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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 - 모든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AI

"서울과학고 동문 콘퍼런스에 서울대와 카이스트, 또 구글과 네이버 출신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자리임에도 분위기는 의외로 어둡더군요. 챗GPT로 대표되는 AI 분야에서...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 - 모든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AI

인구절벽과 제조업 인력난은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는 공상과학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핵심 기반은 당연히 로봇이다. 그리고 완벽한 로봇 기능을 위한 필수 조건은 ‘사람처럼 정교하게 움직이는 손’이다.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 최영재 기자

피지컬 AI 스타트업 리얼월드는 로봇을 사람처럼 움직이게 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바탕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각축을 벌이는 전장에서 최근 시드 단계에서만 누적 6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한국 피지컬 AI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회사를 창업한 류중희 대표는 이미 국내 스타트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미국 빅테크가 한국 스타트업을 직접 인수한 드문 사례의 주인공이면서, 10여 년간 딥테크 기반 스타트업을 키워온 액셀러레이터 경력 덕이다. 더욱이 조력자인 액셀러레이터의 위치에서 다시 창업의 길을 택한 그의 스토리는 또 한 번 업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류 대표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결정적 계기는 약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과학고 동문 콘퍼런스에 서울대와 카이스트, 또 구글과 네이버 출신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자리임에도 분위기는 의외로 어둡더군요. 챗GPT로 대표되는 AI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크게 뒤처진 상태였고, 아무리 뛰어난 연구자라도 장비와 예산이 없으면 결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죠. 대화는 결국 ‘우리 이러다 다 망할 것 같다’는 결론으로 끝났습니다.”

류 대표는 당시 딥테크 기반 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를 이끌고 있었고, 어느 때보다 변화가 절실한 타이밍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인재 개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변혁기에 놓인 산업적 환경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직접 환경을 만들기로 작정한 이유다.

“챗GPT 같은 AI는 이미 미국과 중국이 선점한 영역이었지만, 로봇을 움직이는 AI는 아직 아무도 장악하지 않은 빈자리였습니다. 마침 AI 기술의 흐름도 언어 모델에서 로봇으로 옮겨가고 있었죠.”

당시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피지컬 AI 시대를 대중에게 선언하기도 훨씬 전이었다. 카이스트 AI 대학원 신진우 석좌교수 등 유수 연구진이 모인 자리에서 류 대표는 로봇 분야의 파운데이션 모델, 즉 특정 로봇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고 어떤 로봇에도 적용할 수 있는 AI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류 대표는 “피지컬 AI에서는 한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초강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섯 손가락 로봇이 산업현장에서 필수인 이유

글로벌 AI 업계와 생태계에서는 최근 생성형 AI 신드롬을 지나 피지컬 AI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피지컬 AI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에 류 대표는 현재 AI의 한계부터 짚었다.

“방 밖으로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할 수는 있지만, 그 물리적 경험은 알지 못하죠. AI는 단계를 밟아 진화해왔어요. 처음에는 글을 읽고 쓰는 AI가 나왔고, 그게 챗GPT의 기반이죠. 그다음에는 눈이 생겼고, 사진을 보여주면 무엇인지 알아보는 AI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로봇이라면 어떨까요? 모니터 속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보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자리에서 즉각 ‘어떻게 움직일지’까지 결정하는 능력이죠.”

류 대표는 시각·언어 정보에 더해 촉각, 물리 법칙 등 다양한 물리적 정보를 입력받아 행동을 추론하고 생성하는 모델을 ‘시각-언어-행동 모델(VLA: Vision-language-action)’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델을 둘러싸고 엔비디아, 구글, 피규어AI 등 글로벌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리얼월드는 올해 상반기 안에 자체 VLA 모델 공개를 준비 중이다.

리얼월드는 VLA 모델을 핵심 엔진으로 삼아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로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데이터로 사전 학습해 특정 영역만이 아닌 광범위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딥러닝 모델을 말한다. 챗GPT나 구글 제미나이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대표적인 예다. VLA가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한다면,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은 그 두뇌를 포함해 로봇이 실제 현장에서 움직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특정 작업만 반복하도록 만들어진 기존 공장 로봇과 달리, 별도 프로그래밍 없이 환경과 명령을 스스로 분석해 동작을 생성·실행한다. 류 대표는 리얼월드가 추진 중인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을 자동차에 비유했다.

