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회 정론관 내 기자회견장. 한겨레 자료사진
김해정 | 정치팀 기자
최근 정치부 말진(막내 기자를 부르는 은어)으로 잠시 돌아왔다. 자고로 말진의 미덕은 깔끔한 받아 치기 능력이다. 정치인의 말을 정확하고 빠르게 받아 쳐야 한다. 기자는 문자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이니, 예전엔 수첩에 썼던 것을 이제 노트북을 통해 더욱 온전히 기록하는 것이다.
받아 치기가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 어릴 때 한컴타자 연습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손가락이 유연하고 힘도 제법 있어야 빠른 타자 치기가 가능하다.
당 최고위원회의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손가락뼈를 우두둑우두둑 꺾으며 손을 푼다. 당대표가 입을 연 순간 시작이다. 회의장은 일순간 자판 치는 소리로 가득하다. 말은 흘러가고 손가락은 따라가야 한다. 어미를 덜어내고 단어를 줄여도 쉽지 않다. 한번 손가락이 꼬이면 끝이다. 녹음을 다시 들으며 놓친 부분을 채워야 한다. 그날 일이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게다가 잘 받아 치려면 사안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건 필수다.
말의 속도, 발음의 정확성 등에 따라 받아 치기의 난도가 천지 차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말이 빨라, 받아 칠 때 오타가 잦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말은 비교적 느려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뭐가 됐건, 당 회의가 없는 수요일이 괜히 반갑다.
국회 상임위원회나 국정감사가 있는 날이면 손가락이 죽어난다. 당 회의는 30분이면 끝나지만, 상임위 회의는 종일 이어질 때도 있다. 회의는 길고 의원들의 발언은 끊이지 않는다. 의원들 간 설전이 붙기라도 하면 손가락은 더욱 바빠진다. 끝나면 손가락이 저릿하다.
이렇게까지 다 받아 쳐야 하나 싶겠다. 그러나 받아 친 기록이 곧 기사다. 정확한 받아 치기가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받아 치기를 잘하는 말진은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말진으로 돌아온 나의 손은 아주 더뎌져 오타가 많이 늘었다. 같은 팀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던 차에 인공지능(AI)이 불쑥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그동안은 검색 정도만 쓰던 터였다. 최근 동료에게 실시간으로 받아쓰는 에이아이 서비스를 추천받았다. 한달에 2만원이지만, 큰맘 먹고 구독했다. 원래는 놓친 발언을 다시 듣고 보완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언제부턴가 생긴 국회 의사중계시스템의 에이아이 자막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오류는 있다. 발음이 흐리면 틀리고, 화자 구분도 하지 못하고, 화자가 동시에 발언하면 발언이 뒤엉킨다. 온전히 에이아이에 맡기지 못하고 현장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그래도 이 정도면 키보드 노동에서 해방이라고 부를 만하다.
에이아이 구세주에 기뻐하다가 문득 예전의 기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졌다. 40년 넘게 현장을 지킨 선배는 자신의 삐삐 시절을 떠올렸다. 취재 도중 호출이 오면 공중전화를 찾았고, 수화기 너머로 기사를 불러줬다고 했다. 그 말을 회사에서 받아 적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그런데도 낯설지 않다. 삐삐냐, 휴대전화냐, 노트북이냐 도구만 달라졌다. 묻고, 듣고, 기록하는, 기자의 본질은 그대로다. 이제는 에이아이가 손의 부담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다. 더 많이 묻고, 듣고,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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