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중앙)이 Overtuned Fest 공동창립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원 제공
현대음악은 어떤 분야보다 새로운 미학과 실험을 요구한다. 익숙한 문법을 반복해서는 살아남기 어렵고, 그렇다고 무조건 새롭기만 해서도 인정받을 수 없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음악적 세계를 구축해야만 비로소 작곡가로 존재할 수 있다.
대구에서 음악을 시작한 김지원은 험난한 현대음악 분야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치로운 것은 그것이 미국 사회에서 거둔 성과라는 것이다. 그는 낯선 문화와 다른 교육 시스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언어로 서로 다른 문화와 삶을 연결하고 있다.
그의 활동 무대는 미국 뉴욕과 인디애나다. 그는 그곳에서 현대음악과 실험적 록, 시각예술, 전자음악을 하나의 공연 언어 안에서 결합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직접 만들고, 세계 각국의 연주자와 예술가들을 연결하고 있다. 그런 활동들은 국제 현대음악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작곡가를 넘어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설계하는 기획자이자 예술감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서 열린 ‘오버튠드 페스트(Overtuned Fest)’는 성장의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김지원은 러시아 출신 음악가 알렉세이 로구노프(Alexey Logunov), 미국의 크리스토퍼 허츠(Christopher Herz)와 함께 이 페스티벌을 공동 창립하고 공동 예술감독을 맡았다. 현대음악과 실험적 록, 전자음악, 시각예술을 하나의 무대 안에서 결합한 이 축제는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형식으로 각광받았다.
4일 동안 열린 페스티벌에서는 모두 12편의 신작이 세계 초연됐고, 세계적인 한국인 기타리스트 JIJI가 초청 연주자로 참여했다. 오버튠드 페스트는 모든 면에서 기존의 문법을 뛰어넘었다. 공연장은 전통적인 콘서트홀이 아닌 록 공연장이 사용됐고, 관객들은 클래식 공연처럼 조용히 앉아 있기보다 몸을 움직이고 리듬에 반응하며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김지원은 서면 인터뷰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한 사람만 이해하는 공연이 아니라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오버튠드 페스트의 방향성을 밝혔다.
축제를 준비하며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연결(Connection)’이다. 그는 오버튠드 페스트에서 현대음악을 록이나 시각예술과 연결하고, 작곡가와 연주자를 연결했다. 그리고 학교 밖 지역사회와 예술의 연결했다.
“블루밍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공연장을 찾고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현대음악을 즐기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목표는 실제로 실현됐다. 공연을 처음 접한 관객들이 며칠 동안 이어지는 공연을 모두 관람했고, 지역 신문 기사를 보고 찾아온 관객들은 “평범한 저녁을 새로운 경험으로 바꿔주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미국에서의 성장 과정이 비록 험난했지만, 그가 미국의 현대음악 분야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런 그의 음악적 시작은 사실 소박했다. 음악은 어린 시절, 교회 피아노 앞에서 시작됐다.
어린 김지원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기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화음을 바꾸고 멜로디를 변형하며 놀았다. 거리의 소음도 그에게는 하나의 음으로 들렸다. “저 소리를 악보로 옮길 수 없을까? 피아노로 다시 만들어볼 수 없을까라는 질문들이 작곡이 됐어요.”
그를 둘러싼 환경 또한 예술적 감수성이 넘쳐났다. 건축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여러 건축물과 미술관을 딸과 함께 다니며 예술을 접하게 했고, 어머니 또한 신문에서 공연 소식을 오려 대구 곳곳의 공연장으로 그를 데려갔다.
대구여고에서 피아노 반주와 작은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한 경험은 그를 작곡가의 길로 이끈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바이올린 연주자로서의 경험이 부족해 편곡을 더 많이 맡았던 경험은 오히려 작곡가가 되어야겠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어요.”
그의 음악 활동은 국내와 국외로 갈린다. 국내에서 그는 벨라 바르톡과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탐구하며 소리의 구조와 감정의 움직임을 배웠다. 특히 바르톡의 불규칙한 리듬과 협화음·불협화음 사이의 긴장감은 지금도 그의 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언어가 됐다.
