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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동양에세이/ 그 하나로 족하다

어두컴컴한 콘크리트 벽 쪽, 하얀색으로 굵게 칠한 두세 평의 직사각형 공간이 나를 향해 손짓한다. 주차장이다. 말 없는 단 하나의 주차면이 나의 지친 하루에 안도감을 준다.

동양에세이/ 그 하나로 족하다

▲이근형 수필가

어두컴컴한 콘크리트 벽 쪽, 하얀색으로 굵게 칠한 두세 평의 직사각형 공간이 나를 향해 손짓한다. 주차장이다. 말 없는 단 하나의 주차면이 나의 지친 하루에 안도감을 준다.

“됐어. 고맙다. 내 차를 세워둘 자리는 너 하나로 족하다.”

너른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는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게 주차다. 자리를 찾지 못해 대로변에 밤샘 주차했다가 구청으로부터 달갑지 않은 우편물을 받은 것도 여러 번.

어디 아파트뿐이랴. 주차가 마땅치 않은 골목길에서는 이리저리 살피며 빈자리를 찾느라 같은 곳을 수차 빙빙 돌기도 한다. 그때마다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다. ‘두 개도 아닌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 하나로 족하다’고.

‘빠홈’이라는 사내가 있다. 젊은 날에 소작농으로 살면서 지주에 당했던 횡포가 사무쳤다. 땅 한 평 없는 설움을 뼈저리게 당하고 살았기에 많은 땅을 얻어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자신이 걸어 돌아온 만큼의 땅을 거저 주겠다는 바시키르인의 제안을 받는다. 단, 해가 넘어가기 직전까지 반드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하며, 단 1초라도 늦으면 하루 종일 다녔던 수고는 물거품이 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약속한 날에 최대한 멀리까지, 먹지도 쉬지도 않고 온 힘을 다해 걷고 뛰었다. 일분일초가 그에게는 땅의 넓이가 되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해가 지기 직전에 출발지로 돌아왔다. 드디어 넓은 땅의 소유주가 되는 순간이었다. 추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 순간, 극심한 과로에 그는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내용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결국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땅은 그를 묻기 위한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6피트(약 1.8m)뿐이었습니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을 대하는 인류의 태도 또한 빠홈의 욕망과 닮아있다. ‘더 많이, 더 크게’를 외치며 자연을 학대한 대가는 참혹한 부메랑이 되었다.

지난 6월, 월드컵 열기가 하늘을 찌를 때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 같은 팀들이 고국에 낭보를 전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륙은 역사상 유례없는 열돔에 시달리고 있었다. 혹독한 자연 재난을 겪는 고국에 전한 월드컵 승전보를 자국민들이 진정한 낭보로 느낄 수 있었을까. 열돔의 출발점이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을 일으킨 유럽이라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최근 네팔과 중국 등지의 대홍수 사태는 산꼭대기의 빙하가 녹아 흐르는 낙차의 힘이 원인이라고 한다. 빙하가 녹는 이유 역시 인간이 불필요하게 많이 생산하여 많이 누리겠다는 과욕이 유발한 지구의 열기 때문이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다다익선’이라는 성어가 무섭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왜 ‘과유불급’이라는 성어에 유의하지 못할까. 법정의 무소유 정신과 한경직의 청빈사상이 한낱 유물이 된 현실이 안타깝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성경구절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인류는 충분히 과욕의 보응을 받고 있다.

집을 나설 시간, 자동차 시동을 건다. 내 차가 안착할 자리는 어디든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중얼거린다. ‘넓은 자리, 여러 칸이 필요 없다. 하나만 있어다오’. 매사에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새 껑충 높아진 하늘을 본다. 가볍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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