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장 사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 현장에서 열린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THE Biz(더비즈)=정대환 기자]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험실을 떠나 산업 현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가 올 하반기 ‘옵티머스’ 양산을 예고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아틀라스’의 양산형 모델을 공개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삼성전자·LG전자 등도 이르면 올 하반기 산업 현장에 로봇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부품 내재화로 ‘제조형 로봇’ 정조준
삼성전자는 지난달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 로드맵을 공개했다. 삼성전자의 전략은 핵심 부품의 내재화다. 박순철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로봇에 최적화된 맞춤형 부품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 중”이라며 제조형 로봇을 시작으로 홈·리테일 분야까지 로봇사업을 확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조직 정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말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며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했고, 단장은 국내 휴머노이드 권위자인 오준호 전 KAIST 교수가 맡았다. 최근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사내 채용을 통해 미래로봇추진단의 인력 확충에 나섰다.
노태문 DX 부문장 사장은 올해 초 세계 최대 IT·전자 전시회인 CES 2026에서 “로봇이 데이터를 축적하고 역량을 고도화하기 가장 적합한 곳이 제조 분야”라며 “다양한 제조 기반을 활용해 역량을 키운 뒤 B2B, B2C로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차원의 가시적 성과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3월 ‘인터배터리 2026’에서 세계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용 파우치형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선보였다. 삼성리서치는 지난달 로봇 제어 AI의 연산 단계를 기존 대비 3분의 1로 줄인 ‘샬로 파이’ 기술을 공개했다.
재계에서는 이르면 올 하반기 삼성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첫선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 휴머노이드 로봇은 정밀 공정이 필수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 라인에 가장 먼저 투입될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 1월 'CES 2026'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로봇 전문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휴머로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그룹, 2028년 연 3만대 아틀라스 양산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CES 2026 미디어데이에서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를 공개하며 양산형 모델 로드맵을 제시했다.
계획에 따르면 2028년까지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같은 해부터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서 부품 분류·서열 작업에 아틀라스를 단계적으로 투입한다. 2030년부터는 부품 조립 등 정밀 작업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투자 규모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사상 최대 규모인 125조 2000억원을 투자하고, 2025년부터 4년간 미국에 260억달러(약 37조원)를 집행할 계획이다.
그룹 내 분업 구도도 정리했다. 현대차·기아는 제조 인프라·공정 데이터를 제공하고, 현대모비스는 액추에이터를 공급하며, 현대글로비스는 물류·공급망 최적화를 담당한다. 현대모비스는 액추에이터 외에도 센서, 제어기, 핸드 그리퍼 등으로 부품 영역을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소프트웨어 협력도 다층적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구글 딥마인드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대규모 멀티모달 생성형 AI 제미나이 기반의 로보틱스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 동시에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AI 인프라와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한다.
제조 현장을 넘어 일상 공간 적용도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14일 서울 양재사옥에 관수로봇 ‘달이 가드너’, 배송로봇 ‘달이 딜리버리’, 보스턴다이내믹스 4족 보행로봇 ‘스팟’ 등 3종을 투입하며 사옥을 ‘로봇친화빌딩’으로 전환했다.
지난 1월 CES 2026에서 LG전자의 홈 로봇 '클로이드'가 빨래를 꺼내고 있다. 사진=LG전자
◆LG전자, 클로이드로 홈 로봇 상용화
LG전자는 CES 2026에서 클로이드를 처음 공개했다. 클로이드는 빨래를 개고 식기세척기를 비우며 음식을 식탁에 서빙하는 가사 시연을 선보였다. 류재철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CES 현장에서 “클로이드 상용화 일정을 앞당기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화 윤곽도 구체화하고 있다. 김창태 CFO는 지난달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기술검증(PoC) 실증 작업은 상반기부터 시작해 산업용과 홈 영역까지 점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라며 “가전사업을 통해 확보된 홈에 대한 이해와 도메인 경쟁력을 활용해 2028년 홈 로봇 상용화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부품 사업도 본격화한다. 액추에이터는 로봇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품으로 LG전자는 상반기 중 초도 물량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감속기 기술 내재화도 산학 연구를 통해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연간 4500만대 이상의 모터 생산을 통해 축적한 경량화·고효율·고토크 모터 기술과 정밀 제어 소프트웨어 설계 기술을 로봇 부품사업에 이식할 계획이다.
엔비디아와 협력도 확대됐다. 매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로보틱스 마케팅 수석이사는 지난달 28일 LG트윈타워에서 류재철 LG전자 사장 등 경영진과 회동했다. LG전자는 엔비디아의 GPU·AI 소프트웨어·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해 클로이드를 자율 판단·행동이 가능한 ‘AI 홈 파트너’로 고도화한다는 구상이다.
국민성장펀드 사무국. 사진=연합뉴스
◆미·중 패권 경쟁 속 ‘K-로봇’ 기회
미국의 중국 견제는 한국 로봇업체에 기회 요인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증권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산업의 패권은 미국·중국 양 진영이 가져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미국 로봇산업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한국 생산업체에게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다.
다만 중국의 가격 경쟁력은 만만치 않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 리서치에 따르면 주요 부품을 중국산으로 조달할 경우 휴머노이드 재료비는 지난해 3만5000달러에서 2030년 1만7000달러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팟캐스트에서 “중국은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전기모터, 희토류, 자석 등 로봇산업 기반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며 “세계 로봇산업은 중국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응해 한국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발표한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5년간 150조원을 인공지능·반도체·바이오·로봇 등 첨단전략산업에 공급한다. 펀드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민간·국민·금융권 자금 75조원으로 구성된다. 올해 30조원의 자금을 첨단산업 생태계 전반에 공급할 계획이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 휴머노이드의 초기 양산 결과와 기술 검증에 따라 산업의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라며 “기술력과 펀더멘털을 모두 갖춘 주요 기업 중심의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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