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차례 임단협 결렬 끝 파업 찬성률 95.52%
임금 넘어 채용·합병까지 노조 사전 합의 요구
글로벌 수주 현장서 공급망 리스크 자처
[프레스나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창사 15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 국면에 들어섰다. 임금 인상 문제를 넘어 인사권과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노조 사전 합의 의무화까지 요구가 확대된 이번 갈등은 회사가 2034년까지 15조원을 투입하는 초격차 투자 전략을 가동하는 시점에 불거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업계에 따르면 29일 오후 6시 마감된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찬성 95.52%(3351표), 반대 4.48%(157표)로 집계됐다. 전체 투표율은 95.38%(3508표)다.
노사는 지난해 12월 23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총 13차례 임단협 교섭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는 기본급 14%대 인상과 영업이익의 20%를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인당 격려금 3000만원, 3년간 자사주 배정, 주 36시간 근무제 도입, 정년 65세 연장도 요구 사항에 포함됐다.
이에 사측은 임금 인상률 6.2%와 기본급의 200%에 해당하는 격려금을 제시했다. 사측이 제시한 6.2%는 삼성전자 등 그룹 주요 계열사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기준으로, 노조 요구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임금보다 더 첨예한 쟁점은 경영권 관련 요구다. 노조는 채용과 승진, 징계, 배치전환 등 인사 제도 운영과 회사의 분할·합병·양도 등의 과정에서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이를 '경영권 침해'로 규정하며 수용 불가 방침으로 맞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특히 '주요 인사 노사 공동 결정' 요구에 대해 "경영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신속한 전략적 판단이 수주 경쟁력을 좌우하는 CDMO 사업에서 경영 의사결정마다 노조 합의를 거쳐야 한다면, 사업 운영 자체가 경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조의 협상 방식도 논란이 됐다. 노조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수주 활동을 벌이고 있던 글로벌 제약·바이오 행사 '디캣 위크(DCAT Week)' 기간에 맞춰 영문 보도자료를 해외에 직접 배포하며 파업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해당 자료에는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고객사들에게 중대한 구조적 공급망 리스크를 초래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파업권은 최후의 수단인데 이번처럼 파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먼저 거론하며 압박하는 방식은 권리 행사라기보다 사실상 손실을 볼모로 한 요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내부 갈등을 수주 현장에 직접 노출시킨 것은 회사 입장에서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배양 공정이 중단되면 해당 배치를 전량 폐기해야 하는 구조여서 일부 인력 이탈만으로도 생산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공급망 안정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점을 감안하면, '파업' 언급 자체가 파트너 선택에서 배제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과 맺은 대규모 수주 계약은 엄격한 납기 준수가 필수적인데, 파업으로 인한 가동 중단은 거액의 위약금은 물론 향후 수주 경쟁력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쟁 환경도 이 시점의 내부 갈등을 용납하기 어렵게 만든다. 글로벌 CDMO 시장에서는 ADC(항체약물접합체)와 CGT(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의약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한편 스위스 론자와 일본 후지필름,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 등이 생산능력 확대와 신규 모달리티 대응에 동시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인천 송도 제2·3바이오캠퍼스 조성과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 공장 인수를 포함해 2034년까지 15조원을 투자하는 중장기 전략을 추진 중이다. 노조의 단기 성과 요구가 투자 여력을 잠식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고용 안정과 기업 가치 모두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는 존 림 대표가 귀국하는 대로 비공식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4월 21일 또는 22일 사업장 집회를 연 뒤 5월 1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4조 5569억원, 영업이익 2조 692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2조원을 돌파한 바 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1위를 향한 투자를 가속해야 할 시점에, 내부 갈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2 바이오캠퍼스 조감도.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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