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기 범죄를 막기 위해 도입된 계좌 지급정지 제도가 최근 들어 오히려 범죄 조직의 공격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무고한 시민과 공익단체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범죄를 막기 위해 만든 제도가 범죄자의 손에 의해 무력화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도박 예방 활동을 이어온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교장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신고해 수천 개의 대포통장을 정지시켰다. 그런데 최근 그의 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지급정지'라는 명목으로 동결됐다. 범죄 조직이 보복성으로 제도를 악용해 공익단체를 무력화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성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 씨 역시 누군가 범죄수익을 무단 입금하고 신고하는 방식으로 계좌가 정지되는 피해를 겪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보이스피싱 신고가 접수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계좌는 우선 동결된다. 이 과정에서 범죄자가 의도적으로 무고한 시민을 표적으로 삼아 계좌를 마비시키는 '지급정지 테러'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5대 은행에서 지급정지된 계좌는 14만9000여 건에 달했고, 올해 들어서만 7만2000건으로 전년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제도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피해 규모가 급증하는 현실은 심각하다.
계좌가 정지되면 입출금은 물론 자동이체와 각종 결제가 중단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영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발생한다. 공익단체 활동가가 표적이 되는 경우는 사회적 손실이 더욱 크다. 범죄 예방 제도가 범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무고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이 시급하다. 은행은 소액 입금만으로 전체 계좌를 정지시키는 방식 대신 점검 절차를 통해 불법 용도로 사용된 계좌만 선별하도록 할 책임이 있다.
신고 즉시 전면 동결이 아니라, 신속한 조사와 부분적 제한을 병행하는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 하루빨리 제도를 개선해 범죄자는 철저히 막고, 무고한 시민은 보호하는 균형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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