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성격의 금과 비트코인이 나란히 급등하는 이례적인 흐름이 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재정에 대한 경계감과 달러 가치 하락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이 화폐가치 변화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자산을 동시에 사들이는 모습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서로 다른 성격의 금과 비트코인이 나란히 급등하는 이례적인 흐름이 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재정에 대한 경계감과 달러 가치 하락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이 화폐가치 변화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자산을 동시에 사들이는 모습이다.
30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빗썸에서 지난 13일 8천900만 원대였던 비트코인은 18일 9천만 원선을 회복한 뒤 상승 속도를 높였다. 20일 1억 원을 돌파했고 25일에는 1억1천만 원까지 넘어섰다. 12일 동안 약 2천100만 원, 24%가량 오른 셈이다. 이후에도 급등분을 대부분 지키며 28일까지 1억1천만 원 안팎에서 거래됐다.
달러 기준으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19일 6만4천 달러 수준이던 비트코인은 25일 장중 8만1천 달러를 웃돌았다. 불과 6일 사이 상승률이 25%를 넘어섰고 이더리움을 비롯한 주요 알트코인도 뒤따라 올랐다.
같은 시기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에도 매수세가 몰렸다. 국내 금 가격은 90만 원을 넘어섰으며 국제 금 시세도 온스당 4천600달러 위로 올라섰다. 위험자산 성격이 강한 비트코인과 안전자산의 대표격인 금이 동시에 강세를 보이는 ‘바벨(Barbell)’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다.
두 자산을 연결하는 고리는 달러에 대한 불안감이다. 미국 재무부가 장기국채 바이백 규모를 회당 최대 20억 달러에서 최소 4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장기금리는 일시적으로 안정을 찾았다가 다시 상승했다. 반면 달러 가치는 3개월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을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로 해석한다. 미국의 국가부채와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달러 구매력까지 약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공급이 제한적이거나 가치저장 기능을 가진 자산으로 자금을 옮기는 투자 전략이다.
금은 전통적으로 물가 상승이나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높지만 최대 발행량이 2천100만 개로 제한돼 있다는 점에서 최근 ‘디지털 금’이라는 성격도 부각되고 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장기채 바이백 확대 방침 이후 미국 정부부채와 달러 가치 희석에 대한 경계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연방준비제도가 정부의 재정정책에 영향을 받는 ‘재정우위’ 가능성까지 부각되면서 금과 비트코인 등 대체 가치저장 수단으로 투자 수요가 이동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는 올해 4월 이후 처음으로 8거래일 연속 자금이 들어왔다.
최재원 키움증권 연구원도 정책 개입이 장기금리 상승을 일시적으로 제어했지만 미국 재정과 정책에 대한 시장 신뢰까지 회복시키지는 못했다고 진단했다. 달러 약세 속 금과 스위스 프랑 등 미국 밖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현상이 최근 디베이스먼트 거래의 특징이라는 분석이다.
공통분모가 달러라면 추가 상승 동력은 자산별로 다르다.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미국의 규제 환경 변화가 투자심리를 자극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8일 토큰 발행과 자금조달에 적용할 기준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가상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CLARITY)법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면서 규제 불확실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홍진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클래리티법 처리 촉구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하이퍼리퀴드 미국 진출 경로 검토 등을 최근 가격 상승 배경으로 지목하며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가 가상자산 가치 재평가 요인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 시장에서는 각국 중앙은행의 매수가 가격을 받치고 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폴란드는 금 82t을 순매입해 가장 많은 물량을 사들였다. 우즈베키스탄 41t, 중국 40t, 카자흐스탄 27t이 뒤를 이었으며 체코와 싱가포르, 칠레, 요르단, 가나 등도 보유량을 확대했다.
투자자들의 금 수요도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 골드바·코인과 ETF 등 투자 목적의 금 수요 비중은 코로나19 이전 29%에서 44%까지 상승했다.
정현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의 역할이 단순 소비재에서 지정학적 위험과 인플레이션, 통화가치 하락에 대응하는 금융자산과 대체통화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준호 기자 b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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