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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무로 만든 닭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초현대적 기술로 닭을 기성자의 닭처럼 덕(?)을 갖추도록 하려면 닭의 뇌에 칩을 심으면 될 터인데, 현대 기술인 만큼 그 30일을 크게 단축시켜야 하리라. 반대로 기성자의 닭, 곧 목계로...

나무로 만든 닭

살아 있는 싸움닭을 나무로 깎은 닭처럼 훈련한 까닭은?

[최규하 교수의 공문(工文) 세상 48]

따스한 봄날 모처럼 시집간 딸, 아들 식구들까지 모두 모였다.

아내와 둘이 있을 때는 운동장 같던 거실이 꽉 차버렸다. 고맙게도 엄마가 힘들다고 시켜서 먹잔다. 치킨 몇 박스 시켜 둘러앉았다. 작은 손자놈이 집어주는 닭 다리 하나를 집어 들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씹고 맛보고 즐기는데, 겉박스 포장에 그려진 닭과 눈이 마주쳤다. 닭이 닭을 먹어달라고 그려놓은 인간 탐욕의 그림일 뿐인데…그날따라 강한 눈빛에서 나오는 카리스마에 눌려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길은 딴 곳을 향하고 있었다. 먹다 만 닭 다리를 상에 내려놓고 입을 닦는데, 문득 기성자의 ‘나무로 만든 닭, 목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목계처럼 훈련된 닭

기원전 8세기경 주(周)나라의 선왕(宣王)은 뛰어난 싸움닭을 만들어 달라고 당대 최고의 투계 사육사 기성자(記渻子)에게 요청했다.

기성자는 주 선왕을 위하여 싸움닭을 길렀다. 열흘 뒤에 왕이 “닭이 싸울 만해졌는가?”라고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우쭐대고 교만하여 허세를 부립니다.”

다시 열흘 후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다른 닭의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반응이 있습니다.”

또 열흘이 지나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여전히 증오의 눈초리로 노기가 가득합니다.”

또다시 열흘 후 물었다.

“거의 다 됐습니다. 다른 닭이 소리쳐도 동요가 없고 그것을 바라보면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 그 덕(德)이 온전한지라 다른 닭들이 감히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망칩니다.”

《장자(莊子)》 외편(外篇) 〈달생(達生)〉 편​에 나오는 목계(木鷄), 곧 ‘나무로 만들어진 닭’이란 상대의 도발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의연한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는 노자의 가르침 중에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굳센 것을 이긴다(유약승강강 : 柔弱勝剛强).’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표현으로 비록 닭이지만 온전한 덕목을 갖추었다고 말하고 있다.

♤닭이 지닌 다섯 가지 덕

전요(田饒)가 노(魯) 나라 애공(哀公)을 섬겼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루는 전요가 애공에게 “저는 임금을 떠나 홍곡(鴻鵠: 기러기와 고니)처럼 살까 합니다.”라고 하자 애공이 “무슨 말인가?” 하며 되물었다. ​전요가 답하였다.

“왕께서는 닭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니 문(文)이요, 발에 날카로운 며느리발톱이 있어 무(武)이며, 적과 싸우는 용기가 있어 용(勇)이고, 먹을 것을 얻으면 서로 알려주니 인(仁)이며, 때를 일러주므로 신(信)이라, 이처럼 닭은 오덕(五德)을 갖췄습니다.”

이어서 말했다.

“오덕(五德)을 지닌 닭이지만, 왕께서 매일 잡아먹는 것은 닭이 가까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 리를 날아와 왕의 정원과 동산에 물고기와 자라를 잡아먹고 곡식까지 쪼아 먹으며, 덕목조차 없는 홍곡을 중히 여기는 것은, 바로 멀리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홍곡처럼 멀리 떠나 살겠다는 말입니다.”

바로 《한씨외전(韓詩外傳)》 한(漢)나라 때 한영(韓嬰)이 지은 책에 나오는 얘기다. 그후 전요는 연(燕) 나라로 떠나갔고, 재상이 되어 태평성대를 이뤘다. 후에 애공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이게 바로 계유오덕(鷄有五德; 닭의 다섯 가지 德)의 유래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은 가까이 있는 사람은 인재로 인정하지 않고, 멀리서 온 사람들만 귀하게 여겼다. 그게 마땅치 않았던 전요(田饒)는 다른 나라로 가겠다면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토로했다. 누구나 곁에 있는 사람은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조차 당신의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목계가 지닌 의미

