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 시절, 안경닦이 하나를 두고 렌즈 코팅의 분자 구조까지 톺아보며 “세상에 이런 디테일이!”를 외치던 그 순수했던 리뷰 노예 불가사리를 기억하는가.
그랬던 내가 서정아트센터의 조 단위 미술품 사기에 휘말려 뒤통수를 까이고, 캄보디아 지옥도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으며, 오피스텔 분양권과 로맨스 스캠으로 통장 잔고가 ‘0’을 넘어 아득한 마이너스의 심연으로 처박혔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식어 빠진 돈까스 쪼가리와 깡소주 병, 그리고 하루에 여덟 번씩 울려대는 채권 추심 전화만이 뒹굴고 있다. 술과 돈까스로 쌓아 올린 이 비루한 육신엔 이제 빚더미와 너덜너덜해진 영혼만 남았다.
그런데 말이다. 인간의 탐욕은 뇌관을 뽑아버린 수류탄과 같아서, 이성적인 통제가 불가능하다. 코스피 지수 5,000이 상수가 되고 온 나라가 들썩이는 지금, 내 안의 굶주린 요괴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뉴스에선 ‘동학 개미’니 뭐니 하며 누군가 코인과 주식으로 퇴사했다는 전설이 들려오는데, 내 마이너스 통장의 파란불만 보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이 썩은 피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고 다가왔다.
1장. 미끼: 새벽 3시, 알고리즘이 점지한 ‘구세주’
잠이 오지 않던 새벽 3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쇼츠를 무의미하게 위로 넘기던 내 엄지손가락이 멈칫했다. 어두운 방 안, 스마트폰의 푸른 불빛 사이로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염블리’ 염승환 이사, 나 정도 고수는 되어야 알 수 있는 사모펀드의 함춘승 대표, 심지어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번갈아 가며 나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코스피 5,000시대, 아직도 쥐꼬리만 한 월급만 쳐다보고 계십니까? 상위 1%만 아는 세력의 매집 종목, 제가 직접 운영하는 무료 공부방에서 딱 100분께만 공개합니다. 지금 바로 입장하세요.”
홀렸다. 평소 같으면 “어디서 약을 팔아?” 하고 넘겼겠지만, 특유의 억양과 제스처, 신뢰감 넘치는 중저음의 보이스가 너무나도 완벽했다. 나중에 박기태 변호사에게 듣고 나서야 알았다. 그게 AI로 빚어낸 정교한 ‘딥페이크(Deepfake)’ 영상이거나, 기존 영상에 AI 음성만 교묘하게 덧입힌 끔찍한 사이버 요괴였다는 것을.
하지만 독촉 전화에 시달리던 새벽 3시의 뇌는 합리적 의심을 거세당한 상태였다. 이거 하나면 캄보디아 빚도 갚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홀린 듯 영상 하단의 ‘무료 카톡방 입장하기’ 링크를 눌렀다. 스스로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2장. 가스라이팅 아카데미: ‘성장하는 개미들’의 1일 1종목의 기적
카톡방에 입장하자, 무려 500명이 넘는 개미들이 바글거렸다. 방장인 ‘교수님’은 다짜고짜 돈부터 내놓으라며 윽박지르는 과거의 삼류 사기꾼이 아니었다. 이들의 수법은 흡사 신흥 종교의 세뇌 캠프보다 치밀하고 다정했다.
매일 저녁 7시의 성불(成佛):
매일 저녁 7시 정각이 되면 어김없이 실시간 오디오 라이브가 켜졌다. 세계 경제 시황,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 차트 분석까지 읊어대는 솜씨가 가히 월스트리트 급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건 증권사 리포트를 긁어모아 AI 음성으로 읽어주는 스크립트 쪼가리에 불과했다.
지독한 근태 관리:
매일 아침 단톡방에서 출석 체크를 시켰다. 성실하게 출석하는 사람들에게만 VVIP 정보를 준다며 초등학교 시절 개근상 한 번 못 받아본 내가, 매일 아침 8시 50분이면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불가사리 출석!”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아침 9시 주식 시장 개장 전. 이 방의 도파민이 폭발하는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자신을 ‘시티 글로벌 마켓 증권 함춘승 대표’라고 소개한 자가 폼나는 명함 사진과 함께 등장해, 그날의 ‘특급 추천 종목’을 딱 하나씩 던져주었다.
글로벌 금융기관의 이름과 유명인의 타이틀을 교묘하게 도용한 가짜 명함. 조잡해 보이지만 카톡방의 광기 속에선 마패처럼 보인다.