현대음악, 새 음색 발견하는 작업
한국인 정체성 찾다가 ‘한지’ 발견
비교보다 탐구·속도보다 깊이
“천천히 가더라도 단단하게 성장”
그러나 미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맨해튼음대 석사과정에서 만난 작곡가 라이코 퓌팅(Reiko Futing) 교수는 음악을 향한 그의 믿음을 완전히 깨부셨다. “결과를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많이 실험하라”는 퓌팅의 한마디는 김지원의 음악이 변화하는 단초가 됐다. 그는 당시 “현대음악은 새로운 음색을 발견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악기에서도 전혀 다른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하나의 악기가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층위를 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어요.”
이후 그의 관심은 음보다 소리(sound) 자체로 향했다. 연주자의 호흡, 손가락의 압력,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공간의 울림, 그 모든 것이 음악이 되었다. 그렇게 변화한 그의 음악은 ‘듣는 음악’에서 ‘보고, 느끼고, 공간 전체를 경험하는 음악’으로 변화했다.
그 대표적인 재료가 한지다.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재료를 고민했다. 답은 한지였다. 한지는 그에게 종이가 아니라 악기였다. 문지를 때 나는 거친 소리, 접을 때의 울림, 빛을 통과시키는 질감, 공간을 나누는 막(幕)의 기능들은 음악의 재료였다. 그는 한지를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녹음해 전자음악으로 변형하고, 시각적 장치로 활용한다.
작품 ‘막/幕/veil’은 한지에서 영감을 받은 대표곡이다. 이 곡은 거대한 한지가 무대를 가르며 한국과 미국, 두 문화 사이에 선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한지는 제게 한지는 소리이면서 이미지이고, 경계이면서 연결입니다.”
김지원은 대구 출신으로, 중앙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미국 맨해튼음대(Manhattan School of Music)에서 작곡 석사 학위를, 인디애나대학교 제이콥스 음악대학(Indiana University Jacobs School of Music)에서 작곡 박사 학위와 음악이론 부전공을 마쳤다. 현재 미국에서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인터내셔널 컨템퍼러리 앙상블 (International Contemporary Ensemble·ICE), 얀/와이어(Yarn/Wire), 언허드-오브 앙상블(Unheard-Of Ensemble) 등 세계적인 현대음악 단체와 협업했고, 오르가니스트 마르틴 슈메딩(Martin Schmeding), 지휘자 벤 로이들-워드(Ben Roidl-Ward)를 비롯한 다양한 해외 연주자들과 작품을 발표해왔다.
최근에는 독일의 아코디언 듀오 con:trust,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퐁 콩쿠르(Laffont Competition) 우승자인 바리톤 로버트 웬티 (Robert Wente) 등을 위한 신작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성장하는 작곡가”라고 말한다. 석사과정 시절 스승이 적어준 한 문장을 지금도 휴대전화 프로필에 남겨두고 있다. 바로 ‘Pauca sed Matura’다. ‘천천히 가더라도 단단하게 성장하라’는 휴대폰 속 문장은 지금까지도 그의 가슴을 울린다. 그런 철학 아래 그는 음악활동을 하며 비교보다 탐구를, 속도보다 깊이를 선택한다.
해외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작곡가에게는 공연 이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뉴욕의 한 공연에서 애니메이션 작가와 긴 대화를 나눈 뒤 협업 제안을 받았던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예술은 작품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또 하나의 창작”이라는 깨달음은 그의 생활에 한 줄기 빛을 안겼다.
그 이후 그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공연 뒤 대화를 이어가는 법을 배웠다. 그 변화는 더 많은 협업으로 이어졌고, 오버튠드 페스트 역시 그런 관계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김지원은 앞으로 오버튠드 페스트를 신진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함께 성장하는 국제 플랫폼으로 키우고 싶어한다. 장르를 나누기보다 연결하고, 국가를 구분하기보다 함께 창작하는 공동체. 그가 꿈꾸는 음악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제가 바라는 것은 관객이 제 음악을 들으며 잠시 자신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음악이 단순히 듣는 경험을 넘어 감각을 열어주는 예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 시작해 미국 현대음악계에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가 쓰는 것은 악보만이 아니다.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서로 다른 문화와 예술을 연결하며,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새로운 감각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그 여정은 이제 더 큰 보폭으로 나아가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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