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

[나는 청년입니다] 정명진 봉화청년목공소 대표, 회계사 꿈꾸다 목수 변신…“내 손으로 만든 보람 커”

과거의 소비는 유행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상품을 선택하고,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공간을 꾸미며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맞추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코로나 계기 비대면 직업 모색

시골 생활 꿈꾸며 봉화로 이사

지인 따라 건축일…4년간 경험

일할수록 매료돼 전문교육 수료

정명진 대표

◇취향경제, ‘나다움’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

과거의 소비는 유행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상품을 선택하고,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공간을 꾸미며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맞추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가치관과 감각에 맞는 물건을 찾고, 가격과 기능뿐 아니라 소재와 제작 방식,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까지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 개인의 취향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시장으로 모으는 ‘취향경제’의 시대다.

나무도 하나의 취향이 될 수 있다. 나무의 질감과 향, 자연 소재가 주는 따뜻함,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목공은 완성된 제품을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직접 만들고 경험하는 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에는 새로운 일이 생겨난다. 경북 봉화에서 목공소를 운영하는 정명진 대표 역시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다루는 기술을 익히며 목공을 좋아하게 됐고, 이제는 그 기술을 바탕으로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역의 산림자원을 연결하고 있다. 생활용품과 교육용 키트를 만들고 목공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며, 때로는 사람들의 삶이 머무는 집을 짓는다. 최근에는 산불 피해목에 새로운 쓰임을 더하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나는 청년입니다’의 이번 주인공 정명진 봉화청년목공소 대표에게 목공소는 나무를 가공하는 작업장이면서 다양한 취향과 필요가 만나는 곳이다. 일을 하며 좋아하게 된 나무는 이제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봉화의 자원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상품과 경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일에 담고, 그 일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이어주는 것. 정 대표가 봉화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취향경제의 모습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속도로

정명진 대표는 자신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나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두 자녀의 아빠”라고 답했다. 목수나 사업가보다 아빠라는 말을 먼저 꺼낸 데에는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우선순위가 담겨 있다. 1990년생인 그는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봉화에서 살아간다. 주문이 들어오면 목공소에서 제품을 만들고, 일을 마치면 가족과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낸다.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며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지금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봉화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건 어렵다기보다 재미있어요. 자영업을 하니까 시간을 옮길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과 밥을 먹고 같이 부대낄 수 있거든요. 저희 부부는 둘 다 가족 안에서 행복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 수 있다는 게 지금은 굉장히 중요해요.”

두 사람에게 봉화에서의 삶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하는 공간과 가족의 삶이 가까이 있고, 자녀가 성장하는 시간을 곁에서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공소에서는 새집 만들기 교육키트부터 키링과 책갈피, 도마, 캠핑체어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지난해에는 같은 마을 주민의 집을 직접 짓기도 했다. 오가며 나누던 대화가 집을 짓는 일로 이어졌고, 그는 “아버지 집을 지어드린다는 마음으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것을 누군가가 선택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순간에는 일의 의미도 달라진다. “판매라는 게 단순히 돈과 물건을 주고받는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만든 것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가치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제대로 만들고, 그 가치를 인정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인구 2만8천여 명의 봉화는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와 기회의 폭이 대도시만큼 넓지 않다. 정 대표는 이곳에 정착하면서 일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직접 만들어갔다. 지역 청년협의체 활동을 시작한 것도 지역 사람들을 더 알고 싶어서였다. 외지인으로 정착한 만큼 자신도 이곳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처음에는 솔직히 사람들을 많이 알고 싶었어요. 외지인이니까 지역 안에서 관계를 만들고 싶었던 게 컸죠. 그런데 활동하다 보니까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걸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지역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작한 활동은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 봉화는 그에게 가족과 함께 살고, 자신의 일을 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삶의 터전이다.

목공 작업을 하고 있는 정명진 봉화청년목공소 대표.

