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가결됐다. 이 법은 지난 10일부터 시행됐다. 사진은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가결되는 모습. (사진=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오히려 노동의 자리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성공한 정책일까.
최근 시행된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산업 현장의 반응은 이 질문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법 시행 이틀 만에 하청 노조 453곳이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노란봉투법의 취지는 분명하다. 원청이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교섭 책임은 회피해 온 구조를 바로잡고, 하청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계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기업 경영진 관점에서 이 법은 ‘노사 관계 법’이 아니라 ‘경영 리스크 확대 법’으로 읽히는 측면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부담은 협상 테이블의 확장이다. 지금까지 기업은 직접 고용한 노동자와의 노사 관계만 관리하면 됐다. 그러나 이제는 하청과 재하청 구조에 있는 노동자까지 사실상 교섭 대상으로 등장했다. 대기업 제조업 현장을 보면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 협력사가 연결돼 있다. 이들이 동시에 교섭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원청 기업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노사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부담이 단순히 노사 관계의 복잡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영진이 느끼는 압박은 결국 투자 방향을 바꾸는 신호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을 고용하는 구조 자체가 리스크가 된다면 기업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덜 쓰는 방향을 고민하게 된다.
이미 비슷한 사례가 있다. 몇 년 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책의 목적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시장의 대응은 예상과 달랐다.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 서비스업 현장에서는 사람 대신 키오스크가 빠르게 늘어났다. 인건비 상승이 기술 도입을 앞당긴 셈이다.
AI 생성 이미지.
노란봉투법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노사 교섭 리스크가 커질수록 기업은 인력을 줄일 수 있는 기술 도입을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최근 산업계에서 빠르게 논의되는 피지컬 AI 기반 로봇이 대표적이다. 단순한 자동화 설비를 넘어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이 생산 현장에 투입되는 흐름이다.
지금까지 제조업 자동화는 주로 비용 절감이나 생산성 향상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노사 리스크 관리라는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될 수 있다. 사람을 고용할수록 협상과 분쟁 가능성이 커진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 자체를 줄이는 기술이 가장 확실한 대응책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정책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장기적으로는 노동 수요 자체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물론 노란봉투법이 등장한 배경에는 분명한 현실 문제가 있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도 교섭 창구는 없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해 왔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정책은 의도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기업에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면 산업 현장의 변화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은 인간 노동이 아니라 로봇과 자동화일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보호하려는 정책이 노동을 가장 빠르게 대체하는 기술을 부른다면, 그 정책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노란봉투법이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가장 불편한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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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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