나 불가사리,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의심병 환자다. 처음 한 달은 그저 팔짱 끼고 관망만 했다. 그런데... 함 대표가 “내일은 이 종목 상한가 갑니다” 하고 던져준 종목이, 진짜로 다음 날 미친 듯이 붉은 기둥을 뿜으며 솟구치는 게 아닌가! 주식 활황장에서는 아무거나 찍어도 오를 확률이 높고, 이놈들은 수십 개의 카톡방에서 각기 다른 종목을 던져놓고 맞춘 방만 살려두는 극악무도한 ‘생존 게임’ 수법을 쓴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함 대표의 추천 종목이 적중할 때마다 단톡방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함 대표님! 어제 짚어주신 종목으로 오늘 20% 먹었습니다! 딸아이 대학 등록금 해결했습니다 ㅠㅠ!”
“저는 이번 수익으로 제네시스 계약금 넣었습니다. 시티 증권 만세! 함 대표님은 제 인생의 은인이십니다!”
무려 3개월의 가스라이팅. 나는 서서히 이 방의 광기에 동화되었다. 훗날 경찰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방에서 환호하며 수익 인증샷을 올리던 60명의 열성 당원들은 PC방 구석에서 듀얼 모니터를 띄워놓고 매크로를 돌리던 20대 알바생 한 명의 1인 60역이었다. 나는 시급 1만 원짜리 키보드 워리어의 손가락 놀음에 내 남은 인생을 통째로 걸었던 것이다.
3장. 클라이맥스: ‘으쌰으쌰 프로젝트’와 가짜 HTS의 마법
3개월의 치밀한 빌드업 끝에, 놈들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함 대표가 비장한 장문의 공지를 띄웠다.
“자, 여러분. 기관과 외인에게 당하기만 했던 우리 개미들이 반격할 때가 왔습니다. 이름하여 ‘으쌰으쌰 프로젝트’! 우리가 직접 거대한 자금 세력이 되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겁니다. 수익률 800% 보장합니다. 단, 보안을 위해 특별한 거래소 앱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들이 보내준 링크를 눌러 앱(HTS)을 설치했다. 소름 돋게도 키움증권 영웅문과 디자인, 폰트, 호가창 움직임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매수/매도 버튼도 완벽하게 작동했다. 사기꾼들이 수천만 원을 주고 중국 해커들에게 외주를 맡겨 만든 100% 가짜 껍데기 앱이었다.
나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은행 대출이 막히자, 놈들은 부동산 담보를 이용해 P2P 대출(온라인투자연계금융)을 받으면 흔적도 안 남고 한도도 잘 나온다며 친절하게 대출 업체 링크까지 쥐여주었다.
나는 살고 있던 반전세 보증금을 담보로 P2P 대출을 받고, 카드론에, 지인들에게 “일주일 뒤에 두 배로 갚겠다”라며 무릎을 꿇고 빌린 돈까지 영혼의 밑바닥까지 긁어모아 그들이 지정해 준 ‘대포통장’으로 입금했다.
효과는 경이로웠다. 내 가짜 앱 계좌의 숫자는 숨 쉴 틈 없이 불어났다. 1천만 원이 1억이 되고, 1억이 10억이 되는 마법. 호가창이 번쩍일 때마다 내 심장도 터질 듯이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계좌에 '10,000,000,000원(100억)'이 찍히던 날 밤. 나는 혼자 방구석에서 참치캔 하나를 까놓고 소주를 병나발로 불며 오열했다.
“끝났다... 지긋지긋한 빚쟁이 인생도 끝이다. 드디어 나도 매일 특등급 안심 돈까스 정식을 사 먹을 수 있겠구나!”
4장. 러그풀(Rug Pull): “세금 20% 먼저 내세요”
대망의 인출일. 나는 손을 덜덜 떨며 가짜 앱의 ‘출금’ 버튼을 눌렀다. 로딩 창이 빙글빙글 돌았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삐빅. [오류: 출금이 정지되었습니다.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순간 방 안의 온도가 10도쯤 떨어지는 것 같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황급히 ‘비서님’에게 개인톡을 보냈다.
“비, 비서님! 출금이 안 되는데요? 저 당장 내일 빚 갚아야 하는데…”
“아, 불가사리 회원님.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수익금이 100억 단위로 너무 커서 금융감독원 자금세탁방지 모니터링에 걸려버렸네요.
”
“네?! 금감원이요? 그럼 어떡하죠?”
“걱정 마십시오. 정상적으로 인출하시려면,
100억에 대한 수익 세금 20%
와
보장성 보증금 3억 원을 먼저 ‘안전 계좌’로 입금하셔야 락이 풀립니다.
