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첨단 지식재산권(IP)을 둘러싼 대중(對中) 기술 규제의 전선이 반도체 장비를 넘어 ‘인공지능(AI) 모델 데이터’로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중국 스타트업의 개방형(오픈소스) AI 모델이 미국 최상위 상용 모델에 육박하는 성과를 내자, 미국 정부가 이를 ‘무단 데이터 증류(Distillation)’를 통한 지식재산권 침해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경고하고 나섰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개방형 AI와 그에 따른 기술 혁신을 지지하지만, 이것이 미국의 지식재산권(IP)을 사냥터로 만들어 무제한 개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중국 AI 기업들을 향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베선트 장관은 “중국 기업들이 산업 전반에 걸쳐 대규모로 은밀하게 IP 절도의 선을 넘어 ‘증류’ 공격을 감행할 경우, 금융 제재 및 거래제한 목록(Entity List) 등재 등 강력한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미국 정부의 강경 입장은 최근 중국 스타트업 문샷AI(Moonshot AI)가 공개한 ‘키미 K3(Kimi K3)’ 등 최신 AI 모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모델은 오픈AI나 앤트로픽의 최상위 플래그십 AI 모델과 맞먹는 성능을 선보여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당국은 중국이 자체 기술력만으로 단기간에 이러한 성과를 낸 것이 아니라, 미국의 상용 AI 모델을 무단 추출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복제한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백악관 역시 중국 기업의 구체적인 혐의를 적시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실장은 이날 X를 통해 “문샷AI가 미국 앤트로픽의 AI 모델인 ‘(클로드) 페이블’을 무단 증류했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크라치오스 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문샷AI는 미국의 모니터링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탐지를 우회하는 정교한 내부 데이터 추출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접근 방식을 빠르고 다양하게 변경하는 수법을 동원해 대규모 ‘증류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크라치오스 실장은 중국 기업의 대미 우회 경로와 대중 수출 통제 위반 정황도 함께 폭로했다. 그는 “문샷AI가 미국 대중 수출이 엄격히 금지된 엔비디아의 ‘그레이스 블랙웰’ 기반 AI 슈퍼컴퓨터 GB300을 이용해 모델을 훈련했다”며 “이 과정에서 탐지를 피하고자 태국 거점을 통해 해당 GB300 설비에 원격 접속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기술 발전을 위한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모델 압축 기술로서의 ‘증류’는 지지하지만, “미국의 독점 기술을 도용하고 국가 차원의 연구 개발 성과를 훼손하기 위해 감행되는 대규모의 은밀한 무단 증류 행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주요 AI 기업들도 정부의 가세에 환영의 뜻을 밝히며 중국 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주요 폐쇄형 AI 개발사들은 약관상 서비스 출력물을 이용한 경쟁 모델의 훈련 및 증류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차단하기 위한 자체 방어 알고리즘을 운영해 왔다.
새러 헥 앤트로픽 공공정책 총괄은 “정부 당국이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준 것에 감사하다”며 “적대적이고 불법적인 데이터 추출 행위는 명백한 IP 침해이자 산업 스파이 활동이며, 결과적으로 적국의 군사·정보 역량을 강화해 주는 국가 안보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앤트로픽은 지난 2월 딥시크(DeepSeek), 문샷AI, 미니맥스(MiniMax) 등 중국 핵심 AI 스타트업 3곳이 자사 클로드 모델의 답변을 무단 추출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알리바바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증류 공격을 감행했다고 미국 연방 상원과 백악관에 알린 바 있다. 이에 대응해 앤트로픽,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프런티어 모델 포럼’을 결성하고 무단 증류 방지를 위한 기술적·정책적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와 해당 기업들은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류창 주미중국대사관 대변인은 크라치오스 실장의 발언에 대해 “완전히 사실무근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류 대변인은 “미국 인사들은 근거 없는 편견을 버리고 사실을 존중해야 하며, 중국 AI 산업이 거둔 정당한 발전 성과를 모함하거나 깎아내리는 불순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맞섰다.
미국 정부가 단순한 첨단 AI 반도체 장비 통제를 넘어 데이터 활용과 훈련 방식에 이르기까지 제재의 범위를 점차 넓혀감에 따라, 향후 미·중 간의 AI 기술 패권 경쟁은 더욱 가파른 대립 국면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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