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호 (사)지구촌 정신문화포럼 대표·대구대 명예교수
◇영광의 굴뚝은 이미 식었다
1970년대 대구는 대한민국 수출의 심장이었다.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섬유 공장의 굴뚝 연기가 하늘을 수놓고, 염색 단지의 불빛이 밤새 꺼지지 않던 그 시절, 대구 아가씨들의 손끝에서 짜진 직물이 태평양을 건너 세계 시장을 누볐다. 그 외화가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고, 대구 시민은 이 나라 산업화의 진정한 주역이었다. 대구는 자랑스러운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 그 굴뚝은 차갑게 식었다. 저임금을 따라 공장들은 동남아시아로 훌쩍 떠났고, 대한민국의 산업지형은 중화학을 넘어 반도체·인공지능·바이오의 첨단산업으로 숨가쁘게 진화하고 있다. 서울은 글로벌 IT 허브로, 인천은 바이오 클러스터로, 광주는 그린에너지 집적지로 저마다 미래의 옷을 갈아입었다. 그 사이 대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지난 30여 년간 대구의 GRDP는 전국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치욕의 세월이 이어졌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행 KTX에 몸을 실었고, 골목상권은 점점 낡아갔으며, 도심의 빈 건물은 해마다 늘어났다. 변화의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대구는 “대구의 의리”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달콤한 위로가 쌓이고 쌓여 오늘의 깊은 침체가 되었다. 변화를 외면한 대가는 이토록 냉정하고 혹독하다.
◇보수의 성채가 미래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대구는 오랫동안 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심장이었다. 한때 그것은 대구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건강한 보수란 전통의 가치를 지키되 시대의 변화에 현명하게 적응하는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守舊)이며, 수구는 반드시 시대의 낙오를 부른다는 것을 역사는 객관적으로 증명해왔다.
지난 수십 년, 대구의 정치는 미래를 향한 담대한 실험보다 기득권의 안락한 우물 속을 선택했다. 국가 예산 배분에서도 핵심 국책사업 유치에서도 대구는 번번이 뒷줄에 섰다. 침묵하는 유권자, 변화를 두려워하는 정치, 혁신을 외면하는 기득권-이 세 가지 악순환이 대구를 30년째 제자리에 묶어두었다.
이제 냉정하게 묻자.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것이 과연 대구의 미래였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득권이었는가. 우리 자녀들이 짐을 싸 고향을 떠나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왜 우리는 같은 선택을 반복해 왔는가? 진정한 보수 정신이란 다음 세대를 위해 낡은 엔진을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에 있다.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대구를 사랑하는 가장 진실한 방식이다.
◇데이터의 수도와 수소·인공태양이 대구의 새벽을 열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두 개의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데이터 경제와 청정에너지 혁명이다. 이 두 물결의 한가운데에 대구가 반드시 서야 한다.
AI 데이터공장은 21세기의 제철소다. 포항에 제철소 하나가 들어서며 경북 일대의 경제 판도가 송두리째 바뀌었듯, 대형 AI 데이터 클러스터는 수천 개의 고급 일자리와 수십 개의 연관 산업을 불러들이는 거대한 경제 생태계다. 수소 경제는 이미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수소 생산·저장·운반·활용의 전 주기 산업 생태계를 대구·경북 광역권에 구축한다면, 그것은 과거 섬유 산업의 영광을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산업 혁명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인류 에너지 문제의 궁극적 해법인 핵융합, 이른바 ‘인공태양’의 전초기지를 대구가 선점해야 한다. 핵융합 상용화의 시대가 2040~2050년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 시점에, 대구가 수소와 핵융합을 두 축으로 하는 미래 에너지 허브가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공장 유치가 아니라 대구 역사 100년을 바꾸는 위대한 대사건이 될 것이다.
오는 6월 3일, 대구 시민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시장과 의원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대구의 향후 30년, 우리 자녀 세대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사적 선택이다. 낡은 구호와 익숙한 얼굴에 다시 한번 손을 들어주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30년의 침체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대구의 청년들이 서울행 KTX에 몸을 싣지 않아도 되는 날, 대구에서 세계적인 AI 기업이 탄생하는 날, 대구의 하늘 아래 수소의 불꽃과 인공태양의 꿈이 함께 타오르는 날, 그 날은 누군가가 선물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대구 시민이 두려움을 내려놓고 변화를 선택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구여, 이제 새 엔진에 시동을 걸 시간이다. 역사는 언제나 용기 있는 자의 편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