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
기업의 사회공헌이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 과거에는 이윤의 일부를 시혜적으로 나누는 ‘연대의 증표’였다면, 최근의 기업은 자신들의 핵심 역량을 사회문제 해결에도 직접 결부시키고 있다. 이른바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은 기업의 본업과 사회적 임팩트를 일치시키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실천적 진화다. IT(정보기술) 기업은 인공지능 기술로 독거노인의 말벗이 되어주고, 물류 기업은 거미줄 같은 망을 활용해 취약계층에 지원 물품을 더 빠르게 전달하며, 금융 기업은 전문성을 활용하여 청년·취약계층의 자립을 지원한다. 사회공헌이 기업의 부수적인 활동을 넘어 본업의 전문성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적 실행’의 영역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도 현장의 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국내 주요 기업이 사회공헌에 쏟아붓는 지출은 연간 5조4000억원에 달한다. 숫자만 보면 이미 우리 사회의 거대한 안전망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막대한 물줄기가 메마른 현장에 닿기까지는 수많은 병목 현상이 존재한다. 기업은 자원을 투입할 최적의 파트너를 찾지 못해 수개월을 허비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비영리단체나 소셜벤처는 문을 두드릴 창구를 찾지 못해 미로 속에서 헤맨다. 의지는 충만하지만 정보는 분절되어 있고, 열정은 뜨겁지만, 연결의 방식은 구태의연한 것이 현실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정부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닌, 민간의 혁신을 북돋우는 지능형 설계자로 나설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말 선보인 온라인 사회공헌 매칭 플랫폼 ‘바로잇’(crckorea.kr/baroit)은 이러한 구조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해법이다. 바로잇은 기업의 사회공헌 자원과 비영리단체 등 현장의 사회공헌 수요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기업은 자사의 철학에 부합하는 협력 기관을 즉시 찾아내고, 비영리단체·소셜벤처 등은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수요를 직접 제안한다. 정보의 장벽을 허물고 실행의 지름길을 놓는 ‘사회공헌 고속도로’가 개통된 셈이다.
플랫폼의 진정한 성공은 단순한 숫자 규모가 아닌 수요·공급의 밀도 및 정합성에서 판가름난다. 정부의 역할은 판을 깔아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바로잇을 통해 연결된 우수 사회공헌 사례를 축적·확산하고, 이를 지역사회공헌인정제 등 인센티브 제도와 긴밀히 연계할 방침이다. 기업의 선의가 일회성 지출에 멈추지 않고, 사회적 명성과 실질적인 성과로 재창출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사회공헌의 미래는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단단하게 연결되느냐’에 달려있다. 바로잇은 단순한 매칭시스템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숨 쉬는 상생의 인프라를 목표로 한다. 정부는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대한민국 사회공헌 패러다임을 바꾸는 파트너로서 함께 뛰겠다. 5조4000억원의 자원이 막힘없이 흘러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까지 촘촘히 닿는 그날까지, 정부의 지원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공헌의 퀀텀 점프를 위한 여정에 많은 기업의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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