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희 의성군 보건소장.
경북 의성군 안계면의 한 경로당. 매달 찾아오는 이동진료 차량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익숙하면서도 반갑다. 한의과·치과 진료에 치매선별검사, 우울·스트레스 검사까지 한 자리에서 받을 수 있어서다. 지난해에만 163회 운영돼 1만여 명이 이용한 이 통합 이동진료는, 의성군보건소가 추구하는 ‘생활 속 보건소’의 단면을 보여준다.
보건소의 역할이 예방접종과 기본 보건사업에 머물던 시대는 지났다. 의성군에서는 보건소가 출산과 응급의료, 감염병 대응, 방문의료, 치매관리, 재난 심리지원까지 군민 삶 전반을 잇는 지역 건강안전망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선희 의성군보건소장은 “농촌은 의료기관 수 자체보다 군민이 실제 필요한 순간에 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더 중요하다”며 “임신과 출산, 응급의료, 방문의료, 치매돌봄, 재난 이후 마음 회복까지 끊기지 않는 건강망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의성군이 안계면 용기리 일원에 조성할 예정인 공공산후조리원 조감도. 의성군 제공.
△공공산후조리원 건립…출산 전후 지원체계 완성
의성군보건소의 대표 사업은 공공산후조리원 건립이다.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안계면 용기리 일원에 총사업비 88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1600㎡, 지상 2층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다. 1층에는 행정·상담 기능과 다목적 공간이, 2층에는 모자동실 8실과 영유아실, 산후관리·휴게 공간이 들어선다.
이 사업은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선다. 의성군은 2019년부터 안계면 일원에서 ‘이웃사촌 시범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며 응급의료와 산부인과, 소아진료 등 ‘3대 필수의료체계’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왔다. 공공산후조리원은 그 연장선에서 임신과 출산, 산후관리까지 지역 안에서 이어지는 지원체계를 완성하는 사업으로 평가된다.
출산·육아 지원은 임신 이전 단계부터 확대됐다. 예비부부 엽산제 지원, 임신 사전건강관리 검사비 지원,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이 대표적이다. 2025년 임신 사전건강관리사업 신청은 29건에서 128건으로,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은 104건에서 132건으로 늘었다.
의성군보건소는 2025년 7월 보건복지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전문 영유아 건강간호사 2명이 임신부와 출산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생애초기 건강관리사업도 운영 중이다. 아이들행복꿈터와 안계면 출산통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놀이·교육·건강·돌봄 서비스를 연계하고, 베이비카페 주말·명절 운영,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업 본인부담금 지원 신청방식 개선 등 이용자 편의성을 높이는 조치도 함께 이뤄졌다.
△응급실·산부인과·소아진료 유지…필수의료 공백 최소화
필수의료 기반 유지도 보건소 정책의 핵심 축이다. 의성군은 안계면 영남제일병원을 2013년부터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해 24시간 응급의료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의료취약지는 환자 수가 많지 않아도 응급실을 멈출 수 없는 구조적 특성을 안고 있어, 운영인력 인건비와 필수 장비 구입 지원이 지역 생명안전망 유지에 직결된다.
거점의료기관 기능도 넓어졌다. 영남제일병원 외래산부인과는 2015년부터 지역 내 산전·산후 진료를 담당해 왔고, 2022년부터는 소아청소년과와 인공신장실도 운영 중이다. 특히 인공신장실은 관내 유일의 혈액투석 의료기관으로, 장거리 이동 없이 지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의성군보건소는 안계면 영남제일병원과 의성읍 진연합의원을 각각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거점으로 운영하는 ‘ONE-hour 진료체계 구축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야간·주말 진료 공백을 줄여 임산부와 아이가 시간 제약 없이 필수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 의성군보건소가 지난해 7월 16일 보건소 3층 대회의실에서 ‘2025년(2차년도) 의성군 민·관협력 감염병 위기관리 대응 교육·훈련’을 실시한 뒤, 이선희 보건소장(맨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감염병 대응과 식품안전…사전 예방 중심 관리체계 강화
감염병 대응 체계도 한층 정교해졌다. 의성군은 2024년 ‘신종감염병 대비 의성군 위기대응 매뉴얼’을 자체 제작해 국가 위기단계와 지역 특성을 함께 반영한 대응체계를 마련했다. 이후 보건소 직원 대상 전문성 강화 교육·훈련, 26개 유관기관이 함께한 가상 시나리오 기반 합동 모의훈련을 실시했고, 올해는 반복·실전형 훈련을 강화해 대응 역량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식품안전 관리 역시 예방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지역 내 식품위생업소 1657개소를 대상으로 정기 지도·점검을 실시했고, 대형산불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위생 점검, 식품접객업소 식중독 예방진단 컨설팅, 식품조리도구 식중독균 검사, 위생교육과 캠페인도 병행했다. 식품제조가공업체 대상 스마트 HACCP 구축 지원, 일반음식점 대상 푸드테크 기반 스마트 위생업소 구축 사업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 의성군보건소가 2025년 11월 20일 보건소 3층 다목적실에서 ‘2025년 의료·돌봄 역량강화 교육’을 열고 응급의료 분야 현장 대응 역량 강화에 나선 가운데, 교육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공공·민간 협업 강화…방문의료와 통합돌봄 확대
의성군보건소가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방문의료와 의료·돌봄 통합지원이다. 의성군은 2023년 7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전국 최초로 공공의료 기반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2024년 5월 의과 공중보건의 감소로 방문진료에 차질이 생기자 보건진료소 중심 방문의료 체계로 전환했고, 2025년에는 조례 개정을 통해 보건진료소 관할구역도 전면 확대했다. 시범사업 중간평가에서는 재가 거주기간 증가, 요양병원 입원율 감소, 의료비 절감 등 긍정적 변화가 확인됐다. 병원 중심 구조에서 재가 중심 구조로 의료·돌봄의 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를 바탕으로 의성군은 올해 삼성연합의원과 장기요양 재택의료, 새봄방문간호센터와 집중 방문간호, 안동성소병원·진연합의원과 방문운동재활 서비스를 연계해 지역 중심 방문의료 체계를 확장하고 있다.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안동의료원과 협력한 실습 위주 교육으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 역량 강화도 병행됐다.
