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전쟁에 금리 인하 기대 ‘찬물’
고금리 충격, 손익계산서 덮칠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물가 압박이 커지자 주요국 중앙은행 금리 경로를 둘러싼 기류 변화가 뚜렷하다. 미 연준(Fed)은 공식적으로 기존 금리 전망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급격한 변화가 감지된다. 한국은행 역시 고유가·고환율 장기화 땐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이미 실물 시장은 금리 인상 우려를 빠른 속도로 선반영해 회사채 발행 여건은 악화일로다. 단기 차입금 등 부채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2차전지 업종을 비롯해 금리 민감도가 높은 건설·부동산·내수 소비 업종에선 긴장감이 팽배하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이 단기간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더라도 산업계가 광범위한 고금리 영향에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중동 전쟁 여파로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생산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사진은 전남 여수 산단에서 가동중인 LG화학 나프타 크래킹 센터(NCC) 설비 전경. (LG화학 제공)
채권·대출금리 일제히 뜀박질
비금융기업 단기차입금 713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하면서 국내 채권·대출금리가 일제히 뜀박질했다.
채권 시장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말 연 3.2%였던 신용등급 ‘AA-’급 3년물 금리는 올 2월 말 3.6%로 올랐다. 올 3월에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덮쳐 연 4.2% 안팎까지 뛰었다. 은행권 기업대출 금리는 11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 2월 신규 취급액 기준 연 4.2%로 집계됐다. 전달 대비 0.05%포인트 올라 지난해 3월(연 4.3%) 이후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당장 올리지 않더라도, 기업이 체감하는 고금리 충격은 손익계산서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
직접적인 경로는 이자비용 증가다. 저금리 시절 조달한 회사채와 대출이 만기를 맞아 더 높은 금리로 차환되면 이자비용이 늘어 세전이익과 순이익이 잠식된다. 또, 고금리는 소비·투자를 동시에 위축시켜 내수와 설비투자 수요를 둔화시킨다. 이는 매출 감소와 이익률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영업외비용(이자) 증가와 매출 둔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고금리는 경영 전략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자비용이 늘면 영업현금흐름은 투자·배당이 아니라 금융비용 방어에 먼저 소진된다. 설비투자·연구개발·인수합병 여력도 위축된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할인율 상승은 보유자산 가치와 성장 사업 평가에도 부담을 줘 자기자본과 재무비율을 흔들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국내 제조업 등 비금융기업 단기차입금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는 점은 이런 우려를 부채질한다.
한국은행 자금순환표에 따르면, 국내 비금융기업(제조업 등)이 2025년 3분기 말 기준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 규모는 약 713조7150억원에 달한다. 단기대출금 648조9590억원·단기채권 64조7560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이는 기업이 이자비용 부담뿐 아니라 짧은 만기에 따른 차환 리스크에도 광범위하게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과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에 빌렸던 빚을 앞으론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차환해야 할 수 있어서다. 시장금리가 다시 출렁이거나 회사채·CP 시장이 경색될 경우, 실적이 약한 기업부터 유동성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우리 경제에서 고금리에 취약한 한계기업 비중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데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외부감사 대상 기업 가운데 17.1%가 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 못하는 한계기업으로 분류됐다. 기업 6곳 중 1곳 이상이 본업으로 번 돈으로는 이자도 못 낸다는 의미다. 이는 2010년 이후 가장 높다. 이 비율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 2020년 15.3%까지 올랐다가 2021년 14.9%로 소폭 낮아졌지만, 2024년 17.1%로 다시 가파르게 올랐다.
석화·車부품 등 직격탄 우려
차입 의존 높고 가격 결정력 취약
고금리 충격이 큰 업종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차입 구조가 짧다. 만기가 짧은 빚이 많을수록 금리 상승은 현금 유출로 직결된다. 둘째, 유동성 공백이다. 당장 갚아야 할 돈에 비해 현금화 가능한 자산이 부족한 업종일수록 금리 상승은 차환 부담과 유동성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본업 현금흐름 둔화다. 영업이익이 둔화된 상태에서 이자비용 증가는 영업외손실 확대에 그치지 않고 신용도 저하 → 조달비용 상승 → 투자 축소 등 악순환을 낳는다.
전문가들은 ▲자동차부품 ▲조선 ▲가전·디스플레이 ▲석유화학 업종이 고금리에 취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 업종은 현금이 늦게 돌며 차입 의존도가 높고 가격 결정력이 제한적인 게 공통점으로 지목된다.
