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2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앞줄 오른쪽)이 팹(반도체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THE Biz(더비즈)=천성윤 기자] 미국 빅테크 퀄컴의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를 만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급 계획을 논의한다.
삼성 파운드리 주요 고객사인 퀄컴과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 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지난해 테슬라 대형 수주에 이어 다시금 승전보를 올릴 지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
또 파운드리가 점점 빅테크의 신뢰를 받으며 기술력을 되찾는 신호를 보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굳건한 파운드리 사업 의지가 재조명되고 있다.
◆파운드리 대형 수주 눈앞… 퀄컴 CEO 방한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 사진=퀄컴
22일 업계에 따르면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는 전날 방한해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과 회동했다. 아몬 CEO의 이번 방한 주요 목적이 삼성 파운드리와의 만남인 것으로 알려지며 양사 간 구체적 미래 협력 논의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사는 이미 오랜 기간 협업 관계를 유지해 온 만큼,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다면 퀄컴이 신규 물량을 삼성 파운드리에 맡길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퀄컴은 과거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부터 기술·생산 파트너십을 맺었다. 퀄컴은 삼성전자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 시리즈를 비롯해 통신칩, 모뎀 등 다양한 제품군의 생산을 맡겼다. 이와 동시에 삼성전자는 자사의 스마트폰에 퀄컴 제품을 적극 도입하며 ‘윈윈 관계’가 형성됐다.
특히 삼성전자는 전략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 S 울트라 시리즈의 AP를 ‘S23 울트라(2023)’ 때부터 수년째 스냅드래곤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두텁게 신뢰한다. 퀄컴 또한 14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 4나노미터 등 반도체 전환기에서 삼성 파운드리의 첨단 기술력이 제품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
지난 2월 출시한 삼성전자의 최신형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6 울트라’에도 퀄컴의 AP가 채택됐다. 이 모델에는 전 세계 공통으로 갤럭시 전용 ‘스냅드래곤 8 엘리트 5세대’가 탑재됐다.
다만 이번 AP는 TSMC에서 제조가 이뤄졌다. 퀄컴은 시기마다 대만 TSMC와 삼성 파운드리 사이를 오가며 생산처를 나누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퀄컴의 관계를 협력하면서도 경쟁 구도에 있는 독특한 관계로 본다.
양사는 서로가 대형 고객이다. 삼성 파운드리는 퀄컴의 수주를 받아 칩을 생산하는 한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MX)는 퀄컴의 제품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시스템LSI 사업부가 만든 자체 AP인 ‘엑시노스’의 가장 큰 경쟁 제품이 스냅드래곤이다.
이 과정에서 엑시노스의 성능이 잘 나오면 퀄컴 의존도가 감소하고, 스냅드래곤이 강하면 엑시노스의 입지가 축소된다. 또 퀄컴이 생산처를 TSMC로 옮기면 삼성 파운드리가 타격을 입는다.
여기에 퀄컴은 TSMC와 협력하면서도 AP 초대형 고객인 삼성전자의 성공을 바라는, 문자 그대로 양사가 ‘밀고 당기는’ 관계가 형성됐다.
이번 방한한 아몬 CEO는 삼성전자와 삼성 파운드리의 2나노미터 공정을 활용해 차세대 스냅드래곤을 생산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 박람회(CES) 2026’ 현장에서 아몬 CEO는 “삼성전자와 2나노 공정 파운드리 논의를 시작했으며 설계 작업도 끝낸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계약이 체결되면 2022년 이후 TSMC에 주 물량을 맡겼던 퀄컴이 다시 삼성전자로 돌아온다. 업계에서는 삼성 파운드리가 수율과 발열에서 기술 발전 성과를 보이며 퀄컴을 비롯한 빅테크들의 극도로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만족한 것으로 분석한다.
◆파운드리 적자에도, 포기 않고 끌까지 간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한-프랑스 경제계 미래대화 폐회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 파운드리는 삼성전자의 대표적 ‘아픈 손가락’으로 평가된다. 먼저 이익을 못 내고 있다. 2023년 약 2조2000억원, 2024년 약 5조4000억원, 지난해 약 5조9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점유율에서도 엔비디아와 애플 등 초대형 고객을 유치한 TSMC의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기준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 69.9%, 삼성전자 7.2%로 약 62.7%포인트까지 크게 벌어졌다.
그럼에도 파운드리는 최첨단 반도체 기술력의 척도나 다름 없기 때문에, 삼성전자로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파운드리는 고객(팹리스)이 설계한 복잡한 칩을 가장 미세한 공정, 가장 높은 수율, 가장 낮은 전력, 가장 빠른 성능으로 만들어야 하는 분야다. 공정 완성도는 물론, 극자외선 노광(EUV) 활용 역량, 대량 생산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빅테크에 선택받는 것이 곧 기술의 입증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파운드리에서 개발한 공정이 메모리 제조, 첨단 패키징 등에도 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업이 아닌 반도체 기술의 엔진과 같은 역할도 한다.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두뇌격인 베이스 다이(Base Die)도 삼성 파운드리가 직접 생산하며 인공지능(AI) 메모리와도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난해 7월 삼성 파운드리는 테슬라로부터 165억달러(약 24조원) 규모의 차세대 AI칩 주문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의 AI칩은 자율주행, AI, 고성능 연산, 로보틱스에 모두 활용되기 때문에 등 요구 수준이 아주 높다”며 “그럼에도 생산 파트너로 삼성 파운드리를 낙점한 것은 시장에 첨단 기술력이 올라왔다는 시그널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테슬라 수주의 마케팅 효과도 높아 빅테크의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파운드리의 부활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강한 사업 의지가 반영됐다. 2024년 삼성 파운드리가 극도로 부진해 전사적 실적을 끌어내리자 업계에서는 파운드리 분사설이 구체적인 형태로 흘러나왔다.
이에 이 회장은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사업을 성장시키고 싶다”며 “분사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분사설은 완전히 사그러 들었다.
이 회장은 삼성 파운드리의 적자 폭을 점차 개선하면서 TSMC를 추격하는 그림을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점유율에서 당장 TSMC를 앞서긴 어려우나, 첨단 공정의 기술 신뢰도를 지속적으로 입증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후발주자를 따돌리겠다는 계획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해 삼성 파운드리, 시스템LSI 사업부의 수익성은 예상보다 빠르게 좋아질 것”이라며 “HBM 베이스 다이 출하량 증가에 따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