▲ 의성군보건소와 의성군정신건강복지센터가 2025년 10월 22일 의성읍 철파리경로당에서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재난정신극복 프로젝트’를 운영한 뒤, 기웅아재(한기웅, 맨 앞줄 왼쪽)를 비롯한 정서회복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산불 이후 2264건 지원…재난 심리회복까지 보건소 역할 확대
재난 심리회복 지원은 의성군보건소의 현장 대응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분야다. 2025년 3월 대형산불 직후 재난심리지원단을 꾸려 읍·면 대피소 중심 긴급 심리지원을 시작했고, 이후 집중 피해지역 6개 면 100개 마을을 대상으로 현장 지원을 확대해 고위험군 100명을 조기에 발굴하고 전문 진료로 연계했다.
도내 4개 의료기관이 피해지역을 직접 찾아 정신건강의학과 현장 진료를 운영했고, 경북대학교병원과 함께한 ‘찾아가는 정신건강의학과 현장진료’는 총 20회 실시돼 278명에게 전문의 1대1 심층 진료와 약 처방을 제공했다. 현재까지 누적 지원 실적은 2264건에 이른다.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도 더해졌다. 방송인 한기웅 씨가 참여한 ‘재난 정신극복 프로젝트’는 31개 마을에서 900여 명이 참여했고, 숙박형 힐링캠프와 마을집단 마음회복 프로그램도 병행됐다. 임시주거시설 241호 입주 이재민에게는 월 1회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3개월마다 우울·불안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중장기 회복지원 체계도 운영 중이다.
▲ 의성군보건소와 치매안심센터가 지난 4월 17일 봉양면 삼산1리에서 ‘2026년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한 뒤, 참가 어르신들이 활동 결과물을 들어 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치매안심센터·건강증진·이동진료…생활 속 보건소 역할 강화
치매 대응도 의성군보건소의 생활밀착형 정책을 보여주는 분야다. 동부·서부 권역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상담검진, 사례관리, 인식개선, 쉼터지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2025년 치매 선별·진단검사 4045건, 치매치료관리비 지원 1113건, 맞춤형 사례관리 137명, 실종예방지원사업 123건, 치매파트너 양성교육 373명 등이 대표 실적이다.
건강증진사업은 아동부터 어르신까지 전 연령층으로 이어진다. 아동비만예방사업과 아동·청소년 금연예방교실, 성인 대상 건강생활교실, 고혈압·당뇨병 자가관리 프로그램, 모바일 헬스케어, AI·IoT 기반 어르신 건강관리 사업 등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통합 이동진료는 현장 체감도가 높은 사업이다.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을 직접 찾아 한의과·치과 진료, 치매선별검사, 우울·스트레스 검사, 이동금연클리닉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지난해 163회 운영돼 1만여 명이 이용했고, 산불 피해지역에는 내과·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상담, 물리치료까지 지원해 재난 이후 건강 회복에도 역할을 했다.
▲ 의성군치매안심센터가 3월 26일 의성읍 철파리에서 주민들과 함께 치매극복 실종예방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 이선희 보건소장(앞줄 왼쪽 네 번째)과 참여자들이 ‘함께 지키는 기억, 함께 찾는 일상’ 손팻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의성형 통합 건강망’, 농촌형 공공보건 모델로 주목
의성군 보건정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연결과 작동’이다. 임신 전 건강관리와 산후조리, 응급의료, 감염병 대응, 방문의료, 재난 심리회복, 치매관리, 이동진료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형 건강안전망으로 묶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농촌 의료공백 문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의성군보건소가 구축 중인 ‘의성형 통합 건강망’은 의료취약지에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공공보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아플 때 제때 치료받고, 늙어 돌봄을 받고, 재난 뒤에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반을 지역 안에서 마련하겠다는 방향이 분명하다는 점에서다.
이선희 보건소장은 “보건소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며 “군민이 어느 생애 단계에서든 지역을 떠나지 않고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계속 다듬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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