입금 확인되는 즉시 100억 한 번에 쏴드립니다.”
...쿵.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돈을 찾으려면 돈을 더 내라니. 내 돈은 내 계좌에 있는데 왜 내 주머니에서 생돈을 꺼내 세금을 내란 말인가?
순간 뇌리에 섬광이 스쳤다. 서정 아트센터에서 내게 그림을 팔아넘기려던 딜러의 썩소, 캄보디아에서 나를 가뒀던 놈들의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또 당했다. 나는 100억 자산가가 아니라, 시급 1만 원짜리 알바생의 연기에 놀아난, 우주 최고의 호구였던 것이다.
5장. 박기태 변호사의 일침: “P2P 대출이 왜 고속도로인지 아십니까?”
그 길로 나는 산발을 한 채 박기태 변호사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내 몰골을 본 박 변호사는, 거대한 뱃살을 출렁이며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불가사리님. 대체 언제까지 이런 똥만 골라서 밟으실 겁니까? 이번엔
1금융권 은행 대출도 꽉 막히니까 기어코 P2P 대출(온라인투자연계금융)까지 끌어다 쓰셨네요?
”
“(훌쩍) 그, 그놈들이 부동산 담보로
P2P 대출받는 게 대출금도 빵빵하게 나오고 신용 기록도 안전하다고…
”
박 변호사가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번쩍 치켜올리며 책상을 내리쳤다.
“그게 놈들의 핵심 타겟입니다! 불가사리님, 잘 들으세요. 신한은행, 기업은행 같은 1금융권은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FDS)’
이 그나마 돌아갑니다.
갑자기 억 단위 큰돈이 수상한 계좌(대포통장)로 쑥 빠지면
바로 은행에서
‘고객님, 보이스 피싱 아닙니까?’
하고 전화가 오고
이체가 막혀버립니다.
국민은행이 좀 느리긴 해도 시스템 자체는 돌아가요.”
그는 화이트보드에 펜을 탁탁 두드리며 일갈했다.
“근데
P2P 대출 업체들? 이런 감시망이 뻥 뚫려있는 아우토반
입니다. 대출은 기가 막히게 잘해주면서, 그 돈이 사기꾼 통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감시할 시스템이 현저히 부실해요. 사기꾼들이 가장 군침 흘리는, 호구 사냥터의 고속도로 하이패스라고요!”
나는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내 100억... 아니, 내 전 재산... 내 보증금... 이제 나는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하지만, 징징대지 마십시오. 해외에 서버를 둔 총책을 캄보디아에서 잡아 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우리는 ‘방조 책임’을 물을 겁니다.
”
“방조 책임이요...? 그게 뭡니까?”
“명백하게 의심스러운
대포통장으로 거액이 넘어가는 걸 멍청하게 승인해 준 금융사와 P2P 업체들을 상대로 민사 소송
을 낼 겁니다. 최근 법원에서도
‘너희들이 이상 거래를 막지 못했으니 일부 책임이 있다’
라며 금융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어요. 눈 뜨고 코 베이게 놔둔 놈들도 법의 쓴맛을 보게 해야죠.”
6장. 끝나지 않은 전쟁, 그리고 경고
코스피 5,000을 외치는 달콤한 유튜브 영상 뒤에는, 전문가의 딥페이크 가면을 쓰고 당신의 뼈와 살을 발라 먹을 준비를 마친 요괴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딴지 독자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경고한다.
‘소수만 참여 가능’
‘원금 보장에 800% 고수익’
‘세력을 모아 주가를 올린다(주력 프로젝트, 퀀텀 프로젝트)’
이 문장을 보는 순간, 그냥 스마트폰을 변기에 던져버리고 물을 내리는 게 당신의 인생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전하게 단기간에 800%를 벌어다 주는 사람은 당신의 부모님도, 워렌 버핏도, AI 염승환도 아니다.
나 불가사리는 박기태 변호사와 함께, 내 피 같은 돈을 호구처럼 승인해 준 금융사들과 피 튀기는 소송전에 돌입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도 모른다. 승소 확률?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미친 사기판의 구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놈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는지, 그리고 방관하는 금융사들의 민낯이 어떠한지, 이 ‘법률 대모험’을 통해 낱낱이 까발릴 것이다.
부디, 당신만은 그 빌어먹을 ‘무료 카톡방’에 입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호구 짓은, 나 불가사리 하나로 족하니까.
본 기사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실제 범행 자료입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마성의불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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