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완 충북보건과학대 평생교육원장
지방정부의 곳간에 경고등이 켜졌다. 세입은 쉽게 늘지 않는 반면 복지·돌봄·재난안전·노후시설 관리에 필요한 지출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지역경제 침체까지 겹치면서 민선 9기 지방정부가 맞닥뜨린 지방재정 위기는 일시적인 세수 부족이 아니라 수입은 경직되고 지출은 팽창하는 구조적 문제다.
그렇다고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 다이어트’가 아니라 ‘재정 포트폴리오의 전면 재설계’다. 세계의 지방재정 연구가 보여주는 방향도 분명하다. 재정위기를 사전에 관리하고, 한정된 재원을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며, 중앙과 지방이 재정책임을 합리적으로 나누는 것이 지속가능한 지방재정의 출발점이다. 지방재정의 건전성은 회계상의 숫자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와 주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이기 때문이다.
민선 9기 지방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재정위기를 사전에 발견하는 것이다. 매년 예산을 편성할 때 세입 감소, 복지수요 증가, 재난 발생 등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3년과 5년 뒤 재정 상태를 전망하는 ‘지방재정 건강검진’을 상시화해야 한다. 재정위기가 발생한 뒤 처방하는 행정에서 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대응하는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모든 사업을 일률적으로 삭감하는 방식도 버려야 한다. 사업별 성과와 필요성을 평가해 반드시 지켜야 할 사업과 확대할 사업, 민간과 협력할 사업, 정리할 사업을 구분하고 재원을 다시 배분해야 한다.
공공시설에 대한 재정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체육관과 문화센터 하나를 건립할 때 건립비만 따질 것이 아니라 준공 이후 20년 동안 발생할 인건비·관리비·에너지비·보수비까지 계산해야 한다. ‘지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20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지방채 역시 무조건 억제할 대상은 아니다. 미래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에는 활용하되 미래 세대의 부담만 키우는 사업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경제적 효과와 상환능력, 장기 운영비를 함께 따지는 투자형 지방채 원칙이 필요한 이유다.
지방재정과 지역경제를 따로 보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지역소비 확대, 관광객 유입은 지역의 세원을 키우는 경제정책인 동시에 재정정책이다. 특히 인구감소 시대에는 주민등록인구만으로 지역의 경제적 활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관광객과 통근자, 학생, 방문객, 관계인구가 지역에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만들어 생활인구를 새로운 재정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반복되는 보조사업에는 일몰제와 성과평가를 적용해야 한다. 성과가 낮은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효과가 검증된 사업에는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 절감한 재원은 단순히 불용 처리할 것이 아니라 돌봄과 청년 일자리, 소상공인, 농업, 재난안전, 문화관광 등 지역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분야에 재투자해야 한다. 재정혁신의 기준은 ‘얼마나 삭감했는가’가 아니라 ‘절감한 재원을 어디에 다시 투자했는가’가 돼야 한다.
이 모든 개혁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것이 ‘5-3-2 지방재정혁신모델’이다. 5대 혁신은 세입·세출 구조개혁, 사업 구조조정, 공공시설 재설계, 지방채·지역자산의 효율적 활용, 지역경제와 디지털·AI를 결합한 재정혁신이다. 3대 관리는 재정건전성·재정효율성·재정투명성을 중심으로 재정위험을 상시 관리하는 것이다. 2대 목표는 재정위기를 예방하고 지역의 성장동력을 키우는 데 있다. 결국 5-3-2 모델의 핵심은 덜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재원으로 더 큰 재정효과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AI 기반 지방재정 관리도 서둘러야 한다. 세입·세출뿐 아니라 인구, 복지수요, 지방채, 공공시설, 보조금 등의 데이터를 연결하면 재정위험을 조기에 포착하고 정책별 재정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지방정부가 보유한 토지와 지역자산의 가치, 개발에 따른 가치 상승분을 공공투자 재원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새로운 수입원을 발굴하지 않고 지출만 줄여서는 지속가능한 재정을 만들 수 없다.
지방재정 위기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예산 관행을 버리고 재정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줄일 것은 과감하게 줄이고, 지킬 것은 확실하게 지키며, 미래에는 더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민선 9기 지방정부가 선택해야 할 길은 긴축 자체가 아니다. 재정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이제 지방재정의 성과를 단순한 예산 절감액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위험을 줄였고, 얼마나 낭비를 걷어냈으며, 얼마나 미래에 투자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적게 쓰는 정부가 아니라 한정된 재원으로 주민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꾸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선 9기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지방재정의 모습이며, ‘5-3-2 지방재정혁신모델’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