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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뷰] 이름 없는 인생으로 꿰맨 27분짜리 드레스… 연극 '라크리마'

한 벌의 드레스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삶이 그 안에 꿰매질까. 세상의 이목은 왕실의 결혼식과 눈부신 의상만을 바라보지만, 연극 ‘라크리마’는 그 시선을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한 손들에게 돌린다.

지난 2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 ‘라크리마’ 공연 후 출연진이 관객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준도기자

한 벌의 드레스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삶이 그 안에 꿰매질까. 세상의 이목은 왕실의 결혼식과 눈부신 의상만을 바라보지만, 연극 ‘라크리마’는 그 시선을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한 손들에게 돌린다.

성남문화재단이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지난 2~3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선보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의 ‘라크리마’는 아름다움의 이면을 묻는 작품이다. 연출과 극작을 맡은 캐롤린 기엘라 응우옌은 한 벌의 웨딩드레스를 매개로 국경 너머 노동과 개인의 삶을 연결한다.

이야기는 영국 공주의 웨딩드레스 제작 의뢰가 파리의 한 오트 쿠튀르 하우스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프랑스 알랑송의 레이스 공방과 인도 뭄바이의 자수 공방까지, 서로 다른 공간의 장인들이 작업에 참여한다. 제작 기간 8개월, 수천 시간의 노동. 역사에 남을 의상을 만든다는 영예 뒤로 철저한 기밀 유지와 극한의 작업이 따라붙는다.

작품의 중심에는 드레스를 둘러싼 불균형이 놓여진다. 완성품은 세계의 시선을 독차지하지만, 그것을 만든 이들의 시간과 몸은 쉽게 지워진다. 응우옌 감독은 “단 하나의 물건 뒤에도 자본주의와 역사, 지리, 계급과 지정학적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무대와 영상을 결합한 구성으로 문제의식을 공간에 펼쳐낸다. 분할화면을 통해 파리와 알랑송, 뭄바이의 작업 현장을 공존, 교차시킨다. 멀리 떨어진 노동을 한 시야에 놓음으로써, 드레스 한 벌이 결코 한 공방의 시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라크리마’ 연출가 겸 극작가 캐롤린 기엘라 응우옌(Caroline Guiela Nguyen par SMITH) 감독. 사진=성남문화재단

“영국 공주의 드레스 위에는 결코 해가 지지 않는다”는 극 중 대사는 이러한 구조를 압축한다. 제국을 연상시키는 문장은 오늘날 멈추지 않는 생산 체계의 현장으로 되돌아온다. 누군가의 하루가 끝나도 다른 누군가의 노동은 이어진다. 영상은 장소를 설명하는 배경을 넘어, 서로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이미 하나의 체계 안에 묶여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라크리마’의 시선이 깊어지는 지점은 그 연결을 착취의 현실로 드러내지 않는 데 있다. 장인들은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기술을 사랑한다. 정교한 손놀림은 생계의 수단이면서 오랜 지식과 자부심의 표현이다. 일에 대한 애정과 그 일로 인한 고통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모순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존재한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모순도 짚는다. 영국 왕실은 공주의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제법을 거론하며 노동시간과 노동자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규정을 준수하라고 압박하지만, 현실에서 8개월 만에 그런 것들을 지키며 드레스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작 측의 항변에 대해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앵무새처럼 도돌이표 답변만을 내놓는 장면은 이를 상징한다.

‘라크리마’ 장면 중 일부. 사진=성남문화재단

이런 맥락에서 웨딩드레스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사치와 완벽함을 상징하지만, 제작 과정을 따라갈수록 수많은 손과 몸, 비밀과 고통이 축적된 사물이 된다. 관객에게 실감시키고 싶었다는 감독이 의도한 ‘시간의 무게’는 완성품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바꿔놓는다.

라틴어로 ‘눈물’을 뜻하는 제목 역시 슬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 속 눈물에는 상처뿐 아니라, 국경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술과 인간에 대한 경외도 포함한다. 고통을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이 태도는, 타인의 삶을 무대에 올리는 연극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작품 말미에는 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해 들인 노동과 시간의 가치를 숫자로 나열하고, 공주가 이를 단 27분 입었음을 설명한다. 단순하게 수치상 결과를 배열하는 것이 아닌 화면을 통해 결과를 시각화하는 기법은 인터미션 없는 3시간의 공연을 단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라크리마’가 남기는 물음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지나치는가에 닿는다. 찬란한 드레스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은 이름 없이 사라져도 되는 손이 아니다. 저마다의 삶을 가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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