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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명연 위기인식 돌직구 토크 "中 선도국 멀지 않다" 출연연 첫 타운홀...

미·중 과학기술 패권 경쟁과 우리 정부의 과학기술 전략 발표, 빠른 AI 기술 발전 등 급변하는 내외부 환경... 첨단 재생의료, 세포·유전자 치료제, 합성생물학, 노화, 뇌·신경, AI 신약, 바이오 제조 등 빠진 분야를 찾기가...

생명연 위기인식 돌직구 토크 "中 선도국 멀지 않다" 출연연 첫 타운홀...

생명연, 24일 중장기 발전계획 내부 토론회

200여명 참석해 경험 등 공유하며 반성과 제안

"20년차인데 서로 무슨 연구하는지 여전히 몰라"

"내부 네트워크도 막혀, 협력 기반 만들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내부 구성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기 인식과 향후 방향을 논의하는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이날 참석한 연구진들은 자성의 목소리부터 지적하는 돌직구도 아끼지 않으며 협력 필요성에 공감했다. 패널 발표 후 참석한 연구진(서 있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들며 이야기 하고 있다.[사진= 길애경 기자]

"머지않아 우리는 미국이 아닌 중국을 선도국을 보며 따라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바이오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봐야합니다."

"20년차인 제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아시나요? 협력 필요성은 알지만 내부에서조차 구성원 정보 접근이 안 됩니다."

24일 오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권석윤)의 대회의실. 중장기 발전 계획 초안을 놓고 열린 내부 토론은 자성과 돌직구, 제안이 뒤섞인 솔직한 목소리로 뜨거웠다.

미·중 과학기술 패권 경쟁과 우리 정부의 과학기술 전략 발표, 빠른 AI 기술 발전 등 급변하는 내외부 환경 속에서 이날 현장에서는 구성원 간 경쟁이 아닌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모아졌다.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자성의 목소리부터 '중장기 전략이 나열식'이라는 직설적인 비판까지, 불편한 분위기보다는 연구 문화 변화의 필요성에 힘이 실렸다.

생명연은 1985년 설립된 생명공학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연구 인력만 1400명(모든 인력 포함)에 달하고, 대전 본원 외에 오창·전북 분원을 운영한다. 설립 40주년을 지난해 넘긴 이 기관이 향후 5년, 나아가 10년·40년 후의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쏟아진 목소리는 취재진의 예상보다 훨씬 날것이었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구성원은 200여 명으로 대회의실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참석한 구성원은 취재진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전략과 비전을 논하는 공식적인 언어 사이로,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 "정책 파도에 정체성 잃을라"

이날 발표된 중장기 계획 초안의 첫인상은 '방대함'이라는 지적이 컸다. 레드·그린·화이트 바이오에 디지털·플랫폼 바이오까지, A부터 G까지 알파벳을 붙인 전략 분야들이 나열됐다. 첨단 재생의료, 세포·유전자 치료제, 합성생물학, 노화, 뇌·신경, AI 신약, 바이오 제조 등 빠진 분야를 찾기가 더 어려운 목록이었다. 그럼에도 소외된 연구 분야가 있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이 초안을 봤을 때 선거 공약이 떠올랐다. 모든 걸 다 하겠다는 전형적인 키워드 나열"이라면서 "이건 전략적 특화라기보다 생명연이 하는 분야를 그냥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발표를 맡은 한 본부장은 그 비판을 인정하며 답했다. 그는 "아픈 손가락을 잘라낼 수가 없었다. 어느 분야 하나를 빼면 그 분야 연구자들에게 뭐라고 설명하겠냐. 일단 깔아놓고 우선순위를 정해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는 전략 분야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생명연이 수행하는 분야를 포괄적으로 담은 뒤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이번 전략 연구 사업 선정에서 기관의 의지보다 부처 의지가 거의 99% 반영됐다고 본다"면서 "정부가 K-문샷, AI 바이오 혁신 거점, 유망 생명공학 기술 지정 같은 굵직한 프레임을 쏟아내면, 출연연은 그 프레임에 맞춰 수요를 제안하는 구조"라고 인정했다.

