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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넉넉한 월급 탄탄한 복지, 과연 좋은 회사인가[박찬희의 경영전략]

실리콘밸리의 성공사례가 그 예이고 최근 화제가 된 국내 반도체 회사도 비슷한 면이 있다. 문제는 안정적... 라면 회사에 투자했는데 반도체 사업에 나서는 셈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그야말로 대단한 비전을 보이고...

넉넉한 월급 탄탄한 복지, 과연 좋은 회사인가[박찬희의 경영전략]

“넉넉하고 편안한 회사로 알려지면 그런 따뜻함을 찾는 사람들이 모이니 회사는 ‘복지공동체’로 진화한다. 회사에서 배우고 익혀 내 일을 하려던 사람도 넉넉함에 푸욱 절어서 도전의 의지를 잃는다. 천천히 망하기 딱 좋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월급 많이 주고 넉넉한 유급휴가에 자녀 학비지원까지 복지마저 탄탄한 회사, 임직원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열심히 일하니 더 좋은 회사가 될까? 세상물정 모르는 아둔한 인사관리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다. 당장의 조건이 워낙 좋다보니 버티고 누리려 들고 뭔가 새로운 일에 나서면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공공의 적이 된다. 신규사업을 기획하다 자회사로 발령 나서 고생만 잔뜩 할까 걱정이고, 해외근무는 자녀 시민권 따고 유학비 지원받는 수단이 된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결과로 떼돈을 벌고 임직원도 돈 걱정 안 할만큼 많이 받는다면 얘기가 다르다. 공짜가 아니니 긴장이 살아 있고 남 깎아내리며 꼼수 피울 시간에 제대로 일할 동기가 생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사례가 그 예이고 최근 화제가 된 국내 반도체 회사도 비슷한 면이 있다. 문제는 안정적 환경에서 그리 애쓰지 않아도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경우다. 월급이 많다지만 팔자를 고칠 정도는 못 되고 다소 넉넉한 형편에 회사 비용지출도 무난하니 좋은 차, 비싼 밥이 관행이 되고 결국 소비 수준만 높아진다.

넉넉하고 편안한 회사로 알려지면 그런 따뜻함을 찾는 사람들이 모이니 회사는 ‘복지공동체’로 진화한다. 회사에서 배우고 익혀 내 일을 하려던 사람도 넉넉함에 푸욱 절어서 도전의 의지를 잃는다. 천천히 망하기 딱 좋다. 영원히 넉넉하고 편한 회사는 없으니 어느 순간 싸늘한 현실이 닥치고 편안함에 몸과 마음이 삭아버린 회사공무원은 험한 세상에 내던져진다.

치사하게 직원들 월급 깎으며 고혈을 짜라는 얘기가 아니다. 당장 돈 많이 번다고 주주들 돈으로 펑펑 나눠 쓰는 것도 문제지만 넉넉한 월급과 탄탄한 복지가 기업가치를 키우는 데 방해가 된다면 잘못된 일이다. 제대로 일하면 팔자를 고치고 일하면서 배워서 사업이든 정치든, 하다못해 훈장 일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좋은 회사다.

◆‘평생이 보장된’ 회사의 고민

다른 회사에 비해 월등히 많은 월급을 주고 쉽게 망하지 않는, 어지간하면 잘리지도 않는 ‘평생이 보장된’ 회사들이 제법 있다. 그런데 노곤하게 끼리끼리 누리다 천천히 망하거나 세상이 달라지면 어느 날 갑자기 지위를 잃는다. 1960~70년대 국책은행 직원들은 어지간한 장사로는 벌 수 없는 고액 월급을 받았고 무이자 융자로 땅 짚고 헤엄치는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금융체제가 달라지는 판에서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가진 권한마저 넋놓고 뺏겼다. 나서서 싸울 용맹한 사람들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 싫어서 다른 길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조용히 따뜻하게 살려던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K에너지는 국내 최대의 정유회사로 석유화학과 종합에너지로 사업영역을 넓혀왔다. 가만히 있어도 절대 안 망하고 풍족한데 왜 피곤하게 사느냐는 불만이 회사 곳곳에서 나오지만 최고경영자는 정유 같은 규제산업은 정부의 지배력이 절대적이니 마냥 풍족할 수도 없고 에너지의 미래를 볼 때 확실한 현금흐름이 있을 때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자고 한다. 잘하는 사업에 집중하라는 투자자들의 비판을 ‘미래 비전’으로 설득하고 신규사업에 나서려니 쉽지 않다.

