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허성미 기자] 올해 상반기 대기업들의 자사주 소각이 단기간에 급증했다. 단순한 규모 확대를 넘어 기업 자본 운영 방식 자체가 바뀌는 흐름으로 읽힌다. 자사주를 보유 자산으로 두던 관행에서 벗어나, 소각을 통해 자본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 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이다.
21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공시대상기업집단 73개 그룹(339개 상장사)을 분석한 결과, 올해 1~3월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기업은 60곳으로 집계됐다. 전체 상장사의 약 18%에 해당하는 규모다. 소각 금액은 42조5207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규모(13조2850억원)를 3개월 만에 넘어섰다. 증가액은 29조원을 웃돌고, 증가율은 220%를 상회한다.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상법 개정 이후 자사주 정책이 ‘보유’에서 ‘처리’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된 법은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기존 보유 물량은 1년 6개월 내 소각하도록 규정했다. 예외는 제한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주를 장기간 유지하기보다 활용 방식에 대한 선택을 서둘러야 하는 환경이 됐다.
소각 규모는 일부 대형 기업에 집중됐다. 삼성전자가 14조8994억원으로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고, SK하이닉스가 12조240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두 기업의 소각 금액은 총 27조1394억원으로 전체의 63.8%를 차지한다. 상위 기업이 시장 흐름을 끌어가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자사주 소각이 ‘전면 확산’이라기보다 ‘상위 집중형 재편’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된다.
보유 구조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SK는 보통주 기준 자사주 비율이 24.8%로 가장 높았고, 태광산업과 롯데지주, 미래에셋생명 등도 2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소각이 진행되면서 비중은 점차 낮아지는 흐름이다. 실제 삼천리는 최근 3개월 사이 자사주 비율이 15.56%에서 5.59%로 9.97%포인트 감소했다.
반대로 일부 기업은 자사주 취득을 병행하며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현대지에프홀딩스와 크래프톤, 하이브 등은 같은 기간 자사주를 추가 확보했다. 동일한 제도 환경에서도 기업별 대응이 갈리는 모습이다. 자사주 정책이 일률적으로 움직이기보다 기업의 자본 전략에 따라 다르게 설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사주 소각 확대는 지배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광산업은 총수 일가 지배력이 78.94%에서 54.53%로 낮아졌고, SK 역시 50.21%에서 31.87%로 감소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20% 아래로 내려가는 변화도 확인된다. 삼성전자는 소각 이후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이 20% 미만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자사주 소각이 단순한 주주환원 정책을 넘어 기업 지배구조를 조정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에는 자사주를 전략적 자산으로 보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소각을 통해 자본 효율성과 시장 신뢰를 동시에 고려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변화가 일회성 대응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자사주를 둘러싼 제도 환경이 바뀐 만큼, 기업의 자본 전략도 중장기적으로 재정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자사주 소각 확대는 단순한 수치 증가를 넘어 기업 가치 평가 방식과 지배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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