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동화과 전공 머물지 않고
여러 기능사 자격증만 7개 취득
졸업 후 곧바로 방산업체 취업
“업무 현장서 기술의 발전 확인
계속 배우는 사람이 멀리갈 것”
마이스터고 졸업 후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박예성 씨.
◇마이스터고, 지역에서 길을 배우는 곳
요즘 청소년들은 빠르게 진로를 정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성장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서둘러 이력과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그렇게 단순한 속도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오래 해낼 수 있는지는 실제 경험 속에서 또렷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청년에게는 먼저 현장을 경험하고 몸으로 부딪치며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필자는 여러 청년을 인터뷰해 오며 앞으로 인공지능이 일상과 산업 전반에 더 깊숙이 들어오는 사회일수록 이런 경험의 시간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어도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일은 끝내 사람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스터고는 지역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과 지역 산업을 구체적으로 연결해 보는 실제적 교육의 장이다. 교실 안의 배움은 현장과 이어지고, 직업교육은 학생의 진로 선택 속에서 보다 현실적인 길로 자리를 잡는다. 이번 「나는 청년입니다」의 주인공은 대구일마이스터고를 졸업한 스물여섯 청년 박예성 씨다. 화려한 말보다 묵묵히 쌓아온 하루와 성실하게 지나온 시간으로 자신을 보여 준 사람이다. 지금의 박예성 씨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도 결국 그 시간의 결이다.
마이스터고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학교가 학생의 진로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대구일마이스터고를 이끄는 김경일 교장선생님은 “취업 이후에도 성장을 이어나가는 모습이야말로 마이스터고 교육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학생의 진로를 취업이라는 한 시점에만 두지 않고, 그 이후의 삶과 성장까지 함께 바라보려는 교육자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취업이 또 다른 배움의 출발점이 되고, 지역의 학교가 학생 한 사람의 첫 선택 이후까지 함께 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예성 씨의 삶은 그 교육철학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선택 이후의 태도가 만든 성장
박예성 씨는 칠곡에서 초중학교를 다닌 뒤 대구일마이스터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3학년 무렵까지도 또래 친구들처럼 인문계 진학을 고민했다고 한다. 특별히 다른 길을 오래 준비했다기보다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익숙한 선택지 앞에서 흔들리던 시간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그때 부모님이 먼저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대학 진학만 바라보기보다 먼저 기술을 배우고 현장을 경험한 뒤 다시 공부하는 길도 있다는 조언이었다. 그 말은 박예성 씨에게 오래 남았다. 박예성 씨는 그 시절을 이렇게 돌아봤다. “중학교 때는 저도 친구들처럼 인문계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꼭 남들 가는 길만 볼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요. 먼저 기술을 배우고 일을 해보면서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찾는 것도 괜찮다고 하셨죠.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마이스터고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저한테 맞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 선택 이후의 시간이다. 박예성 씨는 중학교 시절 자신의 성적에 대해 “중간쯤 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꾸밈없는 말이었고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그런데 대구일마이스터고에 진학한 뒤에는 학교생활에 더욱 성실하게 임했고 배움의 방향도 점차 또렷해졌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스스로 받아들인 뒤부터 태도와 집중력이 함께 달라진 것이다. 진로는 어느 순간의 선택보다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박예성 씨는 그 사실을 삶으로 증명해 온 사람이다. 그 변화에 대해서도 박예성 씨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대단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정한 길이었으니까 책임지고 싶었어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배우자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말은 실제 결과로 이어졌다. 생산자동화과에 재학하면서도 전공 안에만 머물지 않고 전기기능사, 용접기능사, 설비보전기능사, 공유압기능사, 생산자동화기능사, 전자계산기기능사, 전자기기기능사 등 여러 분야의 기능사 자격증 7개를 취득했다. 더 많이 배워 두는 일이 결국 자신의 가능성을 넓혀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군 복무 이후 전문성 강화 다짐
대학·대학원서 AI 분야로 확장
현재 AI 엔지니어 꿈꾸며 열공
가족·선생님 “잘할 거야” 지지
선택 뒷받침하는 태도 인상적
그 시간은 졸업과 동시에 더 현실적인 무대 위로 이어졌다. 박예성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지역기업 평화이엔지에 취업했다. 방산업체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꾸준히 성장해 왔다. 군생활도 그 흐름 안에서 이어갈 수 있었다. 취업은 끝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시작이었다. 박예성 씨는 이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평화이엔지에 취업했어요. 처음에는 눈앞의 일을 잘해내는 게 가장 중요했죠. 그런데 현장에서 계속 일하다 보니까 기술은 계속 바뀌고 있고 저도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군생활도 그 흐름 안에서 이어졌고요. 그러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공부를 더 해야 할지가 점점 분명해졌어요.” 그렇게 현장은 다시 공부의 이유가 되었다.
