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나동준 칼럼니스트] 내 목숨을 살리는 치료가, 다른 누군가의 미래를 조금씩 위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다발성골수종 환자인 내게 의료는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다. 정기적인 검사와 항암치료, 감염을 막기 위한 위생관리, 안정적인 병원 환경은 모두 삶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환자의 자리에서 의료를 경험할수록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생존을 지탱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ESG가 기업과 사회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은 지금, 의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병원은 많은 전력과 냉난방, 공조 설비를 필요로 하는 공간이고, 치료 과정에서는 수많은 일회용품과 의료소모품이 사용된다. 물론 이는 환자의 안전과 치료 효과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그렇다고 지속가능성의 논의를 의료 바깥의 문제로만 돌릴 수도 없다. 결국 의료 현장 역시 생존과 환경이라는 두 가치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현실 앞에 서 있다.
이 문제는 환자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 암환자에게 치료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발성골수종 환자는 한 번의 치료로 끝나지 않는다. 외래 진료와 혈액검사, 영상검사, 항암치료, 경과 관찰이 반복되고, 면역력이 약한 시기에는 감염을 막기 위한 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병원을 오가는 이동이 잦아지고, 감염 예방을 위한 보호장비와 소모품 사용도 늘어난다. 환자인 나는 이 현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안다. 그래서 의료의 탄소배출 문제를 말할 때, 그것이 단순히 덜 쓰고 덜 이용하자는 구호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생존을 흔들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의료의 탄소 감축은 환자 개인의 인내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진료 횟수를 무작정 줄이거나, 비용 절감을 이유로 필요한 치료와 검사를 미루는 접근은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위험의 전가에 가깝다. 필요한 것은 환자에게 부담을 더하는 절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혁신이다. 중복 검사를 줄이는 진료 연계, 불필요한 대기와 이동을 줄이는 예약 운영, 지역 내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의료 전달체계,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병원 인프라 개선은 충분히 가능한 변화다. ESG가 의료에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환자에게 덜 치료받으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과 제도가 더 효율적이고 정교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생존권과 지속가능성은 서로 맞바꾸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할 원칙이다. 환자의 생존권은 어떤 경우에도 후퇴할 수 없는 의료의 출발점이다. 동시에 지속가능성 역시 미래 세대의 건강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면서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를 최우선에 두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병원 운영과 조달, 시설 관리와 진료 체계 전반에 지속가능성의 기준을 반영하는 방향은 충분히 가능하다. 생존권과 지속가능성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더 나은 의료를 위해 함께 세워야 할 두 축이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환자의 생명을 지킬 것인가, 환경을 지킬 것인가를 놓고 하나를 택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더 근본적이다. 생명을 살리는 의료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만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환자의 생존권을 조금도 후퇴시키지 않으면서 더 책임 있고 지속가능한 체계로 바꿔낼 것인지의 문제다. 다발성골수종 환자인 내게 치료는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준비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렇기에 의료의 지속가능성은 환자에게 덜 이용하라고 요구하는 언어가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이며 더 책임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사회의 약속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 불편한 질문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환경의 비용으로만 계산할 것인가. 아니면 생존율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지키는 새로운 의료의 기준을 만들어갈 것인가.
칼럼니스트 프로필
나동준 칼럼니스트는 디지털전환교육원 수석연구원·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 시민중심 ESG협회 수석교수이사로 활동하며 생성형 AI와 사회복지 디지털 전환의 접점을 개척하는 혁신가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KAC 공인코치, 경영지도사(인사조직관리), 구글공인교육전문가와 구글트레이너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인공지능AI 활용 전략부터 ESG 경영, 스마트워크, 조직 활성화, 감정경영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강의를 진행중이다. 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50플러스센터, 국내외 대학·복지기관, 각종 협회 및 기업 현장을 무대로, 맞춤형 솔루션과 실전형 워크숍으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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