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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는 청년입니다-박미나 농업회사법인 보름 대표]플로리스트서 라이프 가드너로…복제불가 경험 선사

청년의 경력은 하나의 직업이나 조직 안에서만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청년입니다’에서는 청도 맘프러너(Mom-preneur)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7명의 청년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다시 연결해 새로운 일과 직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美 토니어워즈 갈라파티 참여

플랜테리어·정원·도시농업 등

작업 영역의 확장·변화 직면

아이에 자연 선물 위해 청도行

땅 찾고 시설 기반 다지기 2년

꽃-농업 전혀 달라 ‘열공모드’

식물 매개로 일상의 취향 제안

청도 자원·자연 콘텐츠로 제작

정원 대하듯 삶 가꾸도록 지원

박미나 보름(주) 대표

청년의 경력은 하나의 직업이나 조직 안에서만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청년입니다’에서는 청도 맘프러너(Mom-preneur)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7명의 청년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다시 연결해 새로운 일과 직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직업이 분화하는 시대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다른 곳에서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경험과 공간,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함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박미나 대표의 지난 13년은 그 변화를 보여준다. 2013년 대구에서 플라워스튜디오를 시작했을 당시 박 대표의 사업은 꽃이라는 상품과 자신의 기술, 노동을 판매하는 구조에 가까웠다. 직접 꽃을 고르고 손질하고 디자인한 만큼 자신의 시간과 노동이 곧 매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박 대표가 청도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사업의 중심에는 꽃 한 송이나 작업시간만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청도의 자연과 계절, 농장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시간과 관계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놓거나 똑같이 복제하기 어려운 지역의 자연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매출이 꽃이라는 상품과 박 대표의 기술과 노동에서 만들어졌다면, 지금은 청도라는 대체 불가능한 공간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험과 콘텐츠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있다.

그 변화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도시에서 오랫동안 꽃과 공간을 다뤄온 박 대표에게 농업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땅을 구하고 농장을 조성하고 자금을 마련하는 일까지 하나씩 배워가야 했고, 정부의 지원방향과 자금 배정 방식이 달라지면서 이미 세워둔 사업계획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박 대표는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꽃을 다루던 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이 되다

박미나 대표의 출발점은 꽃이었다. 꽃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만났고, 생일과 기념일, 결혼과 프로포즈처럼 꽃이 필요한 순간마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과 마주했다. 프로포즈를 위한 꽃을 주문받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상대가 어떤 색과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꽃을 언제 어디에서 건넬 것인지까지 물었다. 같은 꽃을 사용하더라도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색과 형태, 구성이 달라졌다. 박 대표가 플로리스트의 일을 ‘커스터마이징의 대표적인 아트’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정답은 없어요. 취향만 있을 뿐이에요.”

사람의 취향을 읽는 감각은 현장에서 쌓였다. 플라워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새벽 꽃시장을 찾았고, 가져온 꽃을 물올림하고 손질하며 상태를 관리했다. 웨딩과 대형 공간 작업이 이어질 때는 며칠 전부터 준비해 밤과 새벽을 오가며 현장을 완성했다. 화예연출을 공부하며 백화점 명품매장의 화훼디스플레이와 VIP 화훼상품, 웨딩플라워 등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고, 2017년에는 뉴욕 IVIE JOY FLOWERS에서 토니어워즈 갈라파티 작업에 참여했다. 이후 서울의 웨딩데코레이션 현장과 대구지역 호텔의 전담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그의 시선도 꽃 한 송이에서 공간 전체로 넓어졌다.

2018년부터는 실내 플랜테리어와 정원 조성으로 작업 영역을 확장했다. 사옥과 대학, 학교, 카페, 지역공간 등으로 현장이 넓어졌고, 화훼장식에서 조경과 도시농업, 치유농업, 퍼머컬처까지 공부도 이어갔다. 꽃을 다루며 시작한 일은 사람의 취향을 읽는 일로, 다시 사람이 머무는 공간과 경험을 설계하는 일로 이어졌다. 일의 범위가 넓어지는 동안 박 대표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기준도 함께 달라지고 있었다.

