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글로벌 영토 확장 공식이 바뀌고 있다. 현지 법인을 세워 직접 깃발을 꽂던 방식에서 벗어나 검증된 거래 시스템과 인프라를 수출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에 동행한 경제 사절단에 두나무가 포함되며 이러한 전략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순방을 통해 국내 가상자산 기술력이 해외 제도권 금융 인프라와 결합하는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현지 금융 환경에서 기술 검증을 마쳤다는 점에서 단순히 기업의 세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적인 ‘글로벌 데뷔’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지난해 7월 베트남을 찾은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왼쪽)이 팜 민 찐 베트남 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VNA 제공]
29일 업계에 따르면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베트남의 대형 금융 기관인 군인상업은행(MB은행) 및 주요 파트너사들과 만나 가상자산 거래소 시스템의 현지 기술 검증(PoC)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번 검증은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실제 현지 금융 환경에서 입출금 연동까지 실무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업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업계 안팎에선 두나무의 성과를 ‘패키지형 솔루션 수출’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한다. 거래 체결 엔진부터 보안, 은행 연동까지 하나로 묶은 통합 모델이 동남아 현지 법규를 충족하며 작동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두나무가 현지 법인을 통한 직접 진출 대신 ‘인프라 수출’이라는 우회로를 택한 이유는 국가마다 천차만별인 규제 장벽에 있다. 가상자산 사업자(VASP) 라이선스 취득 요건이 국가마다 다르고, 최근 글로벌 규제 강화 추세 속에서 외국계 자본이 직접 거래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 두나무는 해외 법인인 ‘업비트 글로벌’을 통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렸으나, 까다로운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고전했다. 법인 설립 이후에도 자금 운용과 서비스 관리 등 실무적인 제약이 잇따르며 당초 계획했던 공격적인 글로벌 진출 전략이 동력을 잃은 모습이다.
베트남 당국과 두나무의 니즈도 잘 맞아떨어졌다. 그간 베트남 정부는 외화 유출 방지 등을 목적으로 가상자산 거래를 법적으로 금지해왔다. 2017년부터 가상화폐를 법정 통화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거래소 운영과 사용 전반을 엄격하게 규제하며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강도 높은 통제 기조를 이어왔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이 바이낸스 등 해외 플랫폼에서 활발히 거래하자 기존 입장을 바꾸면서 가상자산 관련 규제 마련에 착수했다. 거래대금 세계 3위권의 규모를 뒷받침하는 혁신 기술과 고성능 인프라, 여기에 보안 및 규제 대응 노하우까지 갖췄다는 점이 업비트를 파트너로 낙점한 결정적 이유다. 실제 이번 협약이 성사되기까지 베트남 정부와 두나무 측은 긴 시간 긴밀한 논의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도 빡빡한 규제가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2017년 자금세탁방지 제도 미비 등의 명목으로 외국인의 가상자산 거래 계좌 개설을 사실상 금지하는 구두 행정지도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거래소 입장에서도 글로벌 수요를 잡기 위해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다.
두나무 관계자는 “가상자산 투자가 과열된 시기 외국인 투자자 진입을 막기 위해 여러 규제가 생겼다”며 “현재까지도 외국인은 국내 거래소 가입이 불가한 상황이라 우리 시스템을 현지 금융 기관에 이식하는 방식이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말했다.
패키지형 수출은 기술을 도입하는 MB은행에 메리트를 제공한다. 현지 은행이 거래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개발하려면 수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지만, 검증된 패키지를 도입함으로써 시장 진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통과한 자금세탁방지(AML) 및 보안 패키지가 통째로 이식되기 때문에 까다로운 규제 심사를 단번에 충족할 수 있다는 점도 독보적인 강점이다.
공급자인 두나무 입장에서도 강력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직접 법인을 세우거나 서버를 구축할 필요가 없는 ‘자산 경량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료와 기술료 중심의 수익 구조를 가져가며 초기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인지도가 낮은 외국 거래소로 진입하는 것보다 현지인들에게 친숙한 은행 브랜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고객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협업은 향후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한 강력한 ‘성공 레퍼런스’가 된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자산 거래소 인프라는 안정적인 서비스뿐만 아니라 금융 보안과 직결되는 만큼 도입 결정 시 과거의 이식 사례가 결정적인 판단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두나무 관계자는 “인프라 수출을 통해 국내 거래소 기술 위상을 높일 수 있게 됐다”며 “향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함에 있어 이번 베트남 선례가 기술적 신뢰를 입증하는 유효한 지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나무의 이번 성과를 기점으로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해외 시장 공략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빗썸 역시 베트남 진출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공증권(SSI)에 따르면 응우옌 유이 흥 SSI 회장과 주요 경영진은 지난달 이재원 빗썸 대표와 만나 가상자산 사업 관련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두나무가 운영하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사진=두나무 제공]
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인프라나 시스템을 지원하는 것은 규제 등에 있어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며 “국내에는 촘촘한 규제망으로 인해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라 이러한 방식의 수출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 제도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내 거래소들의 전략은 운영권 경쟁에서 기술 및 인프라 수출로 진화하고 있다. 두나무가 베트남에서 쏘아 올린 이번 PoC 기술 검증이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 IT 솔루션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실무적인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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