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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비타민 주사’로 설명한 납 중독 치료제…의협 “환자 안전 위협”

납 중독 치료에 쓰이는 ‘킬레이션 주사제’가 비타민·피로 회복 주사로 홍보되거나 사업장의 유해물질 노출을 감추는 데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효능을 내세우거나 환자의 상태와 치료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은 투약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의사협회 회관 전경. 박효상 기자

납 중독 치료에 쓰이는 ‘킬레이션 주사제’가 비타민·피로 회복 주사로 홍보되거나 사업장의 유해물질 노출을 감추는 데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효능을 내세우거나 환자의 상태와 치료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은 투약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협은 23일 입장문을 내고 킬레이션 주사제를 피로 회복이나 항노화 목적으로 홍보·사용하는 행태에 우려를 나타냈다. 일부 사업장에서 작업환경 개선 대신 규제를 피하는 수단으로 의약품을 사용했다는 의혹도 문제 삼았다.

의협은 “부적절한 의약품 사용은 국민 건강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금속 중독 치료라는 의학적 필요에 따라 사용해야 할 약물을 근거가 부족한 효능을 내세워 투여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의원급 공급 73.3%…“처방의 적절성 확인해야”

킬레이션 주사제는 체내 중금속과 결합해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약물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에데트산칼슘디나트륨 성분 주사제는 납 중독 치료에 사용된다. 일반적인 비타민 보충 주사와는 용도와 작용 방식이 다르다.

투여 과정에서 신장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환자의 중독 상태와 신장 기능 등을 확인하고 치료의 이익과 위험을 따져야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전국 의료기관에 공급된 킬레이션 주사제는 총 53만1230개, 공급 금액은 62억9300만원이다.

킬레이션 주사제의 본래 용도와 안전성 우려를 정리한 그래픽. 챗GPT 생성 사진

이 가운데 의원급 의료기관 공급량은 38만9470개로 전체의 73.3%를 차지했다. 공급 금액도 46억1800만원으로 전체의 73.4%에 달했다. 같은 기간 상급종합병원 공급량은 3290개, 종합병원은 4만180개, 병원급은 9만8290개였다.

다만 공급 통계만으로 의원급에 유통된 약물이 모두 부적절하게 사용됐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핵심은 의료기관의 규모보다 의학적 필요에 맞게 처방했는지 여부다.

의협은 “충분한 의학적 근거 없이 특정 효능이 있는 것처럼 홍보하거나, 환자 상태와 치료 필요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사용하는 것은 환자 안전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진단 앞두고 투여 의혹…작업환경 개선 대신 수치 낮췄나

DN오토모티브 울산공장에서는 특수건강진단을 앞두고 노동자들에게 킬레이션 주사제를 비타민 주사라고 설명하며 투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사전에 충분한 선택권을 갖지 못한 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주사를 맞았고, 혈중 납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추가 투약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혈압 상승과 시야 이상, 손 저림, 혈뇨 등의 증상도 호소했다.

문제는 치료제가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목적이 아니라 건강진단 수치를 낮추는 수단으로 사용됐는지 여부다. 납 노출이 계속되는 작업환경을 그대로 둔 채 약물로 검사 수치에 영향을 주려 했다면 근본적인 유해요인은 남겨둔 채 노동자에게 투약 위험까지 더한 셈이 된다.

의협은 특정 작업환경을 가진 사업장에서 근본적인 환경 개선 대신 손쉽게 규제를 피하려고 의약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례를 문제로 지목했다. 의약품은 환자 안전을 고려한 의사의 전문적 판단 아래 사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전경. 박효상 기자

정부와 수사당국도 조사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공장 정밀 감독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68건을 적발해 과태료 4620만원을 부과했다. 기준치의 5배가 넘는 납이 검출된 공정에는 사용 중지 명령을 내렸다. 건강진단 방해 혐의와 관련해 회사와 해당 의료기관은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정부는 동종 배터리 제조 사업장 14곳으로 조사를 확대하고, 건강진단 수치 조작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도 관련 실태를 확인하고 허위·과장 광고를 하는 의료기관 등에 대한 관리에 나설 방침이다.

의료계는 이번 사안을 의약품의 적정 사용과 환자의 알 권리 문제로 보고 있다. 치료 목적과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비타민’, ‘피로 회복’, ‘항노화’ 등의 표현을 앞세우면 환자가 약물의 성격을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협은 “의약품의 효능과 안전성 정보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제공돼야 하고, 근거가 부족한 효능을 과장해 국민의 오인을 부르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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