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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희철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지역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 주력”

1990년 문을 연 대구문화예술회관(이하 회관)은 오랫동안 대구 문화예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리고 대구미술관이 잇따라 개관하며 공연과 전시 기능이 전문기관으로 세분화되면서, 회관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대구문화예술회관 김희철 관장

1990년 문을 연 대구문화예술회관(이하 회관)은 오랫동안 대구 문화예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리고 대구미술관이 잇따라 개관하며 공연과 전시 기능이 전문기관으로 세분화되면서, 회관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방식의 다변화, 문화생태계 조성에 대한 요구가 커졌지만, 회관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했다.

2022년 12월에 부임한 김희철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이 회관에 몸을 담으면서 던진 질문은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맞춰졌다. 그것은 콘텐츠 확립 이전에 시스템 체계부터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충무아트센터와 세종문화회관, 국립정동극장 등에서 수많은 창작공연을 제작해 온 공연예술계의 대표적인 프로듀서인 그는 공연 제작과 극장 운영, 예술행정을 두루 경험한 현장 전문가였고, 그의 화려한 경력은 부임 후 회관의 당면과제로 체질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 도출로 이어졌다.

◇ 공공문화기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다

그가 취임과 동시에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문화기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이 질문은 회관의 수장으로 일하는 내내 그를 따라 다녔다. “공연 몇 편 만드는 것보다 앞으로 문화예술회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프로그램보다 시스템에, 행사보다 철학에 맞춰졌고, 변화에 대한 열정은 기본을 다시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주차장 시스템 개선이었다. 취임 당시 회관 주차장은 공연장을 찾은 시민보다 공원을 이용하거나 인근 주민들이 장기 주차하는 차량으로 더 붐볐다. 공연이 있는 날, 정작 관람객들은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불편을 겪어야 했다. 김 관장에게 주차장 문제는 공공문화기관의 철학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그는 적지 않은 반발을 감수하면서 주차 차단기를 설치하고 장기 주차와 불법주차를 정리했다. “시민이 먼저이고, 서비스가 먼저이며, 공공기관은 시민에게 신뢰를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같은 철학은 조직 운영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부임 당시 회관은 예술단 운영과 노사 관계, 예술감독의 역할 등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그로 인한 갈등은 반복됐고, 조직은 안정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김 관장은 단기간에 성과를 만드는 대신 원칙을 세우는 데 집중했다. 예술감독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노사 간 소통 구조를 다시 만들었다. 서로의 의견은 충분히 듣되 기관이 지켜야 할 기준만큼은 분명하게 유지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문제시됐던 사안들이 하나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그는 “문화예술회관이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이 먼저 안정돼야 한다”고 거듭 피력했다. “기본과 원칙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2026 창작 초연 뮤지컬 ‘피아노의 숲’ 출연자들과 함께 한 김희철 관장(앞줄 중앙) 모습. 대구문화예술회관 제공

◇ ‘창작 전초기지’를 꿈꾸다…공연장이 아닌 문화 플랫폼으로

조직이 안정을 찾아가자 또 하나의 질문인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앞으로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차올랐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회관을 ‘공연을 소비하는 공간’에서 ‘지역 문화생태계를 만들어가는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회관에서 진행되는 사업들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봤다. 그 첫째가 지역 문화예술계의 생태계 만드는 일이었다. 지역 예술인을 위한 공연과 전시, 지원사업은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개별 사업으로 흩어져 있었고 시민들에게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되지 못했다. 공연은 공연대로, 전시는 전시대로 운영됐고, 각각의 사업을 관통하는 정체성은 희미했다.

김 관장은 공공문화기관의 핵심 역할로 “지역의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런 철학 아래 흩어져 있던 사업들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DAC 스프링 아트 페스티벌’이다. 공연장이 가장 한산한 시기인 2월부터 4월을 오히려 지역 예술인들의 축제로 바꾸자는 발상이었다. 지원사업 결과를 기다리느라 공연이 줄어드는 시기를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성악협회의 갈라콘서트, 원로연극제, 지역 오케스트라 공연, 청년예술가 프로젝트 등 기존에 따로 운영되던 프로그램들이 하나의 브랜드 아래 모였다. “지역 예술인들이 성장해야 도시의 문화 브랜드로 성장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이런 철학은 공연 제작 방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대구를 트라이아웃(Try-out) 전초기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서울 공연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그는 창작뮤지컬 제작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요즘 대형 창작뮤지컬 한 편을 무대에 올리려면 적게는 50억 원, 많게는 100억 원이 투입된다. 그만큼 위험도 크다.

그 경험은 김 관장에게 하나의 확신을 안겨줬다. 대구는 서울과 같은 시장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 대신 서울이 가장 필요로 하는 역할을 맡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해답이 바로 ‘트라이아웃’ 시스템이다.