박예성 씨는 일과 배움을 함께 이어가며 전문학사와 학사 과정을 밟았고 금오공과대학교를 졸업했다. 지금은 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국방인공지능공학과 석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쌓일수록 공부의 필요성도 더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산업과 현장을 이해하면서 인공지능까지 다룰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꿈도 그 과정에서 짙어졌다. 그 포부를 묻자 박예성 씨는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결국 계속 배우는 사람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냥 기술을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이런 기술이 필요한지까지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이어 왔고 지금은 국방인공지능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AI를 다룰 수 있는 엔지니어로 성장하고 싶어요.”
이 대목에서 박예성 씨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자기 길을 넓혀 온 청년으로 읽힌다.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일하며 성장해 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공부의 길로 나아간 사람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배우고 경험하면서 자기 길을 점점 더 분명하게 만들어 온 시간은 그 자체로 깊은 설득력을 지닌다. 집안의 분위기도 그런 태도를 든든하게 받쳐 주었다. 동생들 역시 같은 학교를 거쳐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다.
부모님은 먼저 걸어간 자녀의 과정을 지켜보며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했고, 아이에게 맞는 길을 함께 고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선택 이후의 시간까지 믿고 응원해 주었다. 누구나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익숙한 기준보다 아이의 성향과 가능성을 먼저 살핀 부모의 시선, 그리고 그 믿음에 응답하듯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자녀들의 시간이 겹쳐 지금의 삶이 만들어졌다.
◇가족과 학교가 함께 키운 한 사람
박예성 씨의 성장 뒤에는 가족이 건네준 삶의 결이 배어 있다. 특히 할아버지는 집안에서 ‘맥가이버’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손재주가 좋았고, 생활 속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고 손보는 데 익숙한 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란 박예성 씨는 자연스럽게 손으로 익히고 직접 해내는 감각을 배워 갔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도 그 과정에서 함께 자라났다. 훗날 마이스터고를 선택한 배경에도 이런 생활 속 경험과 익숙한 감각이 밑바탕으로 스며 있었을 것이다.
그 길목에서 만난 대구일마이스터고 이희자 선생님의 존재도 컸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학생의 마음을 읽고 가능성을 믿어 주는 마이스터고 교사를 만난다는 것은 오래 남는 힘이 된다. 박예성 씨에게 이희자 선생님은 바로 그런 분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감사의 마음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희자 선생님도 박예성 씨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예성이는 화려하게 앞에 나서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맡은 일은 늘 꾸준히 해냈고 한 번 마음먹은 일은 쉽게 놓지 않았어요. 조용한 편이었지만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학생이어서 더 믿음이 갔지요.” 이 말은 박예성 씨가 어떤 태도로 자신의 시간을 쌓아 왔는지를 잘 보여 준다. 정직과 성실은 한 번의 성과로 설명되기보다 오래 지켜본 시간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신뢰는 바로 그런 태도 위에서 자라난다.
여기에 부모님의 지지와 김경일 교장선생님의 교육 철학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학생의 첫 선택을 응원해 준 가정, 가능성을 먼저 알아봐 준 교사, 취업 이후의 성장까지 함께 바라봐 준 학교, 그리고 배움이 이어질 수 있는 지역기업의 자리까지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마음을 모았기에 지금의 박예성 씨가 더욱 단단하게 자라날 수 있었다. 그래서 박예성 씨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성공담을 넘어 더 따뜻한 울림으로 남는다. 지역에서 자란 한 청년이 가족과 학교, 지역사회의 응원 속에서 자기 길을 찾아가고, 그 길 위에서 다시 성장해 가는 모습이야말로 우리 지역이 품고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박예성 씨의 삶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키우고, 그 믿음이 한 사람의 미래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조용히 전해 주고 있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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