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침몰, 지방 소멸이라는 예고된 재난...국가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결단이 필요
[권의종 칼럼]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인구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마천루가 즐비한 서울의 그림자 뒤편에서, 국토의 80%를 차지하는 지방은 '소리 없는 아사(餓死)'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방 소멸은 단순한 통계 수치의 하락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라는 유기체의 사지가 괴사하기 시작했다는 경고이며, 머지않아 심장부인 수도권마저 마비시킬 치명적 합병증의 전조다. 우리는 과연 이 파국을 막을 의지가 있는가, 아니면 ‘서울 공화국’이라는 안락한 감옥 안에서 서서히 침몰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오늘날의 지방 소멸은 결코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고착된 ‘수도권 일극 체제’가 낳은 명백한 인재(人災)다. 권력과 자본, 정보와 기회가 서울로만 수렴되는 구조 속에서 지방은 청년들에게 ‘남겨진 곳’, 혹은 ‘패배자의 공간’으로 낙인찍혔다. 2030 청년들이 생존을 위해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는 것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처절한 생존 투쟁이다.
문제는 이 ‘상경 열풍’이 수도권에도 비극이라는 점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가 과밀되면서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고, 경쟁은 살인적인 수준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가 바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다. 지방은 인구 유출로 무너지고, 수도권은 과밀로 인해 재생산의 의지를 잃어버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 것이다.
지금 지방은 단순히 인구가 주는 단계를 넘어 의료·교육·문화라는 사회적 안전망 자체가 증발하는 ‘사막화’ 단계에 진입했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에 병원이 문을 닫고 학교가 사라지는 현실은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증명하는 뼈아픈 성적표다.
‘하드웨어’에 매몰된 정책의 실패와 ‘관계’의 재정의
그동안 정부가 지방 소멸 대응에 쏟아부은 수십조 원의 예산은 어디로 갔는가. 주인 없는 문화센터와 이용객 없는 공항, 잡초만 무성한 산업단지들이 그 답을 대신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지방 살리기’를 건물과 도로를 짓는 토건 중심의 하드웨어 사업으로 오해해 왔다. 그러나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차가운 시멘트 덩어리가 아니다. 결국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질과 지속 가능한 일자리다.
해외 사례는 분명한 시사점을 던진다. 일본 가미야마정(神山町)은 화려한 개발 대신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해 IT 인재들을 끌어들였고, 독일은 강소기업을 전국에 분산 배치해 지역 경제의 허리를 지탱하고 있다.
핵심은 ‘떠나지 않을 이유’를 만드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생활인구’와 ‘관계인구’의 개념이다. 주민등록상 거주자가 아니더라도 특정 지역에 애착을 갖고 정기적으로 방문하거나 활동하는 이들을 지역의 자산으로 포섭해야 한다. 이제 ‘정주 인구 늘리기’라는 낡은 목표에서 벗어나, 어떻게 지역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속에 편입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역 고유의 자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기술과 결합하는 ‘소프트웨어 혁명’ 없이는 인구의 흐름을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골든타임을 향한 제언: 국가 구조의 근본적 리모델링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골든타임은 이미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는 ‘나눠주기식’ 예산 배분이나 일회성 이벤트로는 대응할 수 없다. 국가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경제적 유인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단순한 세제 혜택을 넘어,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때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산업 특화 구역을 보장해야 한다. 지방의 일자리가 서울보다 매력적이지 않은 한 청년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둘째, 거점 중심의 ‘메가시티’ 전략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모든 소도시에 인프라를 까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요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광역 경제권을 형성해 수도권에 대응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교육과 의료의 중앙 독점을 해체해야 한다. 지방에서도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고 자녀를 양질의 환경에서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 비로소 ‘탈서울’은 현실이 된다.
지방 소멸은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존립이 걸린 국가적 재난이다. 수도권이라는 비좁은 방주에만 매달려서는 결국 다 함께 가라앉을 뿐이다. 지방이라는 넓은 대지를 다시 경작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그것이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남길 최소한의 생존 기반이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자리를 다투는 우를 범하지 말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필자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경영학박사
-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사)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 전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전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권의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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