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과 실천, 개혁, 경전 재해석…세 유학자가 시대의 질문에 답한 방식
‘조식’, ‘이이’, ‘윤후’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세 명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이 한꺼번에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14일 조식·이이·윤휴를 각각 다룬 ‘조식’, ‘이이’, ‘윤휴’ 3권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세 권은 한국 사상가의 궤적을 탐구하는 교양총서 ‘사유의 한국사’ 시리즈에 속한다.
사화의 시대 조식, 배운 대로 사는 공부를 택하다
조식은 퇴계 이황과 같은 해에 태어나 16세기 영남 유학을 이끈 학자지만 오늘날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성리학 이론을 정리한 저술을 따로 남기지 않은 데다 조선 유학사가 이기론·심성론 중심으로 서술되면서 남명학이 조명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식은 ‘경’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의’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내면의 수양을 현실의 실천으로 이어가고자 했다. 관직을 사양하고 초야에 머물렀지만 상소로 정치의 폐단을 직언했다. 최석기 경상국립대 교수의 ‘조식’은 ‘남명집’과 ‘학기유편’, 상소문 등을 살펴 남명학의 본질과 위상을 다시 짚는다.
성리학자 이이, 알고 보니 ‘경장’을 외친 개혁가
이이는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꼽힌다. 그러나 철학과 정치·경세·교육을 두루 탐구한 통유였다. 그는 16세기 후반을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하는 ‘경장의 시대’로 진단하고 기강과 공론을 바로 세울 개혁안을 내놓았다. 이상익 부산교대 교수의 ‘이이’는 그 바탕에 실제에 힘쓰고 실질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무실’의 정신이 있었다고 짚는다.
병자호란 뒤 경전을 다시 읽은 윤휴, 역모로 처형되고 금기가 되다
윤휴가 살아간 17세기는 병자호란으로 청에 굴복한 뒤 국가를 다시 세우는 일이 절박한 과제였다. 윤휴는 주자학적 질서만으로는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보고 ‘중용’, ‘대학’ 등 경전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며 북벌과 부국강병을 주장했다.
주희의 해석을 벗어난 그의 학문은 송시열 등 서인계 학자들과 크게 충돌했다. ‘중용’의 체제와 해석을 주희와 달리한 점이 대표적이었고, 북벌·예송 등 정치 현안에서도 부딪혔다. ‘사문난적’이라는 극단적인 비판을 받았고 결국 역모 혐의로 처형되면서 그의 사상도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다. 정호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의 ‘윤휴’는 낙인을 반복하지 않고 그가 왜 그런 학문과 정책을 제시했는지를 17세기의 현실 속에서 추적한다.
엇갈린 평가까지 담았다…조선 유학사도 후대의 선택
이이는 조식을 ‘도학군자’로 보는 당시 평가와 달리 ‘일민’으로 보았지만, 이후 김성일·송시열 등은 조식을 도학자로 평가했다. 이이 역시 서인계에서는 크게 존숭받았으나 영남학파에서는 비판받았다. 윤휴의 사상은 일부 남인 학자들을 통해 이어져 이익·권철신·정약용 등이 검토했고, 근현대에 들어 다시 연구되기 시작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관계자는 “세 사람에게서 하나의 공통된 사상을 찾기보다 같은 유학의 전통 안에서 서로 다른 시대적 문제에 어떻게 답했는지를 비교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을 평가해 온 과정까지 살피면 우리가 아는 조선 유학사 또한 후대의 선택과 평가를 거쳐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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