트라이아웃은 정식 공연에 앞서 소규모로 작품을 먼저 무대에 올려 관객과 전문가의 평가를 받고 대본과 음악, 연출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김 관장은 이 과정을 대구문화예술회관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억 원 규모로 먼저 공연해 보면 이 작품이 계속 갈 수 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음악과 대본은 어떤 부분을 손봐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회관이 하게 된다면 창작자는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제작사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대구는 새로운 작품이 가장 먼저 태어나는 도시가 된다. 그렇게 되면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창작 전초기지’로 부상하게 된다. 서울에서 완성된 공연을 사 오는 공연장이 아니라 전국의 창작자들이 찾아와 작품을 시험하고 성장시키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취임 이후 그는 국립극단과 국립발레단, 국립창극단, 국립정동극장 등 주요 국립예술단체들과 잇달아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공동 제작을 통해 작품 개발 단계부터 함께 참여하고, 대구에서 초연한 뒤 서울과 전국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제작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립발레단과 함께한 ‘킬리안 프로젝트’다. 작품은 대구에서 먼저 관객을 만난 뒤 서울 LG아트센터 무대로 이어졌다. 국립정동극장의 ‘적벽’, 국립창극단과의 공동 제작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최근 공연한 창작뮤지컬 ‘피아노의 숲’도 같은 시스템으로 진행됐다.

“공동 제작은 지역 배우들에게 새로운 제작 시스템 경험을 의미합니다. 지역 스태프들 역시 국내 최고 수준의 제작 환경 속에서 역량을 키우게 되죠.”

공연이 끝나도 경험은 지역에 남는다. 그는 “그것이 공공문화기관이 해야 할 투자”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가장 많이 강조한 단어는 ‘협업’이다. 그에게 협업은 공공과 민간, 중앙과 지역, 예술가와 기관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전략이다.

“우리에게는 극장 인프라와 최고의 기량을 갖춘 시립예술단이 있고, 다른 기관에는 창작자와 전문화된 제작 시스템, 그리고 예산이 있습니다. 서로 가진 것을 연결하면 훨씬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이를 ‘마중물 예산’이라고 표현한다. 큰돈을 한 번에 쓰기보다 작은 예산으로 더 큰 사업을 끌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공공문화기관이 해야 할 경영이라고 믿는다.

◇ 문화를 소비하는 도시에서 창작하는 도시로

김희철 관장이 그리고 있는 변화의 완성은 ‘사람 키우기’다. 그는 공연장 운영하는 방식, 예산을 쓰는 방식, 지역과 협력하는 방식을 ‘사람’에 맞춰 재설계했다. “회관의 미래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갈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한 중심에 사람을 두었어요.”

‘사람’을 중심에 두는 그의 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업이 ‘점프업(JUMP UP)’이다. 지역 국악 청년예술인을 발굴해 공연 제작, 무대 연출, 음악 구성, 홍보까지 전문가들이 함께 멘토링하고, 최종적으로 한 시간 분량의 독자적인 공연을 완성하도록 돕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다.

점프업을 통해 선발된 국악팀은 대구시의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표 콘텐츠로 해외 무대에 올랐다. 김 관장은 “젊은 예술가들이 자기 이름으로 한 시간 공연을 할 수 있어야 어디를 가더라도 초청받고 스스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점프업’은 지역의 국악 청년예술인들에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만들어 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점프업은 국악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는 흐름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은 미술 분야에서도 이어졌다. 오랫동안 대관 중심으로 운영되던 전시 방식을 기획 중심으로 전환하고, 청년작가와 중견·원로작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새롭게 조성한 ‘스페이스 하이브(HIVE)’는 그 변화의 상징이다. 그는 “시민들이 언제 찾아와도 볼거리가 있는 미술관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것이 문화예술회관의 브랜드 재정립이다. 핵심은 명칭 변경이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에는 회관이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를 시민들에게 새롭게 보여주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회관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토대 구축도 시작했다. 회관 역사상 처음으로 ‘10년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있다. 그는 이것을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는 문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토대로 인식한다. 사람과 조직, 창작과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남겨두려는 것이다. “‘10년 마스터플랜’은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회관’에서 ‘사람과 창작, 시민과 도시가 연결되는 문화 플랫폼’으로 바꾸는데 초점이 맞춰집니다.”

김 관장은 문화예술기관장에게 필요한 역량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기획과 제작 능력, 극장 운영 능력, 폭넓은 네트워크, 그리고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시민과 예술가의 기대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양하게 시도해 온 변화들이 뿌리내릴 때, 대구문화예술회관은 ‘회관’이라는 이름을 넘어 대구 문화예술의 새로운 허브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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