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준호 (주)선이한국 대표
요즘 미국에서 점심·저녁 자리에서 가장 많이 오르는 이야기는 세 가지다. 물가와 유가, 일자리, 그리고 “대학 왜 이렇게 비싸냐”는 질문이다.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건 여전히 자랑이지만, 그 대가로 감당해야 할 비용은 이제 ‘투자’가 아니라 ‘부담’에 가깝다. 특히 한국처럼 부모가 학비를 책임지는 문화에서는 그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온다. 문제는 그렇게 힘들게 대학을 보내도 취업이 예전만큼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업과 직무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지금 “이 학위가 과연 돈이 되는가”라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던져지고 있다. 학위의 투자 대비 수익률, 즉 ROI 논쟁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더 이상 일부의 불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 실제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대학들이 잇따라 폐교를 선언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충격 그 자체다. 대를 이어 상징처럼 존재하던 대학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교육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이 무너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AI 때문이 아니다. AI는 촉발 요인일 뿐이다. 더 깊은 곳에는 세 가지 구조적 균열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 대학 재정 구조의 붕괴, 그리고 ‘학위’라는 상품의 가치 하락이다. 여기에 AI가 더해지며 대학은 지금 ‘퍼펙트 스톰’ 한가운데에 서 있다.
변화는 교육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4년짜리 학위를 한 번에 파는 시대에서, 필요한 만큼 쪼개어 배우는 시대로 이동 중이다. 구글과 아마존은 이미 자체 교육 프로그램으로 대학의 일부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대학 내부에서도 ‘스태커블 크리덴셜’이라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식을 조각 단위로 쌓아 최종 학위로 이어지는 구조다. 교육이 일종의 ‘구독 모델’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변화는 채용 시장이다. 구글, IBM, 테슬라뿐 아니라 월마트까지 주요 기업들이 4년제 학위 요건을 삭제하고 있다.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학위 중심 채용이 무너지면서 대학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 흐름은 한국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학벌 중심 사회다. 그러나 이미 균열은 시작됐다. 스타트업과 IT 기업을 중심으로 학력보다 실력과 포트폴리오를 보는 채용이 늘고 있고, 공공기관과 대기업도 점진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동시에 출산율 감소는 대학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만들고 있다. 지방 대학부터 흔들리고, 결국 상위권 대학만 살아남는 ‘선별적 생존’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대학은 무엇을 파는 곳인가. 지식인가, 네트워크인가, 아니면 신분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대학은 사라질 것이다. 학벌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절대적인 기준이던 시대는 분명히 저물고 있다. 이제 시장은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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