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주택시장 겨냥 ‘EHS 히트펌프 보일러’ 국내 출시
하반기 아파트용 ‘올인원’ 출시 예고..LG·경동나비엔 등 보일러 대전
정부 보조금 물량 선점 경쟁 본격..'메이드 인 코리아’ 인증이 초기 승부처
EHS 히트펌프 보일러가 적용된 주택의 상상도. /2026.4.20 삼성전자
수십 년간 국내 주거 난방의 '심장' 역할을 해온 가스보일러 시대가 저물고 전기 기반의 히트펌프 시대가 열리고 있다.
국내 주택용 히트펌프 시장에 삼성전자가 공식 출사표를 던지면서 연간 1조 원 규모의 국내 보일러 시장은 전통의 보일러 전문 업체들과 가전 대기업이 맞붙는 격전지로 변모했다. 특히 정부가 설치비의 70%를 지원하는 파격적인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면서 안방 난방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일 정부의 난방 전기화 보급사업에 발맞춰 공기열 히트펌프 기술을 적용한 ‘EHS(Eco Heating System) 히트펌프 보일러’를 국내 시장에 본격 출시한다고 밝혔다.
그간 유럽 등 에너지 규제가 까다로운 해외 시장에서 공조(HVAC) 기술력을 검증받은 삼성이 국내 안방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가스보일러를 직접 만들고 팔다 경동·귀뚜라미 등 보일러 전문 기업들과의 출혈 경쟁으로 1990년대 중반 사업을 접었다. 30여 년만에 다시 보일러 시장에 진출한 셈이다.
삼성전자가 가스 대신 전기 기반으로 국내에 선보이는 이번 제품은 영하 25도(℃)의 혹한기에도 성능 저하 없이 온수를 공급하는 ‘한국형’ 스펙이 핵심이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난방의 가전화’다.
삼성은 기존 보일러의 투박한 컨트롤러 대신 7형 대화면 터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소비자는 마치 태블릿을 쓰듯 직관적으로 난방 상태를 확인하고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여기에 삼성의 통합 연결 플랫폼인 ‘스마트싱스(SmartThings)’가 결합된다. 외출 중 스마트폰 제어는 물론, AI(인공지능) 절약 모드를 통해 전기 요금 누진 구간을 피하도록 보일러 가동률을 스스로 조절한다. 보일러를 단순한 설치 기계가 아닌 집안 전체 에너지 관리의 핵심 ‘지능형 가전’으로 정의한 셈이다.
◆ 정부,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설치비 최대 70% 지원
삼성이 국내 사업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정부의 파격적인 보조금 정책이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올해 144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지원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가구당 설치비의 최대 70%(국비 40% + 지방비 30%)를 지원한다. 약 1천만 원을 상회하는 히트펌프 보일러를 소비자는 단돈 300만~400만 원대에 들여놓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지급 조건은 엄격하다. 가장 강력한 허들은 ▲국내 생산(Made in Korea) 제품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이 기존 중국 쑤저우 공장 물량을 국내 광주 사업장 등으로 전환해 생산 라인을 정비한 이유도 바로 이 ‘보조금 적격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다.
특히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단독주택 가구에 우선권이 주어지는데, 이는 전력 생산과 소비를 하나로 묶는 ‘제로 에너지 홈’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 1조원대 보일러 시장 균열..국내 제조 경쟁
국내 보일러 시장은 연간 130만 대, 약 1조 원 규모의 성숙 시장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의 진입으로 경동나비엔(35~40%), 귀뚜라미, 린나이가 전체의 90% 이상을 점유해온 공고한 과점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 AI와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단독주택 시장을 선점한 뒤, 하반기 아파트용 모델로 확장을 꾀한다.
LG전자는 유럽 히트펌프 시장 1위의 ‘써마브이(Therma V)’ 기술력을 앞세웠다. H&A 본부 역량을 투입해 하드웨어 신뢰도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전략이다.
경동나비엔은 매출 1.5조 원의 보일러 전문성을 무기로 내세운다. 75도 이상의 고온수 공급 기술은 가전사가 따라오기 힘든 전문 영역이라 자신하며, 평택 공장의 제조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린나이코리아는 정교한 온도 조절 기술과 좁은 공간에도 설치 가능한 컴팩트 모델로 틈새 시장을 사수하고 있다.
현재 히트펌프 보일러의 주 타깃은 대형 실외기 설치가 가능한 단독주택이다. 하지만 삼성과 LG의 진짜 목표는 국내 주거의 60% 이상인 ‘아파트’ 시장이다.
삼성은 올해 하반기 에어컨 실외기실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를 줄인 ‘EHS 올인원’ 출시를 준비 중이다. 실외기 하나로 냉방, 난방, 온수를 모두 해결하는 제품이 보급되면 기존 가스보일러 시장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이번 경쟁의 숨은 승부처는 ‘국내 생산 기지’다. 과거 삼성과 LG는 비용 절감을 위해 히트펌프 상당량을 중국에서 생산해왔으나 정부 보조금 가이드라인이 ‘국내 제조’로 못 박히자 일제히 국내로 유턴했다.
삼성의 광주 사업장과 LG의 창원 스마트파크는 이제 ‘보일러 공장’으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다. 이미 국내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둔 경동나비엔과 린나이는 이를 ‘안방 사수’의 기회로 보고 제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결국 누가 더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하고 전국적인 AS(사후서비스) 망을 가동하느냐가 초기 시장 안착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 에너지 안보 위기로 시작된 난방 전기화 열풍이 보조금과 결합해 한국까지 상륙했다”며 “가전과 보일러의 경계가 무너지는 2026년은 국내 주거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