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욱 논설주간
이름에는 상징성이 있다. 사람도, 도시도, 건물도 이름을 통해 기억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혁명이 일어나면 거리 이름이 바뀌고, 정권이 교체되면 기념물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기도 한다. 이름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표지판 교체가 아니라 대중의 기억과 상징을 조작한다.
최근 미국의 케네디센터 명칭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미국 대표 공연예술공간인 ‘케네디센터’를 트럼프 정부가 ‘트럼프-케네디센터’로 개명하려 했다. 그러나 법원은 케네디센터 명칭이 연방법으로 정해져 있어 의회 승인 없이 변경할 수 없다고 판결해 제동이 걸렸다.
겉으로는 법률 문제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국가의 상징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케네디센터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와 케네디의 이상을 기념하는 국가적 공간이다. 개명 찬성론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운영 개선과 재정 정상화 노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국가 문화기관이 특정 정치인의 브랜드로 상징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예술계의 반발과 공연 취소, 케네디 가문의 공개 반대가 잇따랐다.
역사는 권력이 쓰는 것 같지만 결국 기억하는 사람들이 완성한다. 소련 붕괴 후 레닌그라드가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된 것도, 독재자들의 동상이 광장에 나동그라진 것도 같은 이유다. 이름은 바뀌어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역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논란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관 명칭과 기념사업, 역사 해석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6·3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정치적 지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상징과 유산을 그 누구도 사유화할 수 없다. 또한 이름은 바꿀 수 있어도 역사의 진실은 바꿀 수 없다. 결국 역사를 평가하고 심판하는 것은 유한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보편적 기억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