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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상실과 함께 하며 끝내 무너지지 않는 삶의 방식에 대하여

“생존하는 사람만이 떠난 이들을 기억할 수 있고, 그 기억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다. 그 사실이 주는 위로가 있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들의 기억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들을 정리했다.”

상실과 함께 하며 끝내 무너지지 않는 삶의 방식에 대하여

싱어송라이터 이랑 새 책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5일 진주문고 북토크 현장

5일 진주문고에서 연 북토크에 참여한 이랑 모습. /주성희 기자

“생존하는 사람만이 떠난 이들을 기억할 수 있고, 그 기억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다. 그 사실이 주는 위로가 있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들의 기억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들을 정리했다.”

5일 진주문고 2층 여서재에서 열린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북토크에서 책을 쓴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한 말이다. 그는 주변 이들의 죽음을 힘겨워하고 자책할 때 한 친구가 “네가 그들을 기억하면 된다”는 한 친구의 말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상실과 함께 사는 과정 그린 책

도서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이야기장수). /갈무리

2021년 이랑의 친언니 이슬 씨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지난해에는 20년 가까이 같이 살았던 고양이 준이치가 세상을 떠났다. 책은 이랑이 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기록이다. 단순한 회고가 아닌 상실과 함께 살며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삶의 방식이 담겨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 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110쪽, ‘다이아몬드가 되어버린’)

책에 있는 목차 19개 중 절반가량을 그의 친언니와 관계, 그를 잃어가는 과정, 장례식, 추모 공연 등 당시 상황과 감정을 기록했다. 이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남아 있는 사람의 자책을 기억하는 것으로 승화하려는 저자의 노력으로 보인다.

그에게 친언니는 원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아니라 가정폭력의 피해자, 생존자로서 연대하고 의지했던 인물이었다. 그에 관해 이랑이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 가정에서 겪었던 일을 서술했고 그가 해리장애·이인증을 겪고 있는 전후 사정이 그의 가정 환경과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토크에서 이랑은 이렇게 정리했다.

“글을 다 쓰고 보니 그동안 나만의 우울증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언니는 언니대로의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족의 역사 안에서 계속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가족 안에 생기는 비극과 한국 역사가 맞물리는 지점들이 있었다. 우리 가정처럼 다른 가정에도 비슷한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제대로 정리돼 책으로 나온 적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 책을 계기로 다른 가정의 비슷한 이야기가 더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니까

5일 진주문고에서 연 북토크에 참여한 이랑 모습. /주성희 기자

이병진 진주문고 팀장은 이랑이 나눈 공식 대화가 끝나자 현장을 채운 30명이 넘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내줬다.

책을 2시간 만에 다 읽으며 이랑의 원가족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책에는 다 서술하지 못한 이랑의 예술 작업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 독자는 ‘몸’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기도 했다.

몸은 이랑에게 중요한 주제다. 이랑은 해리 증상으로 몸을 의식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었고, 몸과 정신이 구분돼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려고 몸을 의식·인식하는 연습을 해 지금은 전체가 몸이고 그 안에서 이상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도록 작동하는 부분이, 40년 평생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랑은 “이런 설정값을 지닌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뻐근한 몸을 풀어주는 것으로 시작하면서 몸을 인식한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생을 감각하게 된다. 작가, 예술가가 돼 여러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공부하고 읽고, 봐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자동으로 생이 연장된다. 여러 일을 해 나가는 나를 보면서 뿌듯해한다. 나는 이런 삶을 계속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북토크가 끝난 여서재 안에서는 이랑의 노래 ‘쉐임(Shame)’이 흘러나왔다. “나는 당신을 만나 비로소 몸을 의식해요”가 여러 번 반복돼 흘러나왔다. 책 구성 중 ‘이 몸으로 살아 있는 것이 전부’, ‘뚜벅뚜벅, 1도 모르는 신기 속으로’부터 끄트머리에 있는 준이치에 관한 글과 연결되는 노래였다.

아티스트 이랑

이랑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 표지. /갈무리

책에 적힌 저자 소개를 보면 이랑을 가난, 죽음, 슬픔, 불안과 고통을 기꺼이 직시하며 말과 노래의 쓰임을 고민하는 아티스트다. 그는 2011년 싱글 앨범 <잘 알지도 못하면서>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정규앨범 3집 <늑대가 나타났다>를 발표했다.

2022년 행정안전부가 여는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무대가 취소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가수 이랑, 기념식 총연출 강상우 감독이 2023년 11월 말 행정안전부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용역 대행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1심 판결이 이달 내 나올 예정이다.

이후 앨범 표제곡 ‘늑대가 나타났다’가 집회 현장에서 자주 불리면서 새로운 형식의 민중가요로 자리잡기도 했다. 스스로도 1·2집에서는 화자가 ‘나’였다면 3집에서는 화자가 관중·민중으로 넓어졌다고 평가한다.

이랑은 예술 활동을 하면서 상대를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궁금해했다. 이랑은 “사람들이 이런 나를 눈치채고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갖다준다”며 “그러면서 다른 사람 인생을 더 많이 간접 경험하게 되고 이게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음악가 외에도 그의 활동 보폭은 넓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여러 다양한 이들을 궁금해한 그는 웹드라마, 뮤직비디오를 만든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작가로서도 <내가 30代가 됐다>,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기타를 작게 치면서> 등 많은 책을 썼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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