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목표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AI)의 확산은 물가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기대대로 AI가 생산성을 높인다면 같은 양을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고, 물가 상승 압력도 낮아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효과가 언제 나타나느냐다. 최근 잭슨홀 심포지엄에서도 케빈 워시 Fed 의장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는 취임 전 AI가 생산성을 높여 금리를 낮출 여지가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당히 신중해진 태도를 보였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장비 및 무형자산 투자는 최근 1년간 약 9% 증가했고, 올해 자본지출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AI 구축과 관련돼 있다. AI 투자는 빠르게 늘면서 총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AI가 생산성을 얼마나 높일지, 또 그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지금 당장은 AI가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인플레이션을 AI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지정학적 불안, 확장적 재정정책 등 다른 요인도 있다. 다만 AI와 관련해서는 생산성 향상보다 수요를 자극하는 효과가 먼저 나타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얼마 전 국내 데이터를 이용해 AI 도입이 생산성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AI 도입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물가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올랐지만 생산성 향상은 아직 뚜렷하지 않았다. 미래 소득 증가에 대한 기대와 AI 관련 투자는 소비 및 투자를 늘린다.
반면 AI와 같은 혁명적 기술이 경제 전체로 퍼져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기존 조직구조를 AI에 맞춰 재편하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지만 공급 능력 확충에는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중앙은행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AI의 생산성 향상을 미리 전제해서 통화정책을 결정하면 안 된다. 미래의 공급 확대를 기대해 현재의 물가 상승을 가볍게 본다면 통화정책에서 실기할 수 있다.
시차 문제는 금융시장에서도 생긴다. AI가 미래의 생산성과 기업이익을 크게 높일 것이라는 기대는 주가에 빠르게 반영되지만 현금흐름과 생산성은 천천히 늘어난다. 기대가 앞선다고 곧바로 거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산성과 수익이 예상보다 늦게 나타나면 그동안 크게 오른 주가는 상당한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위험은 AI 투자의 자금 조달 방식에서도 발생한다. 영국 중앙은행에 따르면 2025년 들어 AI 관련 기업의 투자 규모가 내부 현금흐름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회사채, 은행대출, 사모대출 등 외부자금의 역할이 커졌다. 주가가 떨어져 담보가치가 낮아지고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기업은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제 투자 실패의 손실은 채권자와 금융회사로 번지며 금융시스템 전반이 위험해질 수 있다.
한국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국내에서도 반도체 중심의 AI 관련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미국과 같은 규모의 투자와 차입은 아직이다. 그 대신 글로벌 AI 투자 붐이 반도체 수출을 통해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기업이익과 투자, 임금을 늘리고 국내 수요를 자극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일 수 있다.
AI 호황이 꺾이면 더 큰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 미국에서 AI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약해지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과 주가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기 시작하면 원화 가치도 떨어진다. 한국에서는 글로벌 AI 기대의 변화가 반도체, 주식시장, 외국인 자금, 환율을 거쳐 충격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
이처럼 미국과 한국의 정책과제는 서로 다르다. 미국 통화당국은 AI 투자에 수반된 부채위험과 물가 문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글로벌 AI 투자 붐이 반도체를 통해 국내 수요와 물가를 얼마나 자극하는지, 기대가 꺾일 때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어떤 충격이 나타나는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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