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데이비드 호닉
반려견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는 파멜라와 데이비드 호닉 부부는 샌프란시스코 아트씬의 아이콘이 됐다.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아티스트 듀오 키아키오와 지아노네(Chiachio & Giannone)의 ‘천 조각 수집가들(Coleccionistas de trapos)’, 2022년, 손바느질한 퀼트, 210×190㎝. (호닉 컬렉션 제공)
벤처 투자자 데이비드 호닉에게 투자란 ‘멋진 사람을 만나 누구에게 베팅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그는 남들이 회의적일 때 스플렁크와 빌닷컴(BILL)의 잠재력을 알아봤다. 특히 르네 라세르트(Rene Lacerte)와 25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현재 미국 경제에서 100달러 중 1달러가 BILL 시스템을 통해 지불될 만큼 성공을 거뒀다. 그가 지표보다 먼저 보는 것은 ‘창업자의 진정성’이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창업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창업은 정말 어렵고 대부분 실패하거든요. 훌륭한 창업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합니다. ‘고칠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그 사명 덕분에 어두운 시절을 견뎌냅니다. 제가 투자한 메인테인엑스(MaintainX)의 크리스 툴리카(Chris Turlica)가 대표적입니다. 지금은 이 모바일 운영관리 시스템으로 맥도날드·볼보·DHL은 식품 안전, 제조 라인, 물류 창고를 관리합니다. 절차 하나가 누락되면 소비자가 식중독에 걸리거나 직원이 다칠 수 있어요. 이 소프트웨어는 사고가 나기 전에 잠재적 문제를 미리 찾아냅니다. 저는 사업 규모보다, 이 시스템이 실제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는 점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그의 투자 통찰력은 뜻밖에도 음악과 예술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싹텄다. 스탠퍼드대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컴퓨터음악’을 전공, 컴퓨터가 바이올린 소리를 내게 하고 바이올린이 컴퓨터 소리를 내도록 디자인하는 데 정열을 쏟았다. 졸업할 때는 베이스 연주자가 됐지만 말이다. 케임브리지에서 범죄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된 그는 벤처 투자가들을 돕던 중 깨달았다. 새로운 아이디어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세상을 바꾸는 벤처야말로 그가 찾던 가장 역동적인 예술이라는 점을 말이다.
음악에서 심리학, 법학을 거쳐 벤처로 장르를 가로지르며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포착해온 이 감각은 미술 수집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데이비드와 그의 아내 파멜라(Pamela)는 열정적 컬렉터 부부로, 이들이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전시장에 등장하는 모습은 이제 샌프란시스코 아트씬의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부부는 전시를 ‘함께’ 보는 것을 선호한다. 각자 보게 되면 사진을 바로바로 공유하고 온라인으로 토론할 정도라고. 이러한 경험 공유가 부부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이다.
세상에는 멋진 작품이 너무 많기에 이들의 벽은 금방 찼고, 소장품 대부분을 보관할 공간이 없어 창고에 넣어두거나 미술관에 대여해놓은 상태였으니, 철거를 앞둔 쓰러져가는 옆집이 눈에 들어온 건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연 채광이 쏟아지는 이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에는 앤디 워홀, 척 클로즈, 샹탈 조페 등 이름난 작가들은 물론 신예 작가들이 다양한 매체로 구현한 초상화 컬렉션이 손님들을 맞는다. 매끈하고 아름다운 얼굴보다는 복잡한 이야기가 담긴 표정을 사랑한다는 파멜라의 취향은 컬렉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여성, 퀴어, 논바이너리, 아시아·아프리카계 미국 작가의 작품으로 가득한 거실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는 훈련을 매일 하는 셈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이들의 사랑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반려견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부부는 ‘종을 초월한 유대’를 보여주는 작품에 빠졌고, 특히 파멜라의 열정은 2023년 ‘Some Dogs’라는 전시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수백 점에 이르는 방대한 컬렉션은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댈러스, 뉴욕, 알래스카까지 순회 전시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고 작년에는 ‘Some More Dogs’라는 후속 전시로 열기를 이어갔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반응에 그녀도 많이 놀랐다. 사실 애초엔 집에서 키우는 개들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수집이었다. 처음엔 벽 하나를 채우는 정도였으나 이제는 별도의 웹사이트를 구축해야 할 만큼 방대해졌다. 컬렉션 중 그녀에게는 개를 테마로 한 작품들이 가장 큰 기쁨을 준다. 반려견을 담은 예술이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계산되지 않은 ‘순수함’과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라 그녀는 생각한다.
(위)부부는 아름다운 얼굴보다 복잡한 얼굴의 인물화를 사랑한다. 샹탈 조페(Chantal Joffe)의 ‘망사 스타킹을 신은 샐리(Sally in Fishnet Tights)’, 2012년, 캔버스에 유채, 214×153㎝. (호닉 컬렉션 제공)
(아래)파멜라가 가장 사랑해 침실에 걸어놓은 두 드로잉은 우리나라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정은혜 작가의 작품이다. 정은혜, ‘날 데려가줘요’ ‘이제는 행복한 지로’, 2023년, 한지에 콩테, 각각 71×59㎝, 63.5x85㎝. (호닉 컬렉션 제공)
투자·예술의 최우선 가치 ‘아름다움의 본질’
흔히 냉철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스타트업 투자가와 감성적인 예술 컬렉터의 세계를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둘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 데이비드에게 벤처 기업과 예술 작품에서 공통으로 발견하는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지 물었다.
“ ‘공감’입니다. 창업자와 예술가 모두 공감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저희 부부가 수집한 예술품들은 인간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담아내며 작가와 대상 사이의 감정적 교감을 표현합니다. 스타트업 역시 인간이 직면한 도전과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죠. 두 분야 모두 성공하려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아, 그리고 작품을 소장할 때는 남의 시선도, 미래의 가치도, 갤러리스트의 판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사세요. 결국 그 그림과 매일 아침 눈을 맞추며 살아갈 사람은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죠. 결국 성공적인 투자와 위대한 수집의 끝은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 귀결됩니다.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그 작품이, 곧 당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가장 완벽한 투자가 될 것입니다.”
데이비드가 대학원 시절부터 여행할 때마다 한 권씩 모아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컬렉션도 1000권이 넘는다. 동일한 텍스트가 전혀 다른 삽화로 묘사된다는 점에 매료돼 수집을 시작했다. 각기 다른 문화의 시선으로 세상이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관찰하는 이 지적 모험은, 곧 ‘타자성의 수용’이라는 컬렉팅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물론 한국어판도 소장 중이다. 커리어 초기 서울에서 한 달간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기도 했던 그는 ‘한국의 비범한 문화적·미적 유산을 담은’ 또 다른 앨리스 판본과 서울 방문을 고대하고 있다며 특별한 애정을 전해왔다. 벤처투자와 컬렉팅에 관한 그의 통찰을 가까운 시일 내에 직접 듣게 되기를 이쪽에서도 고대해 본다.
[김지은 방송인· 저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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