K에너지는 건설사와 해외 석유화학 플랜트 사업에 나섰다. 앞장서 설치면 눈총 받는 고유의 수동적 문화에서 총대 메고 함께 나설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신사업에서 성과를 낸들 회사를 옮기면 즉시 연봉이 절반이 된다. 회사 호적을 파지 않더라도 장기간 해외근무는 기계가 일하는 장치회사에서 소수의 사람들끼리 형성되는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소외되기 딱 좋다. 그나마 자녀를 현지 국제학교에 보내는 혜택이 있지만 대학까지 외국에 보내려면 부담이 엄청나다.

새로운 사업에 나서자는 용기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또한 심란하다. 회삿돈으로 일 벌여서 잘되면 출세하고 안 되면 손해는 회사가 떠안으니 무책임한 야심가들이 나선다. 회사의 힘 있는 실세들은 신사업을 밀어주고 슬쩍 자기 사람들을 꽂아 넣으니 해당 사업의 진짜 전문가는 설 자리가 없다. 한때의 성공 혹은 충성을 자본으로 삼아 잘 모르는 사업을 벌여 폼 잡으니 TV 축구예능 ‘뭉쳐야 찬다’ 꼴이 된다.

야심가는 자기 돈 아니니 마구 일을 벌이고 소심한 사람들은 따뜻한 회사 품에서 누리려고 드는 현상은 제법 좋은 직장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다. 잘사는 나라가 되면 둔하고 게을러져 가진 것 파먹다 망해가는 스토리는 역사책에도 많이 나온다.

사내벤처가 하나의 답일 수 있다. 혁신적 사업 아이디어가 있어도 회사 밖에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익숙한 회사 환경에서 먼저 씨를 뿌리고 일정 단계에 이르면 회사와 구성원이 함께 출자해서 독립 사업으로 만든 후에 상장시킨다. 보너스 여러 번 주고 각종 복지지출로 돈을 뿌리는 대신에 되는 일 하는 사람에게 몰아주고 대신 책임도 지게 만드는 방식이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다.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라면 회사 밖에도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도전적인 구성원이면 애초에 다른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회사의 힘센 사람들이 젓가락 얹고 자기 사람 심는 ‘조직의 현실’이 닥칠 수도 있다.

◆따뜻한 복지에 숨은 사연

경영자는 지금의 풍족함이 피땀 흘려 만들어낸 결과이고 험한 세상에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각성시켜야 한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억울하게 망할 수도 있다고 알려야 한다. 함께 춥고 배고팠던 기억이 있다면 더욱 효과적이다.

기존의 회사 체제에서 구성원들이 해낼 수 없다면 경영자는 회사 밖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회사가 주도해서 신규사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을 할 수도 있지만 자본시장은 부정적이다. 라면 회사에 투자했는데 반도체 사업에 나서는 셈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그야말로 대단한 비전을 보이고 설득해야 한다.

진짜 유능한 경영자는 따뜻함에 길들여진 임직원을 탓하지 않는다. 확실한 사업이라면 경영자 자신의 힘으로 회사 밖에서 새로운 사업에 나설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SMR원전과 바이오 사업을 회사 밖에서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고 있다.

사실 넉넉한 월급과 탄탄한 복지는 사람을 길들여 부리는 방식이다. 독재국가의 권력자는 만만한 머슴 감에게 특권을 나눠주고 바른말 하는 ‘잘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에 얼마 안 되는 보너스를 주고 대주주 일가의 이익에 봉사하면 수백억을 주는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늑한 최고급 통근버스도 알고보면 누군가의 이권사업이고 백화점 상품권이나 호텔 티켓도 마찬가지라면 회사 다녀서 이권 창출에 몸 대주는 셈이다. 그런 이권놀음에 길들여진 회사 권력이 진정한 혁신과 도전에 나설 리가 없다.

사업의 성격상 독과점 구조이거나 정부 보조가 있어 ‘막대한 이익’이 부담되는 경우가 있다. 에너지, 통신이 대표적인데 총비용에 이윤을 얹어 가격을 승인하니 아껴쓰기보다 투자 많이 하고 비용 넉넉히 쓰는 꼼수가 나온다. 기계가 일하니 인건비 비중이 낮아서 월급과 복지 혜택은 아무 부담이 없다. 과거 무역금융 창구로 권세를 누리던 종합상사도 비슷한 경우인데 한 달 월급을 접대비로 쓰곤 했다. 정권이 부실기업 인수, 사업다각화를 압박한 배경이기도 하다.

넉넉한 월급, 탄탄한 복지가 사람들을 노곤하게 만들고 새로운 도전에 장애물이 된다면 ‘동기부여’ 운운하는 경영학 교과서는 볼수록 바보가 되는 독극물인 셈이다. 가난한 회사에서 푼돈 뿌리며 이권 챙기는 꼴은 더 한심하지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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