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6년 국정감사에 참석해 손솔 진보당 의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남동균 기자
싸움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한 방은 주먹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말싸움의 결정타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반박을 고르던 상대가 입을 다무는 순간 승부는 끝난다.
이렇게 사람이 말을 잃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정말 할 말이 없어서다. 빈틈을 정확히 찔렸거나 논리에서 밀린 경우다. 다른 하나는 기가 막혀서다. 상대의 말이 너무 저열해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정치판은 두 번째 침묵도 승리로 친다. 어떻게 이겼는지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여야 간 언쟁 도중 이렇게 말했다. “부엉이바위에 긁혔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곳이다. 고인의 죽음까지 끌어들인 발언에 항의가 이어졌고, 김 의원은 발언권을 정지당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발언권만 정지했다며 항의했다. 민주당은 김 의원의 사과가 먼저라고 맞섰다.
정치인의 막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사과를 요구하고 품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인들도 거친 언행이 어떤 비판을 불러오는지 경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막말을 삼가야 한다는 충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송원숙·채정화·윤호영 연구진이 지난 2024년 한국소통학보에 발표한 ‘정치인 막말의 미디어화’는 이 문제를 살펴본 연구다. 국회 실무자 인터뷰와 뉴스 보도, 유튜브 댓글을 분석한 연구진은 정치인의 막말에 언론 노출을 통해 개인이나 소속 정당의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초선·재선 의원의 막말에는 당에 대한 충성을 드러내고 언론의 관심을 얻으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고 봤다.
정치인이 상대를 거칠게 공격한 뒤의 흐름은 대개 정해져 있다. 발언은 기사 제목에 오르고, 상대 진영의 반발이 이어진다. 발언한 쪽은 다시 해명이나 반박을 내놓는다. 논쟁이 길어질수록 당사자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사도 늘어난다. 원래 무엇을 두고 다퉜는지는 희미해진다. 남는 건 막말을 한 정치인의 이름이다.
해외 연구는 이 흐름을 숫자로 보여준다. 지난 8월 국제학술지 ‘악타 폴리티카(Acta Politica)’에 실린 연구다. 연구진은 벨기에 의원과 미국 상원의원 62명의 페이스북 게시물 1만1255건을 분석했다. 상대를 비판한 글 가운데 개인적 특성을 공격한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반응이 38.7% 많았다. 무례한 표현을 쓴 비판은 정중한 비판보다 반응이 25.4% 많았다. 정책을 겨냥한 비판은 반응이 오히려 32.9% 적었다.
흥미로운 건 반응의 성격이다. 무례한 게시물에는 댓글과 공유가 늘었지만, ‘좋아요’가 더 많이 달리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든 게 반드시 그 말에 동의해서는 아니었다. 연구진은 온라인 반응을 곧 지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인과관계를 입증한 연구도 아니다. 그래도 자극적인 공격에 관심이 몰린다는 건 정치인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기사를 다루는 입장에서도 고민스러운 문제다. 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은 감시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막말을 제목으로 옮기고 상대 진영의 반응을 덧붙이는 데 그친다면 언론은 정치인이 원하는 노출을 제공하는 셈이 된다. 국내 연구에서도 언론이 발언의 맥락보다 자극성과 정당 간 대립에 집중하면서 막말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보도할 가치가 있는 발언과 관심을 끌 만한 발언을 가려내는 일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정치인의 언어가 언제나 점잖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권력의 부당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때로 거친 표현도 필요하다. 분노 역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일부다. 실제로 상대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는 이유만으로 막말이라고 규정한다면 정당한 비판마저 위축될 우려가 있다.
다만 분노에도 겨눠야 할 대상이 있다. 잘못된 정책이나 부당한 권력 행사를 향한 비판은 근거가 있어야 한다. 상대의 인격을 공격하는 데에는 그만한 수고가 들지 않는다.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주장의 정당성이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정치학자 트로엘스 뵈길드와 카르스텐 옌센은 2025년 ‘미국정치학저널(AJPS)’에 실린 논문에서 덴마크 시민 6055명을 18개월간 추적한 자료를 분석했다. 정치인의 무례한 언행은 정치인에 대한 신뢰와 민주주의 운영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책을 둘러싼 실질적인 갈등에서는 같은 부정적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정치적 견해의 충돌 자체에 반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치열하게 다투는 정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연구는 보여준다. 덴마크의 연구 결과를 한국 정치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정치인의 언행이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정치 제도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하다.
국회에는 회의록이 남는다. 의원이 누구에게 무엇을 물었고, 정부가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한 번의 국정감사를 위해 수많은 공무원이 자료를 준비하고, 증인들이 국회에 출석한다. 국민이 선출한 의원에게 주어진 질문의 기회는 한정돼 있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는 많다. 국정감사에서는 이름보다 질문이 오래 남아야 한다.
민수미 정치부장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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