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수에 경제가 숨을 돌리는 지금 과감한 규제 혁파와 구조개혁 서둘러야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직전 분기 대비 1.7% 성장을 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6% 성장한 것으로, 2024년 4분기부터 5분기 연속 1%대 저성장을 이어오다가 크게 상승한 것이므로 ‘V자형 반등(反騰)’의 쾌거임이 분명 아닐 수 없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23일 발표한 ‘2026년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의하면 2026년 1/4분기 중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7% 성장, 전 년 동기 대비 3.6% 성장했으며,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7.5% 증가, 전 년 동기 대비 12.3% 증가했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당초 시장 전망치 0.9%를 2배 가까운 0.8%포인트나 훌쩍 뛰어넘는 2020년 3분기 2.2% 이후 5년 6개월 만의 최고치 1.7%라는 ‘깜작 성장’을 보였다. 한국 경제가 수출(5.1%)과 설비투자(4.8%)가 동반 상승하며 지난해 4분기 –0.2%라는 역성장에서 올해 1분기 1.7%라는 V자형 반등에 성공했다. 이런 고성장의 견인차는 단연 반도체 슈퍼 호황이다. 1분기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9% 늘었고 3월에는 사상 처음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처럼 반도체가 인공지능(AI)발 수요급증에 편승, 초호황 흐름을 이어간 데다 지난해 4분기 역성장(-0.2%)에 따른 기저효과가 더해진 결과다. 지난 2월 28일 발발한 중동 전쟁 여파로 경제 활동이 위축돼 전망치를 밑돌 가능성이 커졌는데 이를 뚫고 예상치의 두 배에 가까운 높은 성장률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자축하기엔 이르다. 오는 2분기에는 중동 전쟁 충격이 반영돼 저성장·고물가의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슈퍼사이클(Super-cycle │ 장기적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초호황)’에 올라탄 반도체가 일등 공신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반도체의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 1분기에만 각각 57조 원대, 37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한국 기업사에 남을 최대 기록을 썼다. 반도체가 주도한 수출은 IT 품목을 중심으로 전 분기보다 5.1% 급증했고, 투자는 지난해 4분기 3.5% 급감했던 건설 투자가 2.8% 증가로 전환했으며, 설비투자는 4.8% 급증했다. 민간 소비도 0.5% 증가하며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성장 기여도 측면에선 순 수출이 1.1%포인트로 전체 성장의 상당 부분 끌어올렸다. 경제활동별로는 제조업이 전 분기 대비 3.9% 성장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건설업과 전기가스수도사업도 각각 3.9%와 4.5%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고 서비스업은 금융·보험업을 중심으로 0.4% 증가했다. 국민의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 국내총소득(GDI) 약진도 눈에 띄었다. 1분기 실질 GDI는 전 분기 대비 7.5% 증가해 GDP 성장률을 크게 웃돌며 1998년 1분기 이후, 38년 만에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도체 등 수출품 가격이 오르면서 교역조건이 개선된 영향이 크다.
하지만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중 52조 원대 매출액과 37조 원대 영업이익을 내며 역대 최대실적 행진을 이어갔다. 영업이익률이 꿈의 숫자라 불리는 ‘70%’를 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앞서 삼성전자도 57조 원대 영업이익을 냈는데 이 추세라면 두 기업의 올해 합산 이익이 500조 원을 웃돌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호황이 마냥 이어질 리는 만무하다. ‘미스터 반도체’ 진대제 전 삼성전자 회장은 “반도체 가격상승이 다른 정보기술(IT) 산업에는 (비용상승으로) 비극이 될 수 있다. 지속 불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이런 판에 삼성전자 노조는 무려 45조 원의 성과급을 주지 않으면 다음 달 파업을 강행하겠다고 하니 여간 걱정스럽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반도체 착시’를 걷어내면 우리 경제의 허약한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분기 성장률은 반도체를 빼면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지고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 소비도 0.5% 증가에 그치고 있다. 반도체와 반도체 이외 품목 수출 간에 K자형 양극화가 심화되고 수출시장도 중화권과 중화권 이외 국가 간에 기업·산업 간 양극화가 심화하고 내수·체감경기도 냉골이 가득하다. 와중에 중동발 고유가 충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4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1년 만에 100을 밑돌며 ‘비관’으로 돌아섰다. 주요 경기지표는 온통 빨간불이고 산업현장에서는 에너지 부족에 허덕이는 비명이 터져 나온 지 오래다.
지난 4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소비자동향조사(4월 9일~16일 전국 가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9.2로, 3월(107.0) 대비 7.8포인트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에너지 공급 차질,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 확대 등에 따른 물가 상승 및 경기둔화 우려가 심화되면서 이 지수가 작년 4월 이후 1년 만에 100을 하회했다.”라고 설명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현재생활형편, 가계수입전망, 소비지출전망 등 6개의 주요 개별지수를 표준화하여 합성한 지수로, 전반적인 소비자심리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100보다 높은 경우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주관적인 기대심리가 과거 장기평균(2008년~2025년)보다 낙관적임을, 100보다 낮은 경우에는 비관적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1분기 실적은 좋았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 2%로 나아가려면 뚫어야 할 난관이 많다. 우선 반도체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1분기 한국의 수출은 전 분기 대비 13% 늘어난 2,192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중 약 40%가 반도체였다. 반도체를 뺀 나머지 부문의 수출은 오히려 1% 정도 감소했다. 중동 전쟁 여파가 2분기부터 본격화하는 데 따른 대비도 ‘발등의 불’이 아닐 수 없다. 종전(終戰)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기 전망도 4, 5월 두 달 연속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지난 4월 23일 발표한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6년 5월 전망 기업경기동향조사(BSI)’에 따르면 5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87.5로 전달(85.1)보다는 소폭 개선됐지만, 지난 3월에 이어 두 달 연속 기준치를 하회(下廻)했다. BSI는 기준치인 100보다 높으면 전달과 비교한 경기 전망이 긍정적이고,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로 물가는 오르는 데 소비와 기업투자 부진으로 성장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Stagnation + Inflation)’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신호다.
