘’의 회원 투표로 수상작을 결정하는 ‘휴고상’과 세계과학소설협회(WSFS) 소속 전문가 투표로 결정하는 ‘네뷸러상’이 가장 권위 있는 SF 문학상으로 꼽힌다. 여기에 로커스상 혹은 필립 K 딕상을 더해 ‘세계 3대 SF 문학상’이라 부른다.

로커스상은 SF·판타지 문학 분야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1971년 로커스의 설립자 찰스 N 브라운에 의해 창설됐다. 수상작은 독자 투표로 결정된다. SF 독자들은 로커스상 수상작으로 휴고상의 결과를 예측하기도 한다.

로커스는 SF·호러·판타지·영어덜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상해왔다. 이전에도 번역도서가 수상할 수는 있었으나 비서구권, 특히 아시아 작가의 번역 작품이 수상하는 일은 드물었다. <삼체>로 휴고상을 받은 중국 작가 류츠신이 로커스상을 받는 등 일부 중국 작가가 수상한 이력이 있는 정도다.

로커스의 번역 부문 신설은 부커상이 2016년 번역소설 부문인 ‘부커상 인터내셔널’을 만들어 번역소설의 국제적 인지도를 끌어올린 것처럼, 비서구권 SF의 영어권 진출을 가시화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김초엽 등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SF 작가가 등장하고 다수의 SF 문학상이 생기면서 장르문학의 저변이 넓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한강 수상 이후 SF든 순문학이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국 소설’ 자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최근 한국 SF의 세계화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가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올해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가 프랑스 장르문학상 ‘그랑프리 드 리마지네르’의 외국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주요 문학상에서 한국 SF와 판타지가 호명되고 있는 상황은 이 같은 관심을 방증한다.

다수 문학상에 한국 작품이 연이어 후보로 오르면서 올해 로커스상에서 한국 작품의 수상을 기대하는 이가 많다. 다만 기존 수상 부문과 달리 다양한 장르가 후보로 섞여 있는 번역 부문 특성상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정보라와 천선란의 작품은 SF 혹은 호러로 분류되고, 김성일의 작품은 에픽 판타지, 하이 판타지 쪽이다. 후보작 10편의 장르가 상이하고 그에 따른 팬층이 다르다.

올해 로커스에서 한국 작품이 수상한다면, 한국 SF에 대한 영미권의 관심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심완선 SF 평론가는 “미국의 비서구 SF에 대한 관심이 아프로퓨처리즘에 있었다가 2015년 <삼체>의 휴고상 수상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작품으로 넓어졌다”며 “(서구 중심 SF계에서) 번역 부문의 신설 자체가 변화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로커스상 수상작은 미국 현지에서 오는 30일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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