“엔진이 없으면 차가 달릴 수 없죠. 하지만 엔진만으로 차가 굴러가는 것도 아닙니다. VLA가 일종의 엔진 개념이라면, 우리가 만드는 건 완성된 차 전체인 거죠.”

류 대표는 “리얼월드의 독자 VLA 모델은 내부적으로 이미 완성돼 여러 차례 버전 업그레이드까지 마친 상태”라며 “출시 시점에 대한 결정만 남겨뒀다”고 말했다.

리얼월드가 특히 주목하는 영역은 로봇의 ‘손’, 즉 손재주(Dexterity)다. 핵심은 자유도로, 이는 로봇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의 수다. 숫자가 클수록 사람 손에 가까운 섬세한 동작이 가능하다. 자율주행처럼 차량의 방향과 속도만 제어하면 되는 AI와 달리, 로봇 손을 제어하는 AI는 수십 개 관절이 동시에, 실시간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움직이는 복잡한 상황을 계산해야 한다. 자유도가 늘어날수록 AI가 처리해야 할 연산의 복잡도도 함께 커진다.

류 대표는 “예컨대 로봇의 손을 제외한 상체만 조절할 때는 자유도가 좌우 합쳐 14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섯 손가락을 양쪽 팔에 달면 AI가 계산해야 할 차원이 44로, 무려 세 배 이상 늘어난다. 손가락 마디마디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가락을 그대로 재현한 로봇은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많은 해외 경쟁사가 단순한 집게 형태를 선택한다. 집게는 양손을 합쳐도 자유도가 16에 불과해 그만큼 만들기도 쉽다. 류 대표는 리얼월드 창업 후 직접 공장과 물류 현장을 조사했고, 현장에서 마주한 니즈는 완전히 다름을 깨달았다. 사람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작업에는 다섯 손가락이 필요했다. 수건을 개고, 부품을 조립하고, 물건을 분류하는 일이 모두 그랬다. 집게 손으로는 시장이 원하는 문제를 풀 수 없었다. 류 대표는 “기술적 난도가 높더라도 현장에서 진짜 필요한 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것, 그것이 리얼월드의 핵심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다섯 손가락 로봇을 만들었다면, 이제 그 손을 제대로 움직이도록 가르쳐야 한다. 로봇의 학습은 결국 데이터의 문제다. 로봇이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양질의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로봇을 가르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사람이 직접 특수 장갑 등을 착용하고 로봇을 원격 조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장갑을 끼면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오지 않고, 숙련된 작업자에게 맡긴다 해도 조작 방법 자체를 모른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수십 년 경력의 호텔리어가 장갑을 끼고 자연스럽게 수건을 개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어색한 동작에서 나온 데이터로는 자연스러운 로봇의 움직임을 만들 수 없다.

리얼월드는 이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장갑을 끼는 대신, 숙련된 작업자가 평소처럼 일하는 장면을 3D 영상으로 촬영하고 촉각 정보 등을 더해 고품질 데이터로 만들었다. 전문가의 가장 자연스러운 동작 자체가 데이터가 된 셈이다. 이 방식 외에도 텔레오퍼레이션, 시뮬레이션 기반 증강, 비디오 생성 기반 증강까지 4가지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모두 실험해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다. 현재까지 이를 해낸 곳은 리얼월드가 유일하다. 이렇게 쌓은 데이터로 학습한 리얼월드의 모델은 엔비디아의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성능을 내면서도, 학습에 사용한 GPU는 50분의 1 수준이라는 게 류 대표의 추산이다.

“중국은 사람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미국은 엄청난 양의 GPU를 쏟아붓죠. 우리는 둘 다 하지 않아요.” 유한한 자원에서 최적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진짜 엔지니어링이라는 게 류 대표의 철학이다.

정밀한 동작만큼 속도도 중요하다. 아무리 정교해도 동작이 느리면 현장에서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리얼월드는 이를 위해 카이스트 연구팀과 협업하고 있다. 로봇이 정밀한 동작을 수행하도록 모델을 설계하는 전문가와, 완성된 모델을 GPU에서 빠르게 구동되도록 최적화하는 팀이 각자의 영역에 집중하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로봇의 손재주를 평가하는 기준도 직접 만들었다. 지금껏 업계에 이런 기준 자체가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류 대표는 “몇십 가지 동작을 수행하면 물류·제조·서비스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기준’을 리얼월드가 먼저 내놓겠다”고 말했다. 리얼월드는 조만간 공개할 VLA 모델과 함께 이 기준을 담은 백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하드웨어 전략도 같은 생각에서 나온다. 공장, 물류센터, 편의점 등 작업 현장마다 필요한 로봇의 생김새와 기능이 제각각이다. 로봇 하나로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삼성 같은 다양한 기업의 스마트폰에 얹듯, 리얼월드의 AI는 어떤 로봇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나아가 류 대표는 자체 로봇 개발도 검토 중이다. 구글이 구글폰으로 안드로이드의 우수성을 직접 증명하듯, 리얼월드의 AI가 실제로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로봇을 직접 선보여 업계 전체에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 최영재 기자