한국임업진흥원 프로그램 참여

봉화청년목공소 설립까지 착착

키트·도마 등 다양한 제품 제작

같은 마을 주민 집 지어주기도

◇회계사 꿈꾸던 청년, 나무 앞에 서다

지금은 매일 나무를 만지는 정 대표지만, 봉화에 오기 전까지 그의 삶에서 목공은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공무원을 꿈꿨고, 이후 해외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며 국제공인회계사 자격을 준비했다. 세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선택한 길이었다. 다만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일은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어린 시절 레고와 프라모델을 즐겼고, 완성된 결과물보다 고민하고 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흥미를 느꼈다.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만드는 동안 고민하고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된 뒤에는 회계사 공부를 이어가며 영어를 가르쳤다. 삶의 방향이 달라진 계기는 코로나19였다. 사람을 만나 가르치는 일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마침 이전부터 시골에서 살아보는 삶을 생각해왔고, 2020년 봉화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봉화에 와서 처음 시작한 일은 목조주택을 짓는 일이었다. 지인을 따라 현장에 나갔다가 건축 일을 시작했고, 약 4년간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자신의 손과 기술로 무언가를 완성하고, 그 결과에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제대로만 지으면 그만큼의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그게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일을 할수록 더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패시브하우스 공법을 공부하고 전문교육을 받으며 집을 짓고 나무를 다루는 기술을 익혔다.

목공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국임업진흥원의 산림일자리 프로그램이었다. 지역 청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 경험이 봉화청년목공소로 이어졌다. 첫 주문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의뢰한 새집 만들기 키트였다. 이후 청년브랜드 관련 지원사업 등에 참여하며 교육용 키트와 생활용품을 제작했고, 목공소에서 할 수 있는 일도 하나씩 늘어났다.

처음부터 목수를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나무를 만지는 시간은 어느새 그의 일이 됐다. “목공이 원래 제 취미였던 건 아니에요. 먹고살기 위해 하다 보니 충분히 좋아하게 된 일이죠.” 좋아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된 것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배우고 기술을 쌓는 동안 좋아하는 일이 된 셈이다. 회계사를 준비했던 청년이 봉화에서 목조주택을 짓고 목공소를 운영하기까지, 정 대표의 진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여러 번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직접 해보고 배우며 쌓은 경험은 지금 나무를 다루는 기술의 밑바탕이 됐다.

청년협의체 활동 정착 기반 다져

산불 피해목 재활용 가능성 모색

“가치 인정 받는 삶에 큰 보람

나무 이면 가치 만들어낼 것”

◇나무의 새로운 쓰임에서 지역의 가능성을 찾다

정 대표의 앞으로의 계획도 목공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을 더 깊게 다지고, 목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넓혀갈 생각이다. “돈만 버는 목공소보다는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목공소였으면 좋겠어요.”

최근에는 산불 피해목을 활용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나무를 제품으로 만들고 새로운 판로를 찾는 일이다. 버려질 수 있는 자원에 목공 기술을 더해 다시 쓰임을 만드는 만큼 그가 말한 ‘그 이상의 가치’와도 연결된다. “10년 뒤에도 나무를 만지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그때는 산불 피해목의 판로를 개척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나무를 만지는 일에는 그 이면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 대표는 산불 피해목에서도 자신의 기술을 통해 새로운 쓰임과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봉화에 더 많은 청년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청년들이 많이 들어와야 봉화에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정 대표가 봉화의 산림자원에서 자신의 일을 찾았듯, 지역의 자원에 청년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새로운 일도 만들어질 수 있다.

성공에 대한 기준을 묻자 “내가 스스로 행복한가가 중요해요”라고 답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했다. 자신이 선택한 지역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게 된 일을 오래 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삶이다.

취향경제는 어쩌면 이런 작은 연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기술에 좋아하는 마음이 더해지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면서 하나의 일이 만들어진다. 정명진 대표에게 그 매개는 나무다. 봉화의 나무에 자신의 기술을 더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자신의 일을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취향은 일이 되고, 일은 그가 원하는 삶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 교육학박사)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