경제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 하락하는 ‘저성장’ 탈피가 한국 경제의 화두가 된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성장(잠재성장률 3% 달성)에 방점을 찍은 것은 옳고 잘한 판단이다. 미국 관세 정책, 중동 전쟁 같은 돌발적인 충격에 대응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당연히 성장 전략이 있어야만 한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격언은 중동 전쟁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1970년대 오일 쇼크를 중동 건설특수로 성장의 기회로 반전시켰듯이 오늘의 위기 역시 방산과 원전 등의 신수종 산업을 키우고 에너지 확보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응전의 기회로 삼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AI 대전환(AX) 시대 승기를 잡은 K-반도체는 주마가책(走馬呵責)으로 더 잘 달릴 수 있도록 혁신 생태계를 적극적·공격적으로 지원해야 함은 물론이다.
발등의 불이자 문제는 2분기부터 밀려드는 먹구름이다. ‘반도체 착시’를 걷어내면 저성장·고물가 그림자가 더욱 짙다. 올해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년 만에 ‘비관’으로 돌아섰고 주요 경기 판단 지수들도 일제히 폭락했다. 수출 온기가 내수까지 퍼지지 못하면서 민생 경제는 더 얼어붙는 양상이다. 중동 전쟁에 따른 공급망 충격도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4월 생산자물가는 4년 만에, 수입 물가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치솟았다. 특히 나프타와 에틸렌 가격이 60% 이상 폭등해 향후 전방위적인 비용상승 압력을 예고하고 있는 누란지위(累卵之危)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생산자물가와 수입 물가는 수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23일 집계한 향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9%까지 치솟았고, 체감경기와 향후 경기 전망도 큰 폭으로 악화됐다. 현재의 유가가 1년간 지속하면 성장률도 0.2%포인트 떨어질 전망이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단순한 기우(杞憂)를 넘어 ‘회색 코뿔소(Gray Rhino)’처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에너지 공급 차질과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 확대 등에 따른 물가 상승 및 경기둔화 우려가 심리를 짓눌렀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현재 경기판단 CSI는 68로 전월보다 18포인트 급락했고, 향후경기 전망 CSI도 79로 10포인트 하락했다. 취업기회 전망 CSI 역시 82로 7포인트 내렸다. 반면 금리수준 전망 CSI는 115로 6포인트 올라 시장금리·대출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동시에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재정 상황에 대한 인식도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현재 생활 형편 CSI는 91로 3포인트, 생활 형편 전망 CSI는 92로 5포인트 하락했다. 가계수입 전망 CSI와 소비지출 전망 CSI도 각각 98, 108로 모두 3포인트씩 떨어졌다. 소비자들이 현재 생활 여건뿐 아니라 향후 소득과 지출 여력까지 더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의 ‘3고(高)’ 복합위기(Complex crisis)가 갈수록 증폭하는 양상 속에 수출이 든든히 버텨주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반도체 외끌이에 의존한 수출 구조는 역설적으로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반도체 호황 이후를 견인할 성장산업을 차근차근 키워 수출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다변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규제 혁파로 기업의 투자 심리를 되살리고, 저성장 늪에서 벗어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내는 게 무엇보다 화급(火急)한 급선무(急先務)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난 4월 23일 오전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서프라이즈’를 나타낸 것과 관련해 “한국 경제의 복원력을 보여준다.”라고 했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반도체 호황에 따른 수출 호조에 더해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한 자본시장 활성화, 소비지원 대책 등 정책효과도 크게 기여했다.”라고 평가했다. 당연한 말이자 옳은 평가다. 하지만 자화자찬하기보다는 중동발 에너지 쇼크 탓에 커져만 가는 저성장·고물가가 몰고 올지도 모를 이른바 경기둔화 속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는 비상한 위기 상황임을 각별 유념하고 선제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중동 전쟁은 우리가 자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변수이고, 인플레이션 우려로 기준금리도 내리기 힘든 최악의 상황이다. 국가채무를 고려하면 재정 투입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결국 남은 것은 고비용 구조를 견뎌내기 위한 내핍과 고통 분담의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뿐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재정·통화정책의 정교한 조합으로 금융·경제안정에 역량을 총력 집중해야 한다. 과감한 규제 완화로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구조개혁과 체질개선도 병행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작금의 ‘깜짝’ 성장률이 ‘반짝’ 효과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도체 특수 덕에 경제가 숨을 돌리고 있는 지금 과감한 규제 혁파와 구조개혁을 서둘러야만 한다. 반도체와 함께 국가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을 키우고 경제 환부를 도려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을 끌어올려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작금의 반도체 특수는 우리에게 마지막 ‘골든타임(Golden time) 이다. 1.7%라는 숫자의 함정에 빠져 위기의 본질을 놓치는 치둔(癡鈍)의 우(愚)는 결단코 안 된다. 반도체 착시를 경계하고 혁신 생태계 가속화에 적극 지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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