절박한 로봇 시장, 한국의 골든타임

류 대표가 창업 후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영업에 나서기도 전부터 기업들이 먼저 연락해온 것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로봇을 쓰는 기업이 해당 분야를 검색하면 리얼월드가 제일 먼저 나오는 거예요. 인구절벽을 가장 먼저, 가장 깊이 겪고 있는 동아시아 제조·물류·서비스 산업의 절박함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죠.”

현재 리얼월드는 CJ대한통운, 일본 통신사 KDDI가 지분을 보유한 편의점 로손, 항공사 ANA, 롯데호텔 등 전략적 파트너사들과 현장 협력을 진행하며,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MSR) 같은 글로벌기업들과도 연구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편의점 로손 사례는 상징적이다. 일본의 시골 지역은 편의점이 사실상 동사무소 역할까지 하는데, 일할 젊은이가 없어 아예 점포를 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비용 절감이 목적이 아니에요. 그저 사람을 찾을 수가 없는 거죠.” 류 대표의 설명이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공장과 물류 현장도 이미 같은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리얼월드는 자사 기술만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장에 직접 들어가 문제를 진단하고 실행까지 함께한다. 류 대표는 이를 ‘RX(Robotics Transformation)’, 즉 로봇 전환이라고 정의한다. AI 도입을 뜻하는 ‘AX(AI Transformation)’가 기업의 디지털화를 이끌었다면, RX는 로봇이 실제 현장에 뿌리내리는 과정 전체를 설계하고 실행한다는 개념이다. 리얼월드에는 실제로 어떤 로봇을 어떻게 도입할지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과 함께 설계하는 전담 직군이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이 대다수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능한 것과 2~3년 뒤에 가능한 것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제안을 드릴 수 있습니다.”

류 대표는 창립 1년의 핵심 성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카이스트·서울대·포스텍 등 석박사급 연구진 100명 이상의 팀, 한국·일본 기업들과의 현장 데이터 파트너십, 600억원 규모 시드 펀딩이다. 팀 운영의 핵심 원칙은 ‘인재 밀도’다. 넷플릭스 창업자가 쓴 책 『규칙 없음』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류 대표는 규칙을 촘촘히 만드는 게 아니라, 뛰어난 사람에게 걸맞은 자율성과 권한을 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는 굉장히 크고 담대합니다. 경쟁사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뿐이죠.” 다음 투자 라운드의 목표는 주요 빅테크 및 톱티어 벤처캐피털로부터의 자금 조달이다.

로봇이 실제 산업현장에 광범위하게 도입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류 대표는 3~5년을 제시했다. 현장 도입에 대한 합의, 환경 적응, 데이터 수집, 하드웨어 준비, 모델 진화가 모두 맞물려 이루어지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금을 챗GPT 초창기 수준에 비유했다.

“GPT-3 때부터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졌고, GPT-5 정도가 됐을 때 비로소 쓸 만한 도구가 됐죠. 지금의 피지컬 AI는 GPT-1 수준입니다. 그러니 3년 안에 GPT-3 수준까지 가면 대단한 성취인 거죠.”

향후 목표는 두 가지다. 전 세계 3위 안에 드는 모델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산업현장 도입에서는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충분히 자리를 잡은 후에는 가정용 시장으로 확장하는 장기 비전도 그리고 있다.

인터뷰 막바지, 류 대표는 문명사적 진화라는 철학적 화두를 거론하며 사업적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간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로봇에게 물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문명사적 진화죠. 물류센터의 단순 반복 노동, 제철소 쇳물 앞의 고열 작업, 방사능 현장 업무처럼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맡아온 힘들고 위험한 일들이 좋은 예죠.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공포가 지배적이지만, 공장에서 일할 사람 자체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 공포는 이미 다른 문제가 됐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이 피지컬 AI의 초강국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가 증명하고 있어요. 이제 곧 결과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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