이는 생명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출연연은 정부 정책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특정 분야에 집중하면 다른 분야 연구자들의 사기와 예산이 흔들린다. 그렇다고 전 분야를 아우르면 전략이 사라진다. 국내 출연연 대부분이 수십 년째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물론 출연연은 개인이 원하는 연구보다 정부와 국민이 요구하는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지닌다. 생명연의 한 연구자는 이를 두고 "국가 정책이 가야 하는 길과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을 조화롭게 조절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기관의 자율적 연구 의제가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국가연구소로서의 역할도 저버릴 수 없다는 의미다.

한 참석자는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의 구분으로 연구원의 정체성 확보를 강조했다. 그는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이 있을 때 대부분 급한 일에 매몰된다"고 봤다. 예산을 따고 과제를 수주하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동안, 정작 '우리 기관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은 계속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그는 "급한 일을 처리하는 중에도 아주 적은 부분이라도 중요한 일을 고민하는 싱크탱크가 가동됐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권석윤 원장도 이에 공감을 표하며, 40년 후 연구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나는 너를 모른다, 너도 나를 모른다"

구조적 소외를 겪는 연구진의 애로도 터져 나왔다. 한 연구자는 "중장기 계획이나 정부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이번에도 우리 연구 분야는 없구나, 어떻게 해야 함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연구자도 같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집단 연구가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정작 연구소 내에서 누가 뭘 잘하는지 모른다"면서 "20년 가까이 됐는데, 아직도 제가 뭘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생명연 연구자만큼 협업하기 좋은 파트너가 없는데, 내부 네트워크에 들어가도 연구자 정보조차 나오지 않는다. 결국 외부에서 협력자를 찾아 나선다"고 지적하며, "원내 데이터를 집적해 내부 연구자들이 서로의 역량을 파악하고 협업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한 참석자는 최근 원내 사이트에서 특정 분야 연구자를 검색했더니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정보가 차단돼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참석자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다. 요즘 많이 쓰는 I·E 성향처럼, 협업 제안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고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서 "그렇기에 연구 문화를 경쟁에서 연합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생명연 연구자의 75%가 내향(I) 성향이라는 내부 조사 결과도 이날 언급됐다. 때문에 연구진 간 뭘 함께하면 더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성원의 역할 재정립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 참석자는 "연구소 PI가 400명이 안 된다. 사실상 200여 개 실험실이 외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는 벽돌처럼 쓰이고 있다"면서 "나머지 절반은 그냥 있는 셈이다.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기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나쁘다거나 놀고 있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기관이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석윤 원장은 이를 구조적 문제로 받아들였다. 권 원장은 "개인별 논문·특허·기술이전(3P) 성과만으로 평가받는 현재 시스템이 과연 맞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며, "집단 연구나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평가 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개인 평가 최하등급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 30년 PBS의 트라우마, 본원과 분원의 협력도 절실

이날 토론에서는 연구 현장을 옥죄어 온 과제중심제도(PBS)의 폐해도 아직 남아있음이 드러났다. 참석자들은 인건비 확보를 위한 과제 수주 압박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PBS는 1996년 도입됐다. 연구자 인건비의 일부를 외부 과제 수주로 충당하게 하는 제도로, 경쟁을 통해 우수한 과제를 유치하도록 유인하는 것이 취지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인건비를 메워야 하다 보니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보다 '따낼 수 있는 과제'를 쫓게 됐다. 연구의 방향보다 수주 가능성이 먼저 계산되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현 정부는 PBS 폐지(완화)를 선언했다. 출연연 연구자들이 인건비 걱정 없이 본연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별도의 PBS 완화 예산 투입 없이 전략 연구 사업 안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과도기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보직자는 "과도기가 필요하다"고 했고, 권 원장은 "이제는 인건비 때문에 과제를 따야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선을 그었다.

