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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뷰) 기억을 지워도 사랑은 남는가…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가 던진 질문

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는 설레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제법 묵직한 질문을 품고 있는 작품이었다.

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 공연 장면.

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는 설레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제법 묵직한 질문을 품고 있는 작품이었다.

작품은 “어떤 기억을 지우고 싶나요?”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기억을 지워도 사랑의 흔적까지 사라질 수 있는지 관객에게 되묻는다. 그 과정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으며 살아가는가’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만들며 학생과 성인 모두에게 공감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 공연 장면.

아트컴퍼니 두루(대표 오창현)가 지난 8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려 11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은 실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실연박물관’을 모티브로 한다. 사랑의 기억이 담긴 물건을 맡기면 그 사랑의 흔적이 지워진다는 판타지적 설정 아래, 사랑을 두려워하는 남해(이주순)와 진심을 확인받고 싶은 정인(나서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대는 현실적인 연애 감정과 판타지적 상상력을 균형감 있게 엮어냈다.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는 사람, 그 한마디를 기다리며 스스로의 마음까지 의심하는 사람의 관계는 과장된 드라마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감정의 민낯에 가깝다. 유쾌하게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어느 순간 관객 자신의 기억 한 조각을 조용히 건드리는 힘이 있었다.

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 공연 장면.

17곡의 넘버는 작품의 감정선을 더욱 촘촘하게 받쳐주었다. 여행의 설렘과 사랑의 떨림, 이별의 아픔, 다시 사랑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음악을 통해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는 메인 테마는 두 인물의 감정 변화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고, 1인 7역을 소화한 멀티맨(송광일)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경쾌하게 이끌었다. 작품 속 주요 모티브인 영국의 화가 프랭크 딕시의 ‘고백’역시 극 전체를 단단하게 붙드는 또 하나의 축이었다.

이번 공연은 작품 자체만큼이나 만들어진 과정이 더욱 인상적이다. ‘안녕! 크로아티아’는 201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로 캠퍼스 독회에서 첫발을 뗀 뒤 이듬해 전북특별자치도 공연예술페스타 우수작품으로 선정됐으며, CJ문화재단 ‘2018 스테이지업 하반기 공간지원작’에 선정돼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이후 2022년과 지난해 전주 공연을 거쳐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 기존 레퍼토리 공연으로 선정되며 다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독회에서 시작한 작품이 워크숍과 리딩, 프리뷰 공연, 재공연을 거치며 하나의 레퍼토리로 성장한 셈이다.

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 공연 장면.

무엇보다 지역에서 오랜 시간 창작뮤지컬 한 편을 붙들고 완성도를 끌어올렸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공연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한 작품을 포기하지 않고 수년 동안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다시 관객 앞에 세우는 일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2017년 독회부터 작품을 붙들어 온 극작가 김소라가 있다.

전주를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온 김소라 작가는 뮤지컬 ‘에밀’과 신작 ‘케이프타운’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뮤지컬 대본공모에 잇따라 선정되며 ‘2관왕’에 오른 창작자다. 수도권과 지역을 오가면서도 창작의 거점을 전주에 둔 그의 꾸준한 작업은 ‘안녕! 크로아티아’를 웰메이드 레퍼토리로 성장시켰고, 전주를 창작뮤지컬의 산실로 만들어 가는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다.

뮤지컬 ‘안녕! 크로아티아’ 공연 장면.

사실 지역에서 창작뮤지컬를 지속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작 환경도, 시장도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하나의 작품을 오랜 시간 다듬고 관객과 함께 성장시키는 사례는 더욱 드물다. 무대 뒤에서 김소라 작가와 함께 작품의 시간을 견뎌온 아트컴퍼니 두루의 뚝심 역시 이 공연을 완성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이러한 창작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지역 사회의 관심과 응원도 함께 자라나길 기대한다.

사람은 잃어버린 뒤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무대 위에 따뜻하게 펼쳐놓은 뮤지컬은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에게도 지우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조용히 묻는다.

당신에게 사랑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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