자동차부품은 완성차에 납품하는 구조상 단가 인상 여력이 크지 않은 반면, 설비투자·운전자금 부담은 상수다. 매출이 발생해도 대금 회수까지 시간이 걸리고 원재료 가격이나 인건비가 올라도 이를 곧바로 납품단가에 반영하기 어렵다. 자동차부품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1차 협력사는 그나마 낫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현금흐름이 훨씬 빡빡하다. 납품단가는 한 번 정해지면 쉽게 못 올리는데, 당장 원재료값·인건비·금융비용이 한꺼번에 뛰고 있어 하반기 사업계획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조선 업종도 마찬가지다. 선박은 수주부터 인도까지 수년이 소요된다. 선수금과 중도금이 들어와도 제작 과정에 막대한 자금이 묶인다. 이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선박 건조에 필요한 운영자금과 보증·차입비용이 함께 뛰고 이는 수익성 저하로 이어진다. 익명을 원한 조선 업종 애널리스트는 “조선 업종은 배 한 척 수주했다고 바로 현금이 남는 구조가 아니라, 건조 기간 내내 자재비·인건비·보증비용이 계속 들어간다. 금리가 오르면 그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전·디스플레이가 취약한 이유는 수요 변동성 탓도 있다. 이들 업종은 경기 둔화기에 소비가 먼저 꺾이는 전형적인 내구재·전자 산업이다. 고금리 국면에서는 소비자 가처분소득이 위축돼 TV·가전 같은 내구재 수요가 더 약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설비투자·재고자금 조달 부담이 덩달아 뛴다. 디스플레이 역시 대규모 선행투자가 필요한 자본집약 산업으로 이미 업황이 둔화한 상태에서 금리마저 뛰면 감가상각 부담과 금융비용 부담이 겹쳐 실적 변동성이 확대된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금리 상승은 미래 투자와 생산계획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투자 판단이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석유화학 업종도 사면초가라는 진단이다. 이미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 대규모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과 이익률 저하로 혹독한 체질 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봉쇄로 ‘산업의 쌀’ 나프타(Naphtha·납사) 수급마저 직격탄을 맞았다. 이 여파로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생산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제품 가격은 못 올리는데 원가와 금융비용은 같이 오르는 삼중고에 노출됐다는 진단이다.
주요 그룹사는 계열사별 대응 전략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석유화학 의존도가 큰 롯데그룹은 부채 관리가 만만치 않은 과제다. 롯데지주 부채비율은 지난해 144.9%, 단기차입금은 1조5681억원 수준까지 불었다. 계열사 롯데건설과 롯데케미칼 부채 규모는 각각 6조원과 13조원이다. 한화도 곳간 사정이 녹록지 않다. 핵심 계열사 한화솔루션의 지난해 말 기준 순차입금은 12조2005억원으로 현금흐름 대용치인 상각 전 이익(EBITDA·4195억원)의 29배 규모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이 ‘아픈 손가락’이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 구조가 정유·석유화학 같은 경기민감 업황과 배터리·분리막 등 대규모 설비투자 사업을 동시에 안고 있다. 정유와 화학은 유가·정제마진·석화 스프레드 변동에 실적이 휘청이고 배터리 역시 대표적 자본집약 산업이다. SK온은 설비투자를 대폭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지난해 연간 이자비용만 5914억원이다.
상대적 방어 업종은
반도체·보험·은행 등 한숨 돌려
고금리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업종은 현금흐름이 안정적이고 가격 전가력이 높으며 차입 의존도가 낮은 특징을 보인다. 대규모 투자 이후 안정적인 현금 회수 단계에 들어선 업종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통신, 보험, 은행은 고금리 국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큰 업종으로 꼽힌다.
유례없는 초강세장을 질주 중인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이다. 필수재 성격이 강해 수요가 급락하지 않으며 기술력·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가격을 올릴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통적으로 경기 민감 업종이지만, 최근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산업 속성이 확 달라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AI 추론 시장 확대로 서버 D램과 DDR5, 모바일 LPDDR 등 범용 메모리 수요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연이어 갈아치우고 한국 수출 역시 반도체 호황에 올라탔다. 지난 3월 수출은 반도체 호황 덕분에 48.3% 늘었고 반도체 수출은 151.4% 급증했다.
통신은 경기 변화와 무관하게 가입자 기반 매출이 급격히 흔들리지 않는 전형적 방어 업종이다. 보험은 금리 상승이 신규 자산 운용수익률과 투자이익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은행 역시 대출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면 순이자마진 방어에 유리하다. 다만, 경기 둔화가 심해지면 연체율과 충당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방산, 조선, 원전 등은 전쟁 반사이익으로 시장 대비 강했고, 통신, 음식료 등 방어주도 안정적이었다. 보험과 은행도 고금리 충격을 덜 받는 업종으로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美 빅테크·각국 정부 ‘빚 잔치’
부채 광풍 구축 효과로 차환 비상
문제는 기업 자금 조달 여건이 갈수록 악화한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빅테크의 대규모 채권 발행과 각국 정부 국채 공급 확대에 따른 구축효과(국채 공급 증가에 따른 민간 금리 상승)가 겹쳐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당장 올리지 않더라도 시장금리는 좀처럼 내려오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미국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6년 주요 빅테크의 채권 발행 전망치를 1750억달러로 높여 잡았다. 2026년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 규모가 6300억달러 안팎에 이를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OECD는 올해 정부와 기업의 시장성 차입이 29조달러로 2024년보다 17% 늘어날 것으로 봤다. 정부는 전쟁 대응과 경기 방어를 위해 더 많은 국채를 찍고 빅테크가 AI 데이터센터·반도체·전력 인프라 확보를 위해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빨아들이면, 민간 기업 조달금리는 높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당장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자 기업 차환 전략도 스텝이 꼬였다는 평가다. 우리 정부가 지난 3월 말 5조원 규모 긴급 국채 매입에 나선 것도 중동 충격 이후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고 채권 시장 유동성이 경색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채 금리가 뛰면 회사채 금리도 연쇄적으로 오르고 신용스프레드까지 벌어져 취약 기업은 더 큰 차환 부담을 안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평균적으로는 은행권 기업대출 금리가 4%대 초반이지만,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는 한계기업은 6~7% 이상을 적용받는 경우가 많다. 취약 기업일수록 회사채 발행 대신 비싼 대체 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자비용 증가와 차환 부담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4호(2026.04.08~04.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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