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그 부재다. 라운지 소파는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 앉았던 흔적이 없었다. 오픈 워크스페이스의 대형 테이블에는 노트북 한 대만 켜져 있었다. 부스 좌석은 전부 비어 있었다. 인테리어는 새것이었다. 서울 도심, 국내 최대 창업 지원 재단이 운영하는 공간의 오늘이다. 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어제도, 그제도 그랬다.
이 공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다들 안다. 한때는 달랐다는 것을.
황금기가 있었다
2013년 봄, 이 재단의 첫 번째 공간이 문을 열었을 때 업계는 들썩였다. 자리 하나를 얻으려고 순서를 기다리는 창업자들이 있었다. 매달 열리는 데모데이는 2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등용문이었다. 발표자를 응원하는 함성, 피칭이 끝난 뒤 명함을 주고받는 소리. 이 무대를 거쳐간 기업들의 이름은 지금 누구나 안다. 토스,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야놀자. 국내 유니콘 기업의 절반이 이 재단의 손을 거쳤다.
재단은 2012년 19개 금융기관이 함께 돈을 모아 세운 국내 최대 창업 지원 기관이다. 지금까지 쌓인 출연금만 수천억 원. 설립의 논리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시장이 외면하는 초기 창업자들에게 자금과 공간과 연결을 먼저 내어주는 것. 비영리 재단으로 설립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수익이 아니라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 존재의 이유였다.
설립 10주년이던 2022년 기준으로 이 재단이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28조 원에 달했다. 10만 9천 명의 고용 창출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지금은 그보다 더 늘었다. 리모델링을 거쳐 새 단장을 하고, 두 번째 거점까지 생기며 재단의 무게는 더 커졌다. 생태계 안에서 이 재단이 가진 상징성도 함께 커졌다.
무엇이 달라졌나
변화는 수치로 먼저 드러났다. 초기 기업에 대한 직접투자 건수. 2023년에는 30건이 넘었다. 이듬해 한 자릿수로 줄었고, 지난해는 단 1건이었다. 3년 새 급감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이미 상당한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었다.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대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곳들이 지원 대상에 들어왔다. 창업 지원 재단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벤처캐피털의 그것과 닮아가기 시작했다. 한 내부 관계자는 “정작 지원이 필요한 초기 기업들이 배제됐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공간도 달라졌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던 멤버십 제도는 사라졌다. 열려 있던 공간이 안으로 닫혔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 공간을 미팅 장소로, 협력의 거점으로 오래 활용해왔다. 투자자를 만나고, 동료 창업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던 공간이었다. 그런 그가 발길을 끊은 건 출입 시스템이 바뀌면서부터였다. “이젠 가지 않게 됐어요. 남의 집에 가는 느낌이랄까요.” 문이 잠긴 것이 아니었다. 환영받는 느낌이 사라진 것이었다.
데모데이 출전을 검토했던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예전보다 출전 기회가 줄어든 느낌”이라는 말을 남겼다. 같은 시기 재단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2년 만에 교체됐다. 두 거점 공간 모두 새 단장을 마쳤다. 겉은 새것이 됐다. 한 내부 관계자는 조용히 물었다. “실제로 스타트업에 가는 혜택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단 측은 이 변화를 공식화했다. 2024년 10월 ‘비전 선포식’을 통해 성장 단계 스타트업 지원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초기 기업보다 검증된 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 생태계에 더 실질적인 기여를 한다는 논리였다. 전략적 판단이라는 설명이었다.
재단의 설립 취지를 아는 사람들은 그 설명 앞에서 멈칫한다. 수익을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부 관계자들은 이 변화를 전략이 아니라 다른 말로 부른다. “변질”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 균열은 재단 바깥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공간이 바뀌는 동안 사람들도 바뀌고 있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노조가 결성됐다. 지난달 20일의 일이다. 정규직 58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름을 올렸다. 직접적인 도화선은 성과향상 프로그램(PIP) 도입 시도였다. 주로 대기업에서 쓰는 방식으로, 성과가 낮다고 판단된 직원을 분류해 업무에서 떼어내고 개선이 없으면 퇴사를 유도하는 구조다. 대상자 선정이 팀장들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지자 팀장들이 집단으로 거부했고, 결국 프로그램은 보류됐다. 일부 직원은 명확한 이유 없이 업무에서 배제됐다. 한 내부 관계자는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졌다”고 전했다.
이 같은 경영 방침의 변화가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됐는지를 두고 내부 감사도 진행됐다. 재단 감사가 대표를 대상으로 수시감사를 벌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재단 측은 “이사회뿐 아니라 지방 출연기관까지 직접 찾아가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직원들은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사안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상태다.
생태계는 무엇을 보고 있나
재단이 문제인 것이 아니다. 재단을 아끼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 재단을 거쳐 성장한 한 졸업 기업 대표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다가가기 어려운 곳이 됐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그 말이 비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리움처럼 들렸다.
이 재단의 안팎을 모두 아는 한 관계자는 변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2013년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지금은 다릅니다. 초기 창업자에게 공간과 무대만 제공하던 방식이 언제까지나 최선일 수는 없어요. 검증된 기업의 성장 지원, 글로벌 진출, 후속 투자 연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을 이었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변화가 재단의 설립 목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누구의 동의를 거쳤는지, 초기 창업자와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됐는지가 문제입니다. 공익적 출연금으로 만들어진 기관이라면 방향 전환에도 공익적 설명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그가 기억하는 이 공간의 의미는 달랐다. “초기 창업자에게 이곳은 시장에 처음 자신을 드러내는 무대였어요. 투자자에게는 아직 숫자로 증명되기 전의 가능성을 만나는 장소였고, 금융권에게는 혁신 생태계와 접속하는 통로였습니다. 생태계 전체에는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신호였고요. 그래서 이곳은 단순한 라운지나 공유오피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등용문이었습니다.”
등용문, 다시 열 수 있는가
그래서 이 문제를 단순한 노사 갈등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이 재단은 민간 기업이 아니라 금융권 공동 출연으로 만들어진 창업 생태계 인프라입니다. 운영 방향의 변화는 직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창업자, 투자자, 출연기관, 이사회 모두가 함께 점검해야 할 사안입니다. 특히 출연 금융기관들은 이 재단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 다시 물어야 합니다. 성과 좋은 기업을 선별해 지원하는 기관을 만들고자 했던 것인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창업자에게 첫 기회를 제공하는 공익적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던 것인지 말이죠.”
지금 필요한 질문은 단순히 “공간이 왜 비었는가”가 아니다. 이 재단은 여전히 초기 창업자에게 열려 있는가. 직원들은 이 변화에 납득하고 있는가. 출연기관과 이사회는 설립 당시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가.
사실 스타트업들이 이 재단에서 만난 것은 이사장도, 대표도 아니었다. 매달 데모데이 무대에서, 입주 공간 한켠에서 함께 고민하고 응원을 주고받던 직원들이었다. 재단의 온기는 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이 재단의 가장 큰 자산은 건물도, 브랜드도, 출연금도 아니었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창업자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함께 지켜온 사람들이었다. 등용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열 수 있는 문이어야 한다.
조상래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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