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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농촌 연구하던 서울 청년, 홍성서 로컬 창업의 새 판을 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업경제학을 공부한 김만이 대표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일하다 농촌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2020년 연고 없던 홍성에 정착해 창업한 그는 현재 로컬 창업가 공동체 ‘집단지성’을 이끌고 있다.

농촌 연구하던 서울 청년, 홍성서 로컬 창업의 새 판을 열다

▲ 젤리스 라운지 마스코트 고양이 ‘젤리’를 안고 웃고 있는 김만이 집단지성 대표. 사진=김영정 기자

[충청투데이 김영정 기자]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업경제학을 공부한 김만이 대표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일하다 농촌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2020년 연고 없던 홍성에 정착해 창업한 그는 현재 로컬 창업가 공동체 ‘집단지성’을 이끌고 있다. 집단지성의 주 무대는 옛 홍성고 인근 원도심 상권인 ‘홍고통’이다. 한때 학생과 주민들로 붐볐지만 학교 이전 이후 상권이 쇠퇴하고 공실이 늘었다. 집단지성은 이곳에 청년 창업가들을 모아 경험과 자원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일종의 ‘길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김 대표를 만나 홍성을 선택한 이유와 지역에서 창업해 살아가는 현실, 집단지성이 만들어진 과정과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연구자의 길은 왜 떠났나.

"서울에서만 살아 농촌과 농업을 책과 논문, 데이터로 배웠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축산 분야 연구를 지원하면서 어느 순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소를 제대로 본 적도, 축산 현장을 충분히 경험한 적도 없는데 한우 시장과 등급별 가격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해외 박사과정을 거쳐 연구원으로 돌아와 교수의 길을 걷는 것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을 모른 채 연구해서는 농업과 농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현장으로 들어갔다."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지역 컨설팅 회사에서 청양 원도심 사업을 약 3년간 맡았다. 방치된 여관을 청년 공간으로 바꾸고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상품도 만들어 팔았다. 처음에는 ‘청양에 청년이 어디 있느냐’, ‘이미 다 해봤다’는 반대가 많았지만 실제로 해보니 가능성이 있었다. 지역에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일도 제대로 부딪치면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결국 회사를 나와 직접 창업하기로 했다."

-홍성에 정착한 이유는.

"창업을 결심하고 기존 인연에 기대기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농업을 좋아했고 철학을 가진 농민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홍성은 유기농업의 오랜 역사와 기반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2020년 7월 아무런 연고가 없던 홍성으로 내려왔다."

▲ 홍성읍 홍고통에 위치한 젤리스 라운지 외부.

-첫 사업은 실패했다고.

"처음에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산물을 모아 대도시 식당 등에 납품하려 했다. 하지만 농민들을 만나보니 수확 인력과 보관 문제 등 현장에서 부딪히는 한계가 분명했다. 현장을 모르고 만든 사업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낙담도 컸지만 첫 번째 해법이 틀렸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 홍성의 유기농산물을 활용한 밀키트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 만든 사업체가 ‘초록코끼리’다. 당시 코로나19로 간편식 시장이 커지고 있었지만 유기농 간편식은 거의 없었다. 2년 차에는 약 2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3년 차에는 약 3억4000만원까지 성장했다. 그런데 사업이 커질수록 지역에서 혼자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한계였나.

"도시에서는 제조와 유통을 외부 업체에 맡길 수 있지만 홍성에서는 관련 인프라가 부족해 사업을 키우려면 공장과 창고부터 직접 갖춰야 했다. ‘더 성장하려면 홍성을 떠나야 하나’라는 고민도 했다. 그러다 홍성의 다른 청년 창업가들과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다. 제조를 잘하는 창업가에게 우리 제품 생산을 맡기고, 우리는 그들의 유통을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사업이 다시 성장했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의 한계도 함께하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다섯 팀 정도가 함께했는데 ‘다섯 팀이 아니라 스무 팀이 모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창업가 마을 형태로 지원하면서 지금의 집단지성으로 확대됐다."

-왜 하필 홍고통이었나.

"창업에서는 문제가 오히려 기회라는 공식이 있다. 홍고통은 과거 번성했던 상권이지만 지금은 공실이 많고 사람이 줄었다. 지역에는 쇠퇴라는 문제지만 창업가에게는 낮은 임대료와 고정비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다. 당시 우리에게는 창업하려는 사람은 있는데 공간이 부족했고, 홍고통에는 공간은 많은데 사람이 없었다. 서로의 필요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홍성군에서도 이곳에 창업가들이 함께 일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인 ‘젤리스 라운지’를 마련해줬다. 지금은 집단지성 창업가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고 협업하는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홍성에서도 창업으로 먹고살 수 있나.

"어떤 사업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지역에서 배후 인구에 의존하는 일반적인 프랜차이즈형 창업은 권하지 않는다. 매장을 찾는 손님만 바라보면 인구가 줄거나 상권의 유행이 바뀔 때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온라인 판매나 기업 간 거래(B2B), 공공기관과의 계약 등 지역 밖에서도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로컬은 비교적 정직한 시장이라고 본다. 도시는 100을 투입해 0이 될 수도, 1000이 될 수도 있지만 로컬은 100을 투입하면 80에서 120 정도는 돌려준다. 단기간에 큰 성공을 바라기보다 꾸준히 쌓는다면 지역에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

-지원금 의존이 크다는 시선도 있다.

"청년들이 큰 지원금을 받아 창업한다고 보는 것은 실제와 차이가 있다. 행안부 청년마을 사업을 통해 창업가에게 직접 지원한 것은 시제품 제작비 200만원과 공간 조성비 300만~400만원 정도다. 이후에는 스스로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 초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창업지원사업도 적극 활용한다. 겨울이면 두세 달 동안 함께 사업계획서를 준비해 정식 공모와 경쟁을 거쳐 사업을 따낸다. 결국 지원금은 시작을 돕는 수단일 뿐이다. 이를 발판으로 2년 안에 손익분기점을 만들고, 지원이 끝난 뒤에도 지역에서 스스로 돈을 벌며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젤리스 라운지 내부.

-올해 ‘유기농 연예기획사’를 추진한다고.

"유기농 연예기획사는 유기농 명인과 농가를 하나의 ‘아티스트’처럼 알리고, 청년들이 이들의 이야기와 농산물을 콘텐츠로 만들어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사업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이야기했느냐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유기농업도 가치와 의미만 어렵게 설명해서는 젊은 세대와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유기농 행사에서 오리 캐릭터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고, 이 경험이 유기농의 가치를 노래와 캐릭터로 풀어낸 ‘오리 아이돌’ 구상까지 이어졌다. 유기농업을 젊은 세대가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만들고 싶다. 누군가는 웃을 수 있지만 나는 진심이다."

-홍고통의 미래를 그린다면.

"청년이 창업을 고민할 때 ‘서울에서 할 것인가, 로컬에서 할 것인가’를 동등한 선택지로 놓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지금까지 창업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서울을 떠올렸다면 앞으로는 지역에서도 충분히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로컬에서 창업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렇다면 홍성부터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으면 좋겠다. 홍고통에 지역 자원을 활용한 브랜드부터 기술 기반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창업가들이 모이고 서로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서울의 성수동처럼 로컬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 그 모델을 홍성에서 만들고 싶다."

김영정 기자 yeongjeong089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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