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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로터리] 좋은 도시가 좋은 집을 만든다

주택 문제는 도시 문제다. 집을 짓는 일만으로는 주거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집과 함께 쾌적한 생활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생활환경을 갖추는 것으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 집에서 일터까지 편하게 오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그곳에 정착한다. 국민이 원하는 집은 적정주택이다.

[로터리] 좋은 도시가 좋은 집을 만든다

이헌욱 한국부동산원장. 사진 제공=한국부동산원

주택 문제는 도시 문제다. 집을 짓는 일만으로는 주거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집과 함께 쾌적한 생활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생활환경을 갖추는 것으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 집에서 일터까지 편하게 오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그곳에 정착한다. 국민이 원하는 집은 적정주택이다.

적정주택의 요건은 크게 네가지다. 첫째, 일상적 통근 가능성이다. 생활권 도시 안의 통근은 대중교통으로 10분에서 20분, 인근 도시로의 통근은 편도 40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쾌적한 생활환경이다. 일상에 필요한 편의시설이 도보나 자전거로 닿는 거리 안에 갖춰져야 한다. 셋째, 부담가능성이다. 평범한 중산층과 서민이 자기 소득으로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주거 안정이다. 원하지 않는 이사를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

주거 안정 수준이 높은 도시들은 두 가지를 함께 갖추고 있다. 하나는 넉넉한 물량이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주택 수가 헬싱키는 574가구, 취리히는 527가구, 코펜하겐은 519가구, 빈은 477가구 수준이다. 다른 하나는 투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주택이다. 빈은 시영주택과 협동조합주택을 합해 주택 재고의 40%를 넘고, 시민의 60%가 그 집에 산다. 코펜하겐도 공공임대와 가격규제 협동조합주택이 40%를 넘는다. 취리히는 주로 협동조합 주택을 중심으로 한 비영리주택이 27% 수준이며 주택 재고의 1/3 이상 목표를 기본조례에 명시하고 있다. 이런 주택은 투자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주택시장의 앵커 역할을 한다. 정해진 임대료로 장기 거주를 보장하고, 일정 규모 이상 쌓이면 민간 임대료를 재는 기준선이 된다. 여기에 무주택자 누구나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때 주거의 안정성은 크게 높아진다.

도쿄 23구는 또 하나의 길을 보여준다. 2024년 통계 기준으로 서울은 605㎢에 934만 명, 도쿄 23구는 628㎢에 978만 명으로 크기와 인구가 거의 같다. 그런데 주택은 서울이 391만가구, 도쿄 23구가 592만가구다. 인구 1000명당으로 서울은 418가구, 도쿄 23구는 605가구다. 우리의 장기 공공임대 재고율은 10%에 이르지 못한다. 도쿄 23구는 공공임대의 비중은 낮지만 물량이 두텁고,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이 임차인을 강하게 보호한다. 집주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갱신을 거절하지 못하며 서로의 사용 필요와 이용 실태, 퇴거료까지 법원이 함께 따진다. 넉넉한 물량과 강한 임차인 보호가 만나면 공공임대 비중이 낮아도 주거 안정이 보장될 가능성이 커진다.

서울은 인구 대비 주택이 부족하고, 공공임대도 부족하다. 서울에는 이제 추가로 주택을 공급할만한 공간도 거의 없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편리하게 출퇴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다. 편리한 통근을 통해 경제생활 인구는 유지하더라도 거주 인구는 수도권으로 분산해야 한다. 기존 도심에서는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며 신규 주택을 추가로 공급하되 이주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사업 시기를 조정하고 이주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도시재개발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수도권에 새로운 도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새로운 도시 공간을 만들 때는 주거와 교통, 교육과 인재육성, 산업과 일자리, 문화예술, 소비와 생활서비스, 의료와 돌봄을 촘촘히 채워 삶의 질과 혁신성을 함께 갖춘 도시로 만들어 가야 한다. 기존 도시를 고칠 것인지, 새로운 도시를 만들 것인지는 어떤 방식이 국민의 선택권을 더 넓히고 도시공간의 희소성을 완화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토균형발전이 수도권 주택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한다. 비수도권에 혁신적이고 살기 좋은 도시가 여러 곳 생겨 인재와 일자리를 끌어당기면 수도권 집중이 완화되면서 주택 문제도 함께 풀린다. 주택 공급은 집을 공급하는 일을 넘어선다. 사람이 머물고 인재가 정착하며 도시가 성장할 기반을 놓는 일이다. 결국 주택 문제는 도시 문제이며 국민이 선호하는 도시 공간의 희소성을 완화하는 것이 주택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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