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박동선 기자] 숫자는 웃고 있지만 실속은 마르고 있다. 앨범 판매량은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매출 곡선은 가파른 우상향을 그리지만, K팝 시장은 ‘수익성 보릿고개’라는 역설적인 국면에 진입한 모습이다. 전 세계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며 팬덤의 실질적인 ‘지갑’을 열게 할 메가 IP의 세대교체가 시장의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는 우려가 자본시장을 냉하게 적시고 있다.
하이브, SM엔터, JYP엔터, YG엔터 로고. 사진=각 사 제공
◇ 연간 '퀀텀 점프'와 분기별 '수익성 엇박자'
K팝 기획사들이 지난해 거둔 경영 지표는 외형적 팽창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하이브는 2조 6499억 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으며, SM 역시 4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인 3190억 원을 달성하며 뚜렷한 턴어라운드를 시현했다. YG 또한 713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지드래곤 등 톱티어 IP 시너지를 통해 2988억 원의 매출 고지를 밟았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대형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FNC는 비핵심 사업 정리를 통한 체질 개선으로 1024억 원의 매출을 확정 지었으며,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아이브'와 큐브엔터테인먼트의 '아이들' 등 중견 기획사의 주력 IP들 역시 글로벌 무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견조한 실적을 뒷받침했다. 이는 K팝의 전체 파이가 여전히 유효하게 팽창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지표로 풀이된다.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 뮤직
다만 이러한 연간 단위의 외형 성장세와 달리, 투자업계에서 바라보는 2026년 1분기 예상 성적표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하이브(401억 원), JYP(230억 원), YG(185억 원)의 예상 영업이익은 시장 컨센서스를 밑돌 것으로 관측되며, SM(367억 원)만이 겨우 부합하는 수준으로 분석된다. 이는 신규 라인업 론칭과 다국적 현지화 프로젝트 등에 막대한 자본적 지출(CAPEX)이 투입되면서, 전사적인 마진율 방어에 고전하고 있는 현실을 투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 4·5세대 '보릿고개'와 지출 파고
실적상 드러난 한계점의 핵심은 4~5세대 그룹들의 '기초체력'이 아직 메가급 파이를 온전히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과거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가 북미와 유럽에서 150~500만 명 규모의 투어를 돌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시장의 주력인 4~5세대의 모객 능력은 스타디움급을 소화하기에 다소 시간이 필요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블랙핑크. 사진=YG엔터테인먼트
특히 4·5세대 IP들의 화제성 대비 옅은 팬덤 결집력은 비단 빅4 기획사뿐만 아니라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중견 이하 기획사 전반의 공통된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할 만큼 팬덤의 깊이가 여물지 않았다는 지점은 산업 전반의 수익성 보릿고개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결국 차세대 그룹들이 메가 IP로 도약하기까지 발생하는 '시간의 공백'이 기획사들에게는 고스란히 재무적 부담으로 직결되는 셈이다. 이 공백기를 버텨내며 장기적인 안정 기조를 확보해야 하는 빅4 기획사의 구체적인 리스크와 당면 과제는 각사의 상황에 따라 선명하게 엇갈린다.
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에서는 산토스 브라보스(드루, 알레한드로, 카우에, 가비, 케네스)의 첫 내한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하이브라틴아메리카
하이브의 경우 북남미 시장에서 '캣츠아이'가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산토스 브라보스'와 캣츠아이 여동생 그룹 론칭, 인도법인 오디션 운영 등에 따른 광범위한 비용 지출이 마진율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컴백과 동시에 투어 첫 공연을 시작한 '방탄소년단'의 실적 견인 효과가 재무제표에 온전히 녹아들기 전까지 '코르티스', '투어스', '아일릿' 등 신규 IP 운영 비용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SM은 슈퍼주니어와 엑소 등 롱런 IP들의 연초 활약과 에스파의 견조한 글로벌 행보, '하츠투하츠'의 화제성 성장이 긍정적인 축을 담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NCT 마크의 이탈 이슈에 따른 관련 유닛 활동의 불확실성과 'SMTR25' 론칭 및 '하츠투하츠'의 실질적 성장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해외향 그룹들의 활약도가 부족한 점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SMTR25. 사진=SM엔터테인먼트
JYP는 '스트레이 키즈'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해소하기 위해 '엔믹스'의 라틴권 반향과 '있지'의 글로벌 파이 확대가 시급한 것으로 전해지며, YG는 '블랙핑크'의 활동 공백 속에서 '빅뱅' 프로젝트에 힘을 싣는 한편, 높은 연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성장이 고전 중인 '트레저'의 분발과 '베이비몬스터'의 모객력 증명이 절실한 상황이다.
◇ 전략적 플랫폼 연계와 밸류체인 다원화 포석
다만 이러한 정체기를 단순한 위기로만 치부하기엔 K팝 산업의 생태계가 매우 다원화되고 성숙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익 구조가 더 이상 아티스트의 앨범 발매나 공연 등 직접 활동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아티스트 중심의 단일 수익 모델은 이제 하이브의 '위버스', SM의 '디어유', 카카오의 '베리즈', 비마이프렌즈의 '비스테이지' 등 강력한 팬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YG PLUS 등을 필두로 한 체계적인 MD 유통 네트워크와 오프라인 플랫폼의 확장은 아티스트의 공백기나 성장기에도 안정적인 캐시플로우를 창출하는 리스크 헷징의 수단이 되고 있다.
베이비몬스터. 사진=YG엔터테인먼트
이렇게 탄탄하게 구축된 내부 인프라의 안정성은 외부 플랫폼과의 협력에서도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최근 틱톡,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 등 해외 거대 미디어 플랫폼과의 연계 역시 단순한 영향력 확장을 넘어, IP 주권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성장 가치를 극대화하는 관점에서 접근되고 있다.
이처럼 단편적인 아티스트 IP 의존형 모델에서 벗어나 산업군 전반으로 그 규모와 수익 창출구가 넓어졌기에, 현재 상황을 일차원적인 '보릿고개'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K팝 산업의 수익성 분석은 산업적 성숙도와 함께 지속가능 발전을 향한 다양한 견해들을 도출하는 바로 이어지고 있다.
엔믹스. 사진=JYP엔터테인먼트
한 엔터산업계 관계자는 "현재 K팝 시장이 겪고 있는 성장통은 단순히 아티스트 개인 역량에만 의존하던 기존 구조에서,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시스템 산업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라며 "4·5세대의 성장을 직접 활동에 가두지 않고 다원화된 글로벌 유통망에 태워 덩치를 키우는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하다"고 짚었다.
이어 한 투자계 관계자는 "결국 냉혹한 자본시장에서 K팝 기획사들이 밸류에이션을 재평가받기 위한 가장 묵직한 해답은 차세대 스타디움 아티스트의 육성과 더불어, 확고한 자체 인프라 기반의 'IP 주권'을 통해 다원화된 비즈니스 생태계를 완벽히 안착시키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뉴스컬처 박동선 dspark@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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