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4월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 제도 개편을 둘러싼 마라톤 협상 끝에 결국 합의에 실패하면서 오는 21일 총파업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노조가 요구한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고정 배분’을 두고 산업계와 정부 안팎에서는 투자 위축과 산업 전반의 임금체계 연쇄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중앙노동위원회 주관 사후조정 절차를 진행했지만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협상을 종료했다. 협상 최대 쟁점은 성과급 산정 방식이었다. 회사 측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초과 성과에 대한 특별포상을 추가하는 ‘유연형 보상안’을 제시한 반면,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배분하고 상한제까지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위원장은 협상 결렬 직후 “저희가 우선 노사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 조정안을 요청드렸고 조정안을 12시간이 넘게 기다렸다”라며 “저희가 느끼기엔 조정안은 저희가 요구했던 것보다 조금 퇴보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 기다리는 건 의미가 없다, 적법하게 쟁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총파업 의지를 재확인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오전 사내 공지문을 통해 노조의 임금협상 사후조정 결렬 선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히며, 정부 중재로 진행된 협의가 무산된 데 안타까움을 표했다. 회사는 “노조의 이런 결정은 회사는 물론 협상 타결을 기다리는 임직원, 그리고 주주와 국민들에게 큰 걱정과 불안을 끼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고, 노조가 성과급 제도의 “경직된 제도화만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회사는 마지막까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긴급 대응에 나섰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어떠한 경우에도 파업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노사간의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파업은 절대 안 된다”며 원칙 있는 협상을 촉구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4월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를 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으면 다른 노동자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산업계는 이번 삼성전자 협상이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국내 산업 전반의 성과급 체계에 영향을 미칠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최근 카카오와 삼성바이오로직스, LG유플러스, 현대차 등에서도 영업이익 또는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고정 비율 성과급 제도화를 수용할 경우 유사한 요구가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과 공공부문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업황 변동성이 큰 대표적 사이클 산업인 만큼 성과급의 고정비화가 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경쟁 속에서 수십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R&D)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성과급이 사실상 준고정비로 굳어질 경우 업황 둔화나 적자 국면에서 투자 재원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생산 차질 규모가 수십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13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삼성전자 사례가 다른 대기업과 IT업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큰 만큼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성과급 제도 논쟁은 결국 기업의 성과가 누구의 몫인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연결된다”며 “산업 구조와 업황이 다른 만큼 모든 기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성과급을 100%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일부는 자사주로 지급하거나 상한선을 없애더라도 유연한 구조로 설계하는 절충안이 필요하다”며 “삼성의 결정은 다른 대기업·IT·자동차 업계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며, 협력업체에 대한 배려와 생태계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주선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기업&경제연구소장)도 노조 요구안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노동자는 이미 임금이 확정된 구조인 반면 기업과 주주는 손실 위험까지 부담하는 ‘잔여청구권자(residual claimant)’”라며 “성과급을 사실상 고정비처럼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처럼 대규모 투자와 업황 변동성이 큰 산업에서 성과급 고정비화가 이뤄지면 기업들의 자동화 투자만 더 가속화해 장기적으로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 같은 핵심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국가 경제 전체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 노조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제기한 위법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해 파업 개시 전날인 20일까지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노조 측은 법원 심문에서 “협박이나 폭행은 전혀 없을 것이고, 라인 시설 점거도 없이 사무실 점거만 진행할 예정”이라며 “적법한 쟁의행위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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