목계는 ‘나무로 깎은 닭’이다. 왜 하필 목계를 만들었을까. 궁금하여 Gemini에게 물어보았다. 다음은 이를 정리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닭은 새벽을 알리며 어둠을 몰아내는 영물로 여겨졌는데, 닭의 울음소리는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소리라고 믿어, 닭이 귀신을 쫓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나무로 닭을 깎아 대문이나 집안 곳곳에 두어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벽사(僻邪: 사악한 것을 물리침)’의 목적으로 사용했다. 또 닭은 오행설에서 불(火)과 상극인 물(水)의 기운을 돕는 존재로 해석, 목조 건물이 많았던 과거에 화재를 막아달라는 상징적 의미로 비치하기도 했다. 또 알을 많이 낳는 닭으로 집안의 번창과 자손 번성을 기원하기도 했다. 특히 닭의 볏은 관직(벼슬)을 상징하여, 나무로 정성껏 닭을 깎아 선물함으로써 상대방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는 축복의 의미도 있었다. 전통 혼례 때 신랑이 신부의 집에 기러기를 바치는 전안례에서, 실제 기러기나 닭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 나무로 정교하게 깎은 닭이나 기러기를 사용하여 백년해로와 신의의 징표로 삼았다. 농경 사회에서 가장 손쉬운 재료였던 나무를 깎아 장난감이자 민예품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우리 일상에 너무나도 흔했던 닭에 이처럼 깊은 의미가 있었다니 참으로 새롭다. 앞으로 치킨을 덜 먹되, 그게 부득이하다면 의미를 깊이 새기며 경건한 마음으로 음미해야 하겠다.

전요(田饒)가 비록 오덕(五德)을 말했을지언정 닭의 생김새나 행동거지에 자신의 모습을 비유하여 말한 것일 뿐이다. 실제 닭이 그러한 덕(德)을 지니고 있을 리도 없다. 특히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목계가 실제 닭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라면 그 목계를 보고는 분명 그러한 오덕까지 느꼈으리라. 당연히 감정도 없고, 던져진 자리를 그냥 지키고 있는 목각인형의 닭을 바라보며 인간의 감정이 개입한 탓이다.

우리는 살면서 한두 개의 덕이라도 갖추려 노력해 왔다. 하지만 머리에 관만 쓰면 달라지거나, 또 남의 허물에는 며느리발톱처럼 날카롭게 공격을 퍼부으며 용맹(?)해지는 그런 인두겁을 쓴 짐승 같은 놈들을 겪다 보면 그간 삶에 대한 회한마저 느끼게 된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거실에 목계를 걸어놓고 늘 자신을 비춰봤다고 한다. 목계를 바라보며, 자신이 제일이라는 교만함도 없애고, 바깥의 위협에 흔들리지도 않으며, 상대방의 공격적인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는 목계처럼 묵묵하고 의연한 그분의 자세가 새삼 돋보인다고 하겠다.

♤닭처럼 훈련된 목계

전요는 일정한 시간에 울어주는 닭을 보고 신(信)을 가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닭은 분명 신을 갖추지 못한 거다. 또 기성자는 울어야 할 닭을 소리도 내지 못하는 나무 닭처럼 훈련을 시켰다. 30일 후 기성자의 닭은 실제 싸움터에서 승리했을까. 다른 닭이 다가와도 미동도 없고, 소리쳐도 묵묵히 목계처럼 되어버린 기성자의 닭을 마주한 상대 싸움닭은 어떻게 했을까. 기성자의 의도대로 덕을 갖춘 닭에 놀라 다른 닭들이 황급히 피했을까, 아니면 싸움의 의지조차 전혀 없는 나약한 닭으로 우습게 보았을까. 또 나무로 만든 목계를 싸움닭 앞에 두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장자가 그 후속 이야기를 써두지 않아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기원전 300여 년 전 보통 닭을 기성자는 ‘덕을 갖춘 목계의 닭’으로 만드는 데 꼭 30일이 걸렸다. 보통 범상한 기술이 아니다.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초현대적 기술로 닭을 기성자의 닭처럼 덕(?)을 갖추도록 하려면 닭의 뇌에 칩을 심으면 될 터인데, 현대 기술인 만큼 그 30일을 크게 단축시켜야 하리라. 반대로 기성자의 닭, 곧 목계로 변한 닭을 다시 실전에서 용맹하게 싸우도록 하는 기법도 현대 기술은 동시에 찾아내야만 할 게다.

나무로 만든 닭이 울 때까지

이상진

세월이 멈추겠는가

새월 가고 겨울 오는 건

세월이 가는 길

그리움이 멈추겠는가

마음 가고 마음 오는 건

그리움이 가는 길

마음이 만나는 곳에 집을 지어

나무로 만든 닭이 울 때 까지

세월을 멈추고 마주 보며 살고 싶어라

시인 이상진의 <나무로 만든 닭이 울 때까지>라는 시는 한가지 메시지 곧 나무로 만든 목계가 진짜 닭처럼 울음을 우는 데 알아야 할 방안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먼저 세월을 멈추어야 한다. 극히 어렵기는 하겠지만, 종국에 가더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한다. 그전에, 우리의 마음이 만나는 곳을 찾고는 거기에 집부터 지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 집에 앉아 치킨 한 조각을 베어 물고 마주 보며 닭이 울 때까지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세월이 멈추어졌으니 그다지 지겹지는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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