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논설위원
2009년 서울 한남동의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집 앞에 짓던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측 주택이 2층에서 1층으로 낮춰졌다. 이중근 회장이 한강 조망을 가린다며 공사 중지 결정을 받아낸 뒤였다. 17년이 지나 그 집 바로 옆에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의 2층 주택이 들어서자 이중근 회장은 다시 공사 중지를 신청했다. 이번에는 1심에서 기각됐다. 기존 집의 조망은 일부 가려지지만 완전히 막히지 않고 정면으로 영향을 받는 옆 땅은 아직 빈터라는 판단이었다. 이중근 회장은 항고심에서 신축 주택의 높이를 확인해달라며 현장검증도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사진과 영상으로 충분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창밖의 한강이 얼마나 담기느냐는 집값에도 찍힌다. 올해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같은 동 20층의 전용 84㎡ 네 집은 공시가격이 39억 3400만 원부터 46억 6900만 원까지 차이가 났다. 한강이 보이는 각도와 범위가 달라서다. 강이 보이지 않는 같은 동 3층 네 집의 공시가격은 모두 36억 1300만 원으로 최대 10억 원가량 낮았다. 2023년 이 단지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전면 조망이 가능한 집의 실거래가는 조망이 없는 집보다 13.4% 높았다. 건설사들이 재건축 수주전에서 ‘한강 조망 세대 수’를 앞세우는 이유다. 집의 면적은 같아도 거실 창에 들어오는 강의 폭은 다르다. 창밖 풍경을 지키려 법정까지 가는 까닭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강남 불패, 부동산 투기 공화국은 이제 과거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투기 수요는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한강 조망에 교통·교육·일자리와 신축이라는 조건이 겹친 집은 드물다. 규제로 투기를 잡아도 좋은 입지에 살려는 수요까지 지울 수는 없다. 강변의 앞줄은 더 만들 수 없어도 그 주변에 살 만한 집은 더 지을 수 있다. 강남 밖에도 직장과 학교·교통이 잘 갖춰진 동네를 늘려야 한다. 사람들이 기꺼이 선택할 곳이 생겨야 특정 지역에 쏠린 수요도 분산된다. 한강을 하나 더 만들 수는 없어도 살고 싶은 동네는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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