한 연구자는 "돈을 따느라 모든 것이 거기 집중되다 보면, 우리 기관이 정작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뒤로 밀린다. 급한 일에 매몰돼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0년을 일했는데 생명연이 뭘 하는 조직인지 뚜렷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대로 20년이 또 갈 것 같다"며 우려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그동안 외부 역량 확보에만 집중해 온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그동안 전략 분야 선점, 대형 수주, 예산 극대화 등 외부적인 측면에 역량을 쏟아왔다"면서 "이제는 출연연 내부의 협력 체계와 연구개발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분원과 본원의 연계 문제도 제기됐다. 한 분원장은 본원에서 나온 원천 기술이 분원의 평가·사업화 인프라와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분원에 좋은 소재와 10개 이상의 검증 플랫폼이 있다. 본원에서 중요한 타깃이 나왔을 때 분원으로 이어져 빠르게 산업화로 연결돼야 하는데, 그런 흐름이 제대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면서 "지리적 거리가 아니라 연구 문화와 협력 체계의 거리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협력 구조가 가시화된 사례도 이날 언급됐다. 오가노이드 분야가 그 예다. 이날 한 발표자는 "K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기술 분야 중 하나가 오가노이드"라며 세계 선도 수준임을 자부했다. 올해 출범한 전략 연구 사업에서는 본원이 원천기술을 담당하고, 오창 분원이 전임상 평가를, 전북 분원이 사업화를 각각 맡는 역할 분담 구조가 처음으로 설계됐다. 참석자들은 이 모델이 본원·분원 협력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 AI는 도구인가, 목적인가

인공지능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정부가 AI에 별도로 10조 원을 투입하고, 바이오 분야에도 AI 융합을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이다. 생명연도 AI 바이오 코어 퍼실리티를 신설했고, 내부 AI 과학자 플랫폼은 현재 시범 서비스 중으로 곧 전체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날 토론에서는 이 흐름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AI는 도구다. 그런데 요즘은 도구를 갖추는 게 목적이 돼버렸다. K-바이오메이드, K-문샷, K-제네시스 등 미국이 하면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의 프레임이 너무 빠르게 쏟아진다"면서 "도구와 목적이 혼동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론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바이오 분야 자체의 폐쇄성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다른 분야에서는 로봇과 AI를 접목해 바이오로 확장하는데, 우리는 바이오만 보다 보니 갇혀 있다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참석자는 중국의 사례를 들며 AI 접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국 의회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합성생물학, 항생제, 바이오 제조, 유전체 분야에서 이미 미국을 앞섰다는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의 NIH 예산 40% 삭감이 현실화될 경우 3년 내에 바이오 분야 전체의 글로벌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우리가 선도 국가로 따라온 곳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는 걸 목격하는 세대가 될지 모른다. 전략적 재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연구소를 일터이자 놀터로

한 참석자는 전날 원내 AI 활용 교육 현장을 목격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절반이 빈 강의실, 나머지 절반도 모두 뒤쪽에 앉아 있었다. 젊은 연구원들이 자기 의견을 앞으로 나와서 낼 수 있는 문화, 그게 앞에 가서 앉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문화를 선배들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쓰는 용어도 바꿔보자. '소외' 대신 '잠재력', '내부 벽돌' 대신 '변이 다양성'은 어떠냐"면서 "우리에게는 돈을 따러 다니는 것보다 훨씬 큰 일상이 있다. 서로의 딴짓도 공유하면서 연구의 재미를 잃지 않으면 답이 보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내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자"고 했다. 그는 "내가 찾아낸 성과는 내가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그러다 보니 내부 협력이 잘 안 됐다. 결국 신약 하나 만들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일본 연구진과 교류하며 그들이 서로 융합해 신약도 개발하고 노벨상도 받는 모습을 보며 느낀 바가 크다고도 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전자연구노트 활용 방안도 강조됐다. 권 원장은 "제대로 된 전자연구노트화가 이루어진다면 데이터 공유는 물론, 소재의 위치와 연구 역량에 관한 정보까지 서로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실패 데이터를 포함한 모든 연구 정보가 전자화돼 새로운 협력의 실마리가 되길 기대했다.

권 원장은 이날 토론을 마무리하며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은 40년 후에 이 연구소를 떠나 계실 것"이라면서 "그 이후 이 연구소를 이끌어 갈 젊은 분들이 40년 뒤에 '선배들이 잘해줬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을 지금부터 같이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생명연 대회의실은 거의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날 토론회에 많은 연구진이 참석했다.[사진= 길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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