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월 보덕사 해우소. 영월군청 제공
1882년 세워진 영월 보덕사 해우소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사찰에서 100년 넘게 같은 자리와 모습을 지키며 실제 화장실로 사용돼 온 해우소가 국가지정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전각도, 이름난 보물도 아닌 낡은 뒷간이 문화유산이 된다니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오래 지켜본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우소는 아시다시피 한자로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몸속에 쌓인 것을 비우는 동안 마음속 걱정과 욕심도 함께 내려놓으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에게는 마음의 근심을 제대로 비워낼 해우소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화는 가족에게 쏟아내고, 집에서 생긴 불만은 자동차 경적으로 터뜨립니다. 정치인을 향해 던지지 못한 욕설은 식당 종업원이나 콜센터 상담원에게 날아가기도 합니다.
또 인터넷은 어느새 거대한 해우소가 됐습니다. 문제는 변기 물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남긴 욕설과 조롱이 그대로 쌓이고, 또 다른 사람이 거기에 분노를 보탭니다. 비우러 들어갔다가 남이 버린 오물을 잔뜩 묻혀 나오는 곳이 됐습니다.
비우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청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악성 댓글을 달고는 ‘소신 발언’이라 부르고, 막말을 던지고는 ‘사이다’라고 박수를 칩니다.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그 사이다는 어쩐지 끈적하게 남습니다.
진정한 해우소는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산책길일 수도 있고, 오래된 친구와 나누는 차 한 잔일 수도 있습니다. 일기장이나 운동장, 조용히 울 수 있는 방도 훌륭한 해우소가 될 수 있습니다.
100년 넘게 상처주지 않고 사람들의 근심을 받아낸 보덕사 해우소는 이제 문화유산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누군가의 근심을 덜어준 사람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쏟아낸 사람으로 남을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한번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당신의 해우소는 어떤가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