◇엄마가 되며 삶과 일의 기준도 달라졌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아이가 있었다. 박미나 대표는 엄마가 되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의 방식과 삶의 속도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밤과 새벽을 오가며 일했고, 새로운 현장이 생기면 배우고 경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박 대표에게 출산과 육아는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오래 일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 “아이를 낳고 나니까 제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하게 됐어요. 아이에게도 제가 좋아했던 자연의 감각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고요.”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 안에서 일과 가족을 함께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이 중요해졌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력과 전문성을 지속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찾고 싶었다. 그 고민은 자연스럽게 도시 밖의 삶으로 향했다. “자연이 좋아서 귀농했고 아이도 여기에서 키우고 있어요. 농장도 제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청도에서 새로운 기반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는 땅을 찾고 농장을 조성하며 시설과 사업 기반을 하나씩 만들어가야 했고, 그 과정에만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청년후계농으로 선정된 뒤 시설 확충을 위해 정책자금을 준비했지만 예산 소진과 배정 방식 변화로 필요한 시기에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미 지하수 관정과 성토, 모종 확보 등에 비용을 투입한 상황에서 계획을 여러 차례 조정해야 했다.

더 어려웠던 것은 농업의 시간이 자금 사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계절에 맞춰 땅을 준비하고 식물을 심어야 했고, 시설을 갖추는 시기를 놓치면 다음 농사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정부의 지원방향과 자금운영 방식이 달라지면서 이미 투입한 비용과 앞으로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박 대표에게 귀농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선택인 동시에 땅과 계절의 시간에 맞춰 사업을 지속해야 하는 현실적인 창업의 과정이었다.

“꽃과 식물을 오래 다뤄왔으니 농업도 어느 정도는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전혀 다른 영역이더라고요. 땅을 구하는 일부터 시설과 자금까지 새롭게 배워야 할 게 정말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박 대표가 다시 붙잡은 것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경험이었다. 농업의 방식은 낯설었지만 식물을 이해하고, 공간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사람이 무엇을 느낄지 생각하는 일은 오랫동안 해온 일이었다. 청도로 옮긴 뒤 박 대표가 만들고 싶었던 것도 단순한 생산농장이 아니라 아이가 맨발로 흙을 밟고 뛰어놀고, 자신 역시 자연 속에서 오래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린부츠, 자연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다

그렇게 박미나 대표가 청도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공간이 ‘그린부츠(GREEN BOOTS)’다. 꽃과 식물을 다뤄온 경험, 공간을 구성해 온 감각, 엄마가 된 이후 달라진 삶의 기준이 지금 이곳에서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그린부츠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꽃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농장이 아니다. 청도의 자연과 계절을 직접 경험하고, 꽃과 식물을 매개로 사람들이 머물고 대화하며 서로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계절꽃과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팜투테이블 프로그램, 자연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함께 구상하고 있다.

박 대표가 오랫동안 꽃을 통해 해온 일도 결국 사람의 마음과 취향을 읽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꽃을 고르고, 그 사람이 머물 공간을 구성하던 경험은 이제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꽃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다면, 지금은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연을 만나고 또 서로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 대표에게 그린부츠는 자신이 꽃과 자연, 사람을 통해 받아온 좋은 경험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린부츠에서 중요한 자원은 농장에서 생산되는 작물만이 아니다. 청도의 햇빛과 바람,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과 풍경,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여기에 지역의 농산물과 식재료, 역사와 문화자원을 더하면 농장 밖에 있던 청도의 자원도 지금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래서 박 대표의 일을 더 이상 플로리스트라는 하나의 직업명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꽃과 식물을 이해하고, 공간을 구성하며, 자연과 지역의 자원을 콘텐츠로 바꾸고, 그 안에서 사람의 경험과 관계를 설계하는 사람. 그동안 흩어져 있던 경력과 관심이 한곳에 모이면서 박 대표의 일에도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졌다. ‘라이프 가드너(Life Gardener).’ 정원을 가꾸듯 사람의 삶과 공간, 관계와 경험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변화의 속도와 복잡성이 커질수록 인공지능이 어떤 직업을 대체할지를 걱정하기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기술을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다시 연결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진다. 박미나 대표는 지금 자신이 걸어온 시간 속에서 상상해 온 삶과 일의 모습을 ‘그린부츠(GREEN BOOTS)’라는 공간에 하나씩 구현해가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을 새로운 사업으로 연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음 일을 만들어가는 박 대표의 한걸음 한걸음은 앞으로의 경력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도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축적된 경험이 시대와 지역의 새로운 필요를 만날 때 직업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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