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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계가 부러워하는 韓 의료 데이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킷 탕의 헬스케어 Insight]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인공지능(AI)와 신산업을 지역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선명해지는 가운데, 보건의료 분야 역시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다.

진단·영상·병리 등 서로 다른 의료 데이터가 중앙의 표준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정보로 통합되고, 최종적으로 의료진과 환자에게 전달되는 흐름을 묘사한 AI 이미지.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인공지능(AI)와 신산업을 지역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선명해지는 가운데, 보건의료 분야 역시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다. AI 전환의 토대가 결국 데이터라는 점에서 전 국민 건강보험 시스템을 기반으로 대규모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한 한국의 조건은 매우 특별하다.

정부의 정책 의지도 뚜렷하다.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강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2029년 건강정보 고속도로 통합과 2032년 100만 명 규모의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를 성장의 자원으로 삼으려는 방향은 분명 반가운 흐름이다. 그러나 데이터의 양이 곧 역량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년 넘게 진단검사 산업에 몸담으며 필자는 데이터의 총량보다 그 데이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환자와 의료진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인사이트로 이어지는지가 실제 가치를 가른다는 사실을 거듭 절감해 왔다.

흩어진 데이터와 연결되지 못한 현장

한국에 부임하기 전 대만에서 암 환자 다학제 진료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던 시절, 이 문제를 특히 절감했다. 검사 결과와 영상, 병리 소견, 유전체 정보는 각 병원에 충분히 쌓여 있었다. 그러나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 회의를 열기 위해서는 누군가 관련 자료를 일일이 찾아 정리해야 했다. 흩어진 데이터를 모으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인력이 들었다.

한국 의료 현장에서 마주한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병상 배정 지연과 의정 갈등으로 의료 인력이 급감한 상황에서 나타난 정보 공유의 지체는 모두 같은 문제를 가리켰다. 데이터 총량의 부족이 아니라 연결의 부재였다.

문제의 뿌리는 더 앞단에 있다.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라도 그 출발점인 진단 결과가 정밀하고 일관되지 않으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없다. 같은 검체라도 검사자의 숙련도나 장비의 편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면 그 데이터는 신뢰할 만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명칭과 단위, 형식이 서로 다른 데이터는 비교하거나 연계해 활용하기도 어렵다.

데이터의 가치를 결정하는 표준화

데이터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 표준화’다. 데이터 표준화는 검사 항목의 명칭과 단위, 형식, 분류 및 코드 체계를 일관되게 정립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도 데이터의 의미를 동일하게 이해하고 안전하게 교환·활용할 수 있다.

다만 그 기준이 한 병원이나 한 나라에서만 통용돼서는 안 된다. 오늘날 진단 데이터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신약 개발의 근거가 되고 국제 진료 지침의 바탕이 된다. 한국에서 생성된 데이터와 해외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같은 의미로 해석되고 활용될 수 있어야 비로소 세계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언어가 된다.

의료기관과 국가마다 데이터를 생성하고 기록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이 데이터를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스템 간에 원활하게 주고받으며 활용하려면 공통의 데이터 표준과 기술 체계를 세워야 한다. 표준화는 각 의료 현장이 이러한 기준을 실제로 채택하고 구현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오랫동안 진단검사 현장을 지켜오면서 보건의료 데이터를 다루는 책임을 더욱 무겁게 느끼게 됐다. 결괏값 하나하나가 실제 환자의 건강 상태와 질병의 징후를 보여주고, 그 값은 의료진의 치료 결정을 뒷받침해 다시 환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진단검사부터 제약과 디지털 헬스케어까지 아우르는 로슈그룹이 지난 130년간 지키고자 노력한 것 역시 인류 건강의 처음과 끝을 잇는 책임이었다. ‘환자가 내일 필요로 하는 것을 오늘 행하라’는 로슈그룹의 미션이 그 시간을 관통해 왔다.

표준화된 데이터는 연결될 때 솔루션 돼

그러나 표준화된 데이터라 해도 고립된 상태로는 충분한 가치를 발휘하기 어렵다. 각 시스템에 쌓인 데이터를 임상 현장에서 활용하려면 필요한 정보를 서로 연결해 의료진에게 적시에 제공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정부와 의료기관도 데이터의 연계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임상 지원 환경 역시 점차 확대하고 있다.

다만 앞서 살펴본 다학제 진료 현장과 코로나19 팬데믹·의정 갈등 당시의 의료 공백 사례에서 보듯, 데이터가 각기 다른 시스템에 흩어져 있으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한자리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이 간극을 메우는 수단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 플랫폼이다. 다만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통합과 활용이 가능하려면 서로 다른 시스템이 데이터를 같은 의미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데이터 표준화가 선행돼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표준화된 데이터를 필요한 시점에 의료진에게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전자의무기록과 영상 자료, 최신 치료 지침, 임상시험 정보를 한 화면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의료진이 자료 준비에 쏟던 시간을 다시 환자에게 돌릴 수 있다. 표준화된 데이터가 시스템의 경계를 넘어 연결되고 디지털 플랫폼이 그 위에서 필요한 정보를 통합해 제공할 때, 의료진은 다양한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검토하고 임상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

체계적 데이터 관리, 국민 건강으로 이어져

데이터가 한 병원이나 한 시점에 머물지 않고 의료 시스템 전체를 지탱하려면 생성과 연결, 활용을 아우르는 전 주기에 걸쳐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표준화와 기관 간 연동 체계는 물론, 민감한 의료 정보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거버넌스까지 갖춰질 때 그 기반은 온전해진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의료제품법을 시행한 나라답게, 제도가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실질적인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연하게 운영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결국 데이터를 읽는다는 것은 숫자를 해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환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의료 시스템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는 일이다. 검사 결과 하나가 국제 기준에 따라 측정되고, 그 값이 병원의 경계를 넘어 다른 시스템과 대화하며, 마침내 한 환자의 치료 결정으로 돌아온다. 이 여정에서 단 하나의 고리라도 끊기면 데이터는 환자에게 닿지 못한 채 멈춰 선다.

한국이 가진 것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방대한 데이터다. 그러나 데이터의 양이 곧 경쟁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의료계와 산업계가 함께 협력하는 생태계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표준화된 진단 데이터를 안전하게 연결해 임상 의사결정에 가닿게 하고, 환자와 의료진이 그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얼마나 빠르게 실행하느냐가 앞으로 한국 보건의료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다.

킷 탕(Kit Tang) 한국로슈진단 대표이사

He is...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5년 로슈그룹에 합류했고 한국에는 2021년 부임했다. 검사실 자동화와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 구축을 선도하면서 국내 스타트업 발굴과 글로벌 협력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부회장, 스위스-한국 비즈니스 협의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그동안 홍콩, 독일, 중국, 미국, 스위스 본사를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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