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삼수 서울본부장
최근 보수 정계가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지난 15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44.3%)이 더불어민주당(38.0%)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질렀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역전극이다. 탄핵의 강을 건너고 지방선거를 거치며 숨어있던 ‘샤이 보수’가 마침내 결집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반전의 기회에 지지층은 환호하고 있지만, 당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깊은 수심이 서려 있다. 당권을 둘러싼 집안싸움이 자칫 이 소중한 골든타임을 허망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 탓이다.
전장의 중심에는 당 대표 자리를 지키려는 판사 출신 장동혁과, 무소속의 몸으로 체제 전환을 노리는 검사 출신 한동훈이 서 있다.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 보수의 승리를 위해 함께 뛰었던 동지였다. 법치의 최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법조인 리더십이라는 공통점도 가졌다. 명징한 논리와 정제된 언어로 보수의 가치를 대변해 온 두 주역이 이제는 당의 명운을 걸고 외나무다리에서 마주 선 꼴이다.
‘수성(守城)’에 나선 장동혁 대표의 강점은 단연 시스템과 균형 감각이다. 당내 갈등 속에서도 원내 지도부와 호흡하며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왔다. 그러나 위기 국면에서 지지층을 폭발시키는 파괴력이나 과감한 인적 쇄신을 이끄는 돌파력이 아쉽다는 평가도 따른다.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덧칠해진 ‘밉상’ 이미지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변화보다 현상 유지를 택하는 방어적 리더십이라는 비판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반면 ‘공성(攻城)’에 나선 무소속 한동훈 의원은 파격과 팬덤의 화신이다. 검사 시절부터 보여준 저돌적인 청산 능력과 메시지는 단숨에 그를 대권 주자 반열에 올렸다. 원내 야인이라는 불리한 처지에서도 판을 흔들 수 있는 대중적 인지도가 최대 무기다. 하지만 기성 정치를 부정하는 듯한 직설적 공격과 당내 기반 부족은 문제다. 전통적 보수층에게 질서와 품격을 해치는 ‘분열의 아이콘’으로 비칠 위험을 안고 있다.
두 사람의 격돌을 보며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과 초나라 성왕의 ‘퇴벽삼사(退避三舍)’ 일화를 떠올린다. 과거 문공이 망명 시절 초나라 성왕에게 신세를 지며 “훗날 전쟁에서 만나면 군대를 서른 정(90리) 뒤로 물러 양보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 전투에서 그 신의를 지켰다. 당장의 승리에 눈이 멀어 상대를 선멸하려 하지 않고 대국을 바라보았던 큰 정치의 표본이다.
당내 전언을 종합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한다. 한 의원이 복당하는 순간 장 대표는 정계 은퇴를 각오해야 할 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 물리적 봉합조차 불가능하다는 냉소적 시선이 팽배하다. 그러나 지금이 과연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고 죽기 살기로 싸울 때인가. 이번 지지율 역전이 야당이 잘해서 얻은 반사이익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안다.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비판 여론이 비등하고 있으며, ‘대통령 공소취소 특검’을 앞둔 민심에는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공멸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사로운 감정싸움은 공인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통 보수 지지층이 갈망하는 것은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진흙탕 싸움이 아니다.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내가 생존하는 소인의 투쟁을 넘어, 보수의 백년대계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품어 안는 대인의 정치를 보고 싶어 한다. 장동혁의 ‘안정과 시스템’ 위에 한동훈의 ‘파격과 쇄신’이라는 동력이 결합할 때, 보수는 비로소 정권 재창출이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진검승부가 파멸을 재촉하는 내분이 아니라, 서로의 경륜과 자산을 흡수하여 더 큰 보수로 거듭나기 위한 기름진 자양분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지층이 바라는 것은 홀로 살아남은 상처뿐인 승자가 아닌, 내일을 함께 열어갈 상생의 동반자다. 분열의 상흔을 넘어 서로를 향한 칼날을 거두고 각자의 날카로움을 포용의 그릇에 담아낼 때, 비로소 정권 재창출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는 문이 열릴 것이다.
이 승부가 큰 정치로 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는 민심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더는 볼썽사납게 싸우지 마라.” 이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국힘 지지자들의 마지막 외침이자 준엄한 명령이다. 각자도생의 외나무다리가 아닌 대통합의 탄탄한 대로를 함께 걷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금 엄중